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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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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정답일까? 가끔 우리는 길을 잃는다. 삶의 지향점을 잃은 채 멈추는 때가 온다. 나 역시 그랬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꺼이 나를 갈아넣을 만큼 사랑했던, 그리고 그 사랑의 깊이만큼 또 지긋지긋해했던 애증의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한동안, 상실감으로 허탈했고 그로 인한 슬픔에 무능력해졌다. 그때 나를 구해준 것은 책이었다. 세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서재로 숨어들어 책을 펼쳤다. 책은 상실을 메꿔주었고, 상실로 인한 슬픔을 치유해주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해내야 하는 목표가 없어도 나는 조금씩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나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숨어든 한 경비원처럼 말이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 입사해 뉴욕 중심가의 고층 빌딩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형 톰이 시한부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살아갈 힘을 잃은 그는 자신이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지원해 면접을 보고, 훈련을 받고, 근무복 치수를 재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이 방향을 잡았다고 느꼈다.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그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p.33~34).


저자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며 형과의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방식대로 애도하며 상실을 치유한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길렀지만, 그것들이 그의 천사 같은 얼굴을 가리지는 못한다. 온화하고, 생기 넘치고, 젊음으로 가득한 얼굴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자신도 모르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장갑을 벗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지만 단지 짧은 찰나를 보는 것 같지가 않다. 그림 안의 시간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기보다 흘러들어 고인 느낌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p.46



 


저자는 티션이 젊었을 때 그린 <남자의 초상>을 보며 죽은 형을 떠올린다. 자신의 선반에 있는 톰의 사진들. 결혼식 날 건장하고, 소년처럼 행복한 표정의 형, 박사 학위 수여식 때 암 때문에 벗겨진 머리를 헐렁한 박사모로 가린 수척한 형, 그리고 어린 시절의 모습들. 형에 관한 모든 순간과 수많은 기억은 낣아진 사진들처럼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릴 듯 위태롭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이다. 그 기억은 티션의 초상화와 매우 비슷하다. 밝고,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퇴색되지 않는 이미지다.


늦은 밤, 크리스타 형수와 미아, 타라 그리고 내가 형을 돌보고 있었다. 형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p.164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저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작품들을 지키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시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다.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혼한 지 정확히 5년이 지난 후, 그리고 형이 떠난 지 거의 5년이 지난 때에 아들이 태어난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p.324



저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미술관 안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이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긴 애도를 마치고 삶으로 돌아간다. 예술작품이 건네는 완벽한 위로와 치유를, 저자의 아름다운 글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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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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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시간의 파편들이 한데 모여 인생을 이루고, 무수히 다양한 개인이 한데 모여 거대한 삶을 이룬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고,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매우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층층이 아름다운 삶을 이루며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이 삶을 전복시키기도 한다.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p.15


주인공 빌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고 가족에게 버려졌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의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그 집에서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줬고, 펄롱이 태어나던 날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고 둘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아이였던 펄롱은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의 괴롭힘을 당했지만,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 그는 자라서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아 다섯 딸과 아내를 부양하는 가장이 되었다. 펄롱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돌길 위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펄롱은 어머니를 잃은 동시에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어볼 기회도 잃은 셈이다.




경제적으로 혹독한 시절이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펄롱은 이렇게 힘든 시기일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결심한다.



삶이 다음 단계로, 다음 할 일을 찾아서 쉼없이 흘러가는 와중에 이따끔 펄롱을 멈춰 세우는 질문 한 가지가 있었다.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나이 많은 남자의 얼굴을  뜯어보며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지 찾아보거나 누군가 던지는 말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고 했다. 모두 헛수고였지만.



그러던 어느 날 펄롱이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수녀원으로 배달을 갔는데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수녀원은 직업 여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세탁소도 겸업했는데, 마을에는 이곳에 대한 뒷소문이 떠돌았다. 직업학교에 있는 여자들은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어서 교화를 받는 중이며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며 속죄한다고. 또 가난한 집의 결혼 안 한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가족이 미혼모를 수녀원 안의 모자보호소에 보내 숨기고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는 부유한 미국인에게 입양시키거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는 과정에서 수녀들이 상당한 돈을 챙긴다고. 펄롱은 믿을 수 없는 뒷소문이라고만 여겼던 장면들을 직접 목격한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말을 무시한 채, 처참한 몰골을 하고 석탄 광에 갇힌 소녀를 뒤로 한 채, 펄롱은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길을 잃는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p.54


펄롱은 수도원으로 향한다. 석탄 광 안에 그 소녀가 여전히 갇혀 있었다. 처참한 모습으로 자신의 아기가 어디 있는지, 아기가 굶주리고 있는 건 아닌지부터 걱정하던 소녀가. 펄롱은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구하고 있는 게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떠올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등장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시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 아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등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감금시키고 강제 노역을 하게 했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 커녕 목숨을 잃은 이도 많았으며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상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모른체하지만, 위태로운 갈림길 위에 서서 오래도록 고민하던 펄롱은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길을 선택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스산한 마을에 처연하고 흐릿하지만 불이 하나 켜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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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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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중국의 고대 권축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단 한 단 조금씩 펼쳐서 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청명상하도>를 펼치면 옅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는 당나귀 무리가 맨 먼저 보인다. 길과 들판은 텅 비었고 느릿느릿 걸어오는 당나귀 무리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새벽녘으로 추측된다.
이 무리는 당나귀 다섯 마리와 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나귀 등 위에는 광주리가 두 개씩 실려 있고 광주리 안에는 검은색의 가늘고 길쭉한 것이 담겨 있다. 저것이 무엇일까? 숯과 매우 유사하다. 송대 사료 기록물인 <계륵편>에 따르면 장택단이 <청명상하도>를 그릴 당시 변경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던 주요 연료는 숯에서 석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당나귀 등에 실린 숯의 용도가 술을 데우기 위한 것이라 보았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기는 하다. 간혹 구호물품에 술이 포함될 만큼 송나라 사람들은 술을 매우 좋아했으니 당연히 술을 데우는 연료도 필요했을 것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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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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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

위대한 작품은 웅장한 장면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보잘것없는 도입부가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름다운 풍격을 완성할 수도 있다. <청명상하도>는 어린 소년 하나와 고개 돌린 당나귀 한 마리로 시작한다. 충분하지 않은가.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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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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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보 1호 청명상하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책. 그 시대의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진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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