책과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이 책은 조선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허구의 이야기지만 허구같지 않은 마치 위인전과 같은 실제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말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필복전처럼 이야기가 책이 되면 그 힘이 더 막강해진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필복전은 2번의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며 짜릿함과 감동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이 책의 그림이다. 인물들의 표정도 생생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에서 간간히 보여지는 그림은 그 상상력에 모터를 달아주는 느낌이다. 특히 디테일한 시전의 모습은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한 장면들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어 그림을 보는 내내 역사를 탐방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이 책의 흡인력에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림과 이야기는 찰떡궁합이다.
필복이는 양반집 종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매일 해주시던 이야기는 마치 이야기 샘물 같았고 매일 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필복이는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의 출처를 물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다 우연히 책에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썼는데 그 이야기는 세책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든 한 번뿐인 삶이온데, 책이 아니면 어찌 다른 인생을 알고 세상 경험을 얻겠습니까?”
“사람이 우선이지, 가문이 중한 것이 아니옵니다.”
당시는 조선후기로 여자들은 글을 읽을 필요도 없으며 문밖출입도 일 년에 한두 번 뿐이던 시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경험을 얻는 것이 진리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필복전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책이지만 정작 필복이는 어린 나이의 종놈일 뿐이다. 필복전은 양반의 사대부 자식들이 없어서 못 읽는 귀한 책이 되었으며 이렇게 글로 엮어진 책이야 말로 나이와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힘이었던 것이다.
필복이의 꿀밤을 이제는 놓을 수 없는 행랑아범의 뒷짐 진 모습을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었다. 양반집 종이라는 신분으로 몰래 써내려간 이야기 그리고 필복이에게 닥칠 운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