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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할아버지 오신 날 느림보 그림책 54
이영미 글, 오승민 그림 / 느림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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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어른이 되고난 뒤부터 제삿날은 더 이상 즐거운 날이 아니다.

선조들이 매여좋은 잣대에 맞춰 음식을 만드느라 기호에도 맞지 않는 음식을 만들고 

색깔과 방향을 가려 규범적인 상을 차리는 일이 즐겁고 그래서 제삿날이 기다려진다는 어른은 거의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런데도 그 의식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까닭은 오랜 세월동안 선조들에 의해 계승되어 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계승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비판하려고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일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멈춰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통신의 바다를 항해하며 지구 반대편 나라에대한 정보와 문화의 물결 속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요즘 아이들에게 오랜 세월 선조들이 이어온 전통문화를 계승하도록 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계승되어야 마땅한 전통문화라고 인식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할지라도, 너무나 다른 시대에 다른 정서를 가지고 사는 아이들에게 민족 고유의 전통 문화에 젖어 사는 삶이 참 즐겁고 흐뭇한 일이로구나 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왕 할아버지 오신 날'은 증조부의 제삿날을 어린 시절의 증조부가 증손자와 교감할 수 있는 날을 그리고 있다. 세대를 달리 사는 선조와 후손이 만나 구슬치기를 하고 냇가에서 함께 미역을 감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상상속에서라도 아버지의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모습과 만나 동무처럼 함께 놀 수 있는 날이 제삿날이라면, 그 어느 어린이가 제삿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마치 축제같은 것이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이 풍성한 날이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 참으로 값지고 의미있는 일임을 가르치고 싶다면

슬며시 이 그림책을 보여 주는 것은 어떨까? 

달봉이가 감나무를 향해 컹컹 짖어요.
"저 나무도 왕할아버지 소학교 입학식 날 심었다더라."
"그럼 할아버지보다도 나이 많아요?"
"아마, 백 살도 훨씬 넘었을 걸."
.
.
.
"나랑 같이 놀았는데, 수영도 하고 이 팽이도 줬는데......"
쉿, 아빠가 얼른 절을 하래요.
사진 속 왕할아버지가 민호를 향해 미소 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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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할아버지 오신 날 느림보 그림책 54
이영미 글, 오승민 그림 / 느림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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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재밌게 향유하게 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사가 있는 날은 재미있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그 날이 기다려질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제사날을 기다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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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56호 - 2012.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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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아픔

     -「민들레꽃반지」를 읽고(40.5매)

 

 

 

 뒷머리를 바짝 치켜 올려 깎은 내 상고머리가 몹시 부끄럽기만 했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큰방 아랫목에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중절모를 눌러 쓰고 흰색 두루마기를 갖춰 입으신 게 첫눈에 보기에도 먼 길 찾아오신 손님이었다. 누가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그 때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던 자리는 식구들 중 누구는 물론, 집에 오시는 손님들조차 웬만하면 앉는 법이 없는, 명실공히 아버지 자리였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을 때조차 누구도 앉아서는 안 되는 그 자리에 생전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 모습은 내 눈에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낯선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 앞에 너무나 다소곳이 앉아 계신 아버지 모습은 영락없이 상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아랫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 아버지 모습이 나는 몹시 낯설었다. 식구들을 대하는 게 우격다짐일 때가 많아서 독불장군 같고 야속하리만치 구두쇠이기도 한 아버지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풍경이라니…….

“뭣 허냐? 으른을 뵜으믄 얼릉 인사드리지 뭇 허구…….”

낯선 방안 풍경에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 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목례를 하고 돌아서 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이었다. 아버지야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분이시니 할아버지가 누구신지 먼저 알려주지 않으신 건 이상하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 할아버지가 대체 누구시기에 아버지가 저리도 안절부절 못하시는 것일까?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한 엄마도 어딘지 모르게 허둥대시는 것 같은게 여느 때와 달라보였다.

“엄마! 시방 방에 기신 할아버지 누구여?”

“늬 외종조할아버지여.”

“외종조할아버지? 그러면… 그게 누구여?”

“시방 방에 기신 냥반이 외종조할아버지라니께. 엄마 작은아부지이…….”

“엄마도 작은 아버지가 기셔?”

“얘가 시방……. 핵교 댕겨 왔으믄 숙제 안 허냐? 어여, 저리 비켜!”

