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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메러디스 메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작가가 아주 어린 소녀 시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하는 아빠, 가정을 돌보는 엄마 아래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린 시절, 부모의 갈등과 이혼으로 평화는 산산 조각이 난다. 이혼이야 흔한 것이고 만남과 헤어짐이랄 수 있지만, 부모가 세상 전부인 어린아이들에겐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이다. 또한 아내와 자식들을 완전히 외면해버린 아버지와, 그 상처로 무너진 마음을 영영 일으키지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그때부터 지독하게 외롭고 건조해진다. 지낼 곳이 여의치 않아 엄마와 소녀, 그녀의 더 어린 동생은 엄마의 엄마, 그녀의 남편이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된다. 잠시 여행을 떠나는 거라 생각했던 외출에서 영영 집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 때, 사랑하는 아빠를 앞으로도 쭉 못 보게 됨을 알았을 때, 왜 그런 건지 아무도 설득도 이해도 시켜주지 않았을 때 어린이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가 났다. 하지만 그걸 들여다봐 줄 어른 없었다. 이혼의 충격으로 퇴행에 가까운 칩거에 들어간 엄마,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차가운 할머니. 하지만 유일하게 할아버지는 소녀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보듬어 준다.
소녀의 할아버지는 소소하게 양봉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벌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벌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할아버지 곁에 머물며, 자연스레 소녀는 벌에 대해서 알아간다. 가족을 구성한 벌들의 집단 형태, 서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돌보는 벌들의 습성 등을 알게 된다. 벌들은 사람과는 다른 가정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 자식을 생산하는 엄마인 여왕벌, 태어나고 자란 후 본인의 어머니인 여왕벌을 돌보고 가정을 지켜내는 딸, 일벌. 짝짓기의 본분만을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이만을 보채다 죽는 수벌.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가정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 또한 완벽한 가족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는 법이라 소녀는 안도하고 치유됨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녀의 할아버지가 친 할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의 양아버지, 자신의 양할아버지임을 알게 됐을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꿀벌들의 모습. 그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에 빠져 마음의 어둠을 조금씩 걷어낸다. 섬세한 벌의 행태를 이해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는 냉혹한 어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허리를 굽혀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끝내 어머니와 화해 다운 화해는 하지 못한다. 엄마의 딸에 대한 자격지심, 남편에게 버림받은 분노에 기안한 언어폭력과 방치에도 그녀는 꿋꿋했다. 한 해 여름 행복한 일주일의 여름방학을 선사한 후 쭉 지속된 아버지의 부재에도 소녀는 희망을 꿈꾸는 어른으로 자랐다. 어린 시절 그녀에게 따뜻함을 나눠주던, 꿀 통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꿀 버스는 자라는 내내 그녀 마음속의 따뜻하게 자리 잡았을 것 같다. 이제 중년이 된 그녀는 바쁜 도시의 삶에서도 벌을 잊지 않았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벌들과 함께 큰 그녀에겐, 다른 형제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일 것 같다.
한 사람의 따뜻함과 관심이, 작고 여린 존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꿀 버스는 할아버지의 온기다. 그 안에서 벌들은 쉬고, 또 자라나고, 어린 소녀도 꿀버스를 안식처 삼아 따뜻함 속에서 자란다. 결국 세상의 냉혹함에도 불구하고 온기를 가지고 자란 그녀 덕분에 안도하게 됐다. 그녀가 할아버지의 그 온기를 가슴으로 이어받아 벌들을 돌보게 됐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참 쉽게 상처받지만, 또 쉽게 행복해지는 어린아이들은 꿀벌같이 약하고 섬세한 존재다. 그런 꿀벌들을 보살펴준 이가 누가 있었는지, 나의 가족들을 생각하게 됐다. 참 결이 곱고 너무 따뜻한 책이라 11월에 만나게 된 게 참 좋았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