할 말이 궁색해진 것처럼 나를 밖으로 내모는 엄마 얼굴에 당황한 낯빛이 뚜렷했다. 외갓집 식구라면 그 때까지 엄마보다 아홉 살 아래, 외삼촌 한 분이 전부인줄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몹시 놀라웠다. 하지만 더 따져 묻지는 않았다. 철없던 때였지만 엄마 아버지께 외갓집 얘기를 캐묻지 않는 건 우리 집 불문율이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무척이나 일렀던 그 날 저녁 밥상은 느닷없이 나타난 외종조할아버지 덕택에 기름 졌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마주 않은 밥상 옆에서 나머지 식구들이 오글오글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도 이러쿵저러쿵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오랜만에 상에 오른 맛난 반찬들 보다 그동안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외종조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주고받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나머지 식구들도 나와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두 분이 마주한 밥상에서는 내내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 올뿐이었다.

 밥상이 물러난 뒤 뚜렷하게 알게 된 게 하나 있다면 그동안 왕래는 없었지만 내 외갓집에도 살아있는 할아버지가 계시고, 천하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은 아버지가 그 분을 몹시 두려워 한다는 사실이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넌지시 바라보며 하시는 말씀은 어쩌다 한 두 마디, 그것도 앞뒤가 잘려나간 말이라 어린 나로서는 뜻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높낮이가 없는 묵직한 목소리로, 그것도 시종 엷은 웃음을 띤 낯빛으로 대하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왜 두려워하시는 걸까, 나는 궁금증에 애가 탈 지경이었다.

 외종조할아버지란 분이 우리 집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차림새는 먼 길을 온 분 같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돌아갈 집이 있는 것처럼, 하루 밤도 묵지 않고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런데…,

“날이 저물었는디유…….”

“길이 좋은 세상이라 걱정 없네.”

할아버지가 중절모자를 다시 눌러 쓰고 방문턱을 넘어서자, 아버지가 낯빛이 하얘지며 허둥허둥 뒤를 따르시는 모양이라니…….

‘아…. 아버지는 저 분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어려워 하시는 것이로구나.’

그 때 내 뇌리에서 번쩍 하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과 외가 사이에 가로 막혀 있던 길이 뚫린 것처럼 외가 식구들의 방문이 드문드문 꼬리를 물었다. 엄마 사촌 형제들, 내게는 외당숙 되시는 분들이 다녀가시고 어느 날에는 외종조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집에 처음 다녀가신 할아버지와 내외지간인 할머니도 오셨다. 외종조할머니는 하룻밤을 묵어가셨는데 아마 그 날이었을 것이다. 큰방에 외종조할머니 잠자리를 마련하느라 아버지가 작은 방으로 건너가시고 나와 동생 잠자리도 큰방 구석에 만들어졌을 때, 나는 두 분이 혹시라도 외갓집 얘기를 주고받지 않을까 싶어 밤새 귀를 곤두세울 각오를 했다. 하지만 두 분 신경도 내 숨소리에 쏠려 있었던지, 내가 듣고 싶은 외가 얘기는 쉽게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는 말이라곤 그동안 왕래 한 번 하지 않다가 만나 사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부 시시콜콜한 얘기들뿐이었는데, 나는 쏟아지는 잠을 더 이상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쯤 흐른 뒤였을까? 작은 두런거림 소리가 내 귀를 깨웠다. 엄마에게서 외종조할머니에게로, 외종조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로 오가는 그 소리들은 괘종시계 초침 소리보다도 작았지만 이따금 내 귀에까지 또렷이 들렸다.

“징 헌 눔들……. 아부지 엄니두… 그 눔덜이 쥑인 거나 한 가지유. 몸서리 나넌 〇〇청년단 눔덜…….”

“〇중이가 책만 안 좋아했어두 그런 난리야 안 겪었지. 자네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엄마 말꼬리를 물고 외종조할머니 탄식이 이어지자 이번엔 울분 섞인 엄마 목소리가 또 꼬리를 물었다.

“시상을 잘뭇 만난규. 작은 엄니……! 시상을 잘 만났으먼 엄니 아부지랑 생떼같은 우리 〇중이가 왜 죽었겄슈. 지랑 ☆중이두 시방허군 다르게 살쥬우.”

이를 앙다물고 토해내는 듯한 엄마의 긴 한탄 소리가 내 귀를 훑고 목을 타고 내려 와서는 가슴을 휘저었다. 내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숨을 죽이고 귀를 바짝 치겨 세우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는 두 분 얘기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엄마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남동생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엄마와 외종조할머니 표현대로라면 내가 만난 적도 없고 얘기 한번 들은 바 없는 그 동생은 인물이 훤칠한데다 너무나 똑똑했고 책읽기를 몹시 좋아했다. 그런데 당시 읽어서는 안 될 책을 읽고 생각이 틔어서는 소위, 좌익이념을 좇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지체 높은 가문을 자랑하던 외가는 한 순간에 몰락해서 당사자가 비명횡사한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도 화병을 얻어 차례로 돌아가시고 아랫사람깨나 부리고 살았던 가세가 궁색해져 나머지 가족들과 친인척들은 뿔뿔이 흩어져 서로 만나서도 안 되고 만날 수도 없는 사이로 살았다는…….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는 그 흔한 외가 나들이 한번 못 해 보고 살아야 했던 거구나.’

 이따금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끊어지면 숨 막히는 고요가 가슴을 짓누르고 내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그날 알았다. 왜 우리 집에서는 외가 얘기를 하면 안 되었는지, 그리고 이따금 야속한 아버지 등에 대고 풀어놓던 엄마 넋두리가 무슨 의미였는지를…….

 

 사소한 기호에서부터 성품에 이르기까지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던 내 엄마와 아버지는 다툼이 잦은 편이었다. 그래도 대개는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지만 제법 날이 선 말이 오래 오고 갈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엄마는 ‘혼인 상대가 아니었넌디……. 내가 시상만 잘 만났어두…….’라고 한탄 같은 넋두리를 쏟아내곤 했었다. 엄마에게서 예의 그 넋두리가 시작되면 아버지는 ‘큼 큼’ 헛기침을 하시고는 웬일인지 우격다짐을 누그러뜨리곤 했었는데…….

 그때까지는 왜 아버지가 엄마 혼인 상대가 아니었는지, 또 모두에게 똑같을 법한 세상을 엄마는 왜 잘못 만났다고 말하는지, 내게는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그 날 답을 찾은 것이다. ‘당신 집안은 감히 우리 집안에 혼인을 청할 수도 없는 상대였다. 내가 세상을 잘못 만나 당신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더불어 외종조할아버지가 오셨을 때 아버지가 왜 그토록 어려워했는가도 알 것 같았다.

 끝까지 답을 찾아내지 못한 의문도 있다. 아무리 세상을 잘못 만나 몰락한 양반집 규수가 되었다지만 엄마는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한평생 반려로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 의문이 아버지를 폄하하는 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창비 여름호 목차를 훑다가 ‘민들레꽃반지’라는 소설 제목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고 때 묻지 않은 풋풋한 사랑이야기이려나, 아니 어쩌면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싶은 게 내 안에서 하이틴 소설을 탐닉했던 시절의 감성이 깨어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일었다. 그러나 짜릿한 연애 소설을 기대했던 내 설렘은 소설 첫 문장, ‘칼바람 소리만 귀를 물어뜯는 것이었다.’에서부터 김이 새고 말았다.

어? 사랑 얘기가 아닌 모양이네 싶을 때 등장한 주인공 김씨는 경로우대를 받아야 하는 노년의 남자다. 그러니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끌어갈 주인공으로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해산미역이 되어버린 극노인’, 이제 망백이 된 홀어머니를 모시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홀아비이다. 어디 그 뿐인가? 김씨가 살고 있는 집 사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가관이다. 생필품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삼사십리를 가야하는 산골인데 수도관이 얼어 물까지 나오지 않는 지경이라니, 이런 환경 속에서 어찌 소박한 사랑이 싹 틔어지길 기대할 수 있으랴. 김씨가 그의 어머니와 주고받는 대사를 읽을 때는 점입가경이란 네 자 성어가 떠오르며 픽 웃음이 난다. 사랑 얘기를 기대하기는 애저녁에 글러 버렸고, 심심산골 오두막에서 망백의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김씨가 수도결빙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슬슬 호기심이 생겼다. 더군다나 때는 바야흐로 엄동설한 속 아닌가?

길지만 호흡이 가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혀지는 문장 덕분이었을 수도 있겠다. 기대했던 사랑이야기는 아니지만 궁색하고 구차하기 이를 데 없는 김씨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묘하게 내 심사를 흔들었다. 그가 흘리는 독백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가 주억여지고 어느 대목에서는 맥박이 빨라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콧등이 시큰해지고 목구멍이 뻐근해 지다가 마침내는 눈물이 떨어지게도 했다. 대체 이 노년의 남자는 왜 이다지 남의 속을 헤집어 놓을까? 왜 나는 호감 가는 데라곤 한 군데도 찾을 수 없는 이 노인에게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걸까?

 

 엄마……. 내 엄마 때문이었다. 김씨가 풀어놓은 옛얘기는 내 어린 시절, 조마조마하게 가슴 조이며 훔쳐 들었던 내 외가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했다. 그래서 김씨가 옛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한 때 지체 높은 양반으로 행세했던 친정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단절하고 지내야 했던 내 엄마 얼굴이 떠오르고,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 ‘시상을 잘못 만나지 않았어두…….’ 라고 했던 엄마 넋두리가 겹쳐 들려오기도 했다.

 짐작이야 했지만 이 땅엔 너무나 많은 김씨와 김씨 어머니, 그리고 내 엄마와 외가 식구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그들은 각각 다른 삶을 살았지만 따지고 살피면 모두 한 줄기에서 시작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며, 구차하기 짝이 없는 김씨의 삶은 내 엄마가 살아온 삶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김씨에 대한 연민이 생겼나 보다.

 ‘민들레꽃반지’는 다른 이념을 쫓았다는 이유로 혹은 그와 한 가족이라는 게 꼬투리가 되어 온갖 고초와 풍상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얘기다. ‘칼바람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수도관이 얼어 물조차 나오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 김씨 집으로 어는 날, 문득 배달된 편지 한 통은 김씨에게 옛 일을 절대 잊지 말고 살라고 경고를 주는 듯 하다.

 ‘6 ‧ 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 접수’라는 제목의 전단지가 들어 있는 편지봉투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김씨 어머니 함자가 적혀 있었다. 김씨 아버지는 6 ‧ 25가 터지기 해 반 전, 예비검속으로 잡혀갔다 무참히 학살당한 사람인데 그의 아내 앞으로 6 ‧ 25 때 전사한 사람 유해를 찾는 전단지가 배달되다니……. 더구나 그의 아내는 국가보안법에 걸려 징역까지 살았으며 평생을 연좌제의 사슬에 걸려 감시의 눈총을 받으며 바들바들 떨며 살아온 사람이다. 이제는 ‘다 털어낸 깻단 같은 몸피’의 극노인이 되어 죽은 남편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춤조차 출 기력이 없는, 말 그대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근 군부대에서 6 ‧ 25 때 전사한 사람의 유해를 찾는다는 어처구니없는 편지가 날아오다니……. 어머니가 견뎌 온 세월과 조금도 나을 게 없는 세월을 감당해 왔을 김씨가 편지 봉투에서 쏟아진 전단지를 보고 등골 서늘한 불길함에 휩싸인 것은 가엾지만 너무나 지당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 세상 만물이 다 변한다 해도 절대로 변할 수 없고, 잊혀 지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사람 뼈에 사무친 울분과 한(恨)일 것이다. 떠올려 봤자 가슴 미어지게 아픈 과거는 되도록 빨리 잊는 게 낫다는 걸 김씨와 김씨 어머니, 그리고 내 엄마와 외가 식구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오래전에 지나가 버려 이제는 끝났음 직도 한 옛일들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여태도 그들 삶 끄트머리에 남아 아직 끝나지 않은 일임을 자꾸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소설 속 김씨와 김씨 어머니, 그리고 내 엄마는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그 길에서 더러는 길동무를 만나 속내도 털어 놓고, 이따금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즐기는 행복을 누렸어도 좋았으련만, 그들이 속한 길에는 도대체 쉬어갈 그늘이 없었다는 걸 김씨와 내 엄마는 얼마나 하소연 하고 싶었을까?

 

 이제 내 엄마는 외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시다. 그립다는 말조차 아끼며 살아야했던 외가 어른들은 아껴야 했던 그 기억들을 간직한 채 이제는 유명을 달리하셨다. 독불장군 아버지 우격다짐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만큼 총기를 갖고 계시던 엄마도 이제는 팔순을 넘긴 연세가 되어, 곧 쉰 살을 바라보는 당신 딸이 얼마 전 넷째 아이를 낳았다고 믿고 계신다. 평생 친정 얘기를 아끼며 살아온 엄마 기억 속에 이제껏 아껴 온 지난 이야기가 지금은 얼마나 온전하게 남아 있을까?

오는 휴일엔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 남동생이 좇던 이념 때문에 평생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한 엄마에게 이제는 사탕발림 같은 말을 선물로 줘도 좋으리.

 “세상을 잘못 만난 건 엄마 잘못이 아냐! 창피한 건 더더욱 아냐! 이제 엄마가 말할 차례야! 알려 주지 않는 게 더 나빠! 말해줘, 엄마!”

이제 곧, 말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아니 이미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거짓을 말해도 좋겠다. 이제 엄마와 내 외가가 억울하게 감내해야했던 분한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며 환하게 웃어도 봐야겠다.

 녹의홍상 떨쳐입고 ‘민들레꽃반지’를 닦으며 ‘해방가’를 불러 대는 당신 어머니 입을 굳이 틀어막지 않은 김씨 마음도 지금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를 분간하지 못해, 당신이 제일 좋았던 때로 돌아간 김씨 어머니의 소박한 행복이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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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아리랑 - 한 정치인이 살아온 대한민국 현대사
김성동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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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생생한 그 사람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 진가를 뿜어내던 한 사람이 어느 날, 쓸쓸히 그곳을 떠났을 때 감당해야 하는 서늘한 아픔을 겪어 본 적 있나요?

 

소설가 김성동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 나는 늘 따뜻함과 서늘함을 함께 느끼곤 했습니다. 때로는 온화하고 때로는 차가운 그 문체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아픔은 그것이 어떤 아픔일지라도 끝내 사람이 감당하고 이겨내야만 한다는 담담한 각오를 읽어 내곤 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나는 언제나 사람됨이 한 겹 더 두꺼워진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맞닥뜨리곤 했어요. 행복하게 살 자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극적인 감상에 젖어 흙바닥에 녹아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예요.

 

「한국 정치 아리랑」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니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언제나 냉소적으로만 일관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떨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아요. ‘형편없는, 쓰레기 같은, 새빨간 거짓말 같은, 야비하고 더러운, 비열하고 파렴치한’ 같은 온갖 나쁜 꾸밈말을 갖다 붙여도 속이 시원치 않았던 정치가에 대한 像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해요. 실력이 형편없는 감독이 연출하는 연극 같은 정치판 무대 저편에 진정 뜨거운 숨결 내뿜으며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고자 몸부림쳤던 한 정치인, 후농 김상현의 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김상현이란 이름 뒤에 '의원'이란 말은 쓰지 않아요. 굳이 붙이고 싶다면 ‘전의원’이라 해야 하지요. 그는 벌써 오래전에 정치무대에서 퇴장했기 때문이에요.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피울음 울어가며 뛰어다녔던 한국 정치 무대에서 말입니다. 그가 퇴장한 무대에는 지금도 많은 배우들이 뛰어다니고 있어요. 언뜻 보면 그들은 각각 다른 분장을 하고 표정도 제각각 짓고 있어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서로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결국 한 가지 캐릭터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 그들이 뛰어다니는 그 무대 위에 후농 김상현전의원이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훗훗, 웃음이 납니다. 해보나마나인 부질없는 상상이니까요.

울컥울컥, 눈물이 나려고도 해요. 지금 한국정치 무대에는 김상현 전의원 같은 배우가 꼭 필요한 때이니까요.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한 가지 다행한 일도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먹먹했던 가슴이 책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풀솜할머니 가슴처럼 포근하고 따뜻해졌거든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그러니까 소설가 김성동과 정치가 김상현의 우정이 얼마나 따뜻하고 깊은 울림으로 전해왔는지 몰라요. 순간 내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그건 눈물이 아니에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웃음이었답니다.

 

한 때 기자였던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상현이 정치무대에서 퇴장하게 된 이유는 ‘그의 사람됨이 잔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요. 물론 그와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어떤 일이든, 한 가지 이상으로 편이 갈린 일은 모든 편의 말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굳이 그분의 말을 인용하는 건 그 말에 큰 공감이 가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그 분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날 수 있다면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눈웃음 짖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많이 잊혀 졌어요. 하지만 당신이 꼭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한국 정치 무대에서 당신처럼 뜨거운 심장을 팔딱거리며 뛰어다닌 사람이 없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요. 이제 난 알았어요. 그리고 영원히 잊지 않을 거예요. 참혹하기만 한 한국정치 역사에서 당신이 얼마나 생생하고 울울한 사람이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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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아리랑 - 한 정치인이 살아온 대한민국 현대사
김성동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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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 이면에 감춰진 한 젊은 정치인의 뜨거운 삶을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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