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적이 아니다 -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그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신기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조선을 욕하던 책을 냈던 어느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조선시대는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시기였다고...

 

그렇다면 조선 이후의 현재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는 그런 피와 눈물로 얼룩진 시기가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바로 1950년에서 1953년까지 벌어진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내막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냥 나쁜 공산당이 쳐들어왔는데, 용감한 우리 국군과 멋진 미군이 나서서 물리쳤고, 중국군만 오지 않았으면 남북통일이 되어서 선진국이 되었으리라는 단순한 인식이 전부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양상이, 과연 그런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달콤한 것이었을까?

 

이 책, <국민은 적이 아니다>는 그런 인식을 철저하게 부수고 있다.

 

저자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팀장으로 있던 사람인데, 그동안의 자료 조사를 통해 한국전쟁의 숨겨진 양상을 파헤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사상자의 80%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들이었다.

 

막상 전쟁터에 나가 싸운 군인들보다 후방에 있던 민간인들이 네 배나 더 많이 죽었던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사람들이 좌, 우익으로 갈라서 서로 싸워서 죽였던 것일까?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자의 주장은 달랐다.

 

저자는 민간인 학살의 대부분은 국가 권력, 당시 이승만 정부가 자국민들을 상대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학살을 자행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그 증거로 저자는 당시 한국군 부대 정황들을 기록한 문서에서 찾아낸 자료를 든다.

 

소총과 탄약이 없어 북한군을 막아내지 못한다며,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다는 그 국군이 막상 자기나라 국민들을 죽일 때는 아주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총탄이 모자라는 일이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저자는 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일부러 자행했다고 본다.

 

한국전쟁 직전, 이승만 정권은 실제로 선거에서 참패를 했다.

 

여당이 아닌,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고 반대로 이승만 정권 소속 여당은 줄줄이 떨어졌다.

 

그만큼 이승만 정권은 벌써부터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이승만을 가리켜, 만약 한국전쟁이 안 일어났으면 그는 진작에 망했다고 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런 판국에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권은 국민들 대다수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잠재적인 적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이승만 정권이 지독하게 인심을 잃기도 했고.

 

그래서 이승만 정권은 북한과 결탁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자국민들을 적으로 여기고, 미리 있을 화근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일부러 조직적이고 치밀한 민간인 학살을 벌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북한군을 피해 후퇴 중이라던 국군 및 경찰들이 각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것을 본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아울러 북한군의 첩자가 아님을 확인하고도 고의적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노근리 사건 등을 검토하면서, 당시 국군과 미군들은 피난민들을 작전에 방해되는 귀찮은 짐덩이로 여겼다는 것도 확인했다. 어린이나 여자, 노약자들도 학살을 당했던 것을 본다면, 그만큼 군 상층부에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했던 것도 있고.

 

그리고 좌익 계열만 학살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우익 계열 인사들도 학살을 피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놀라웠다.

 

사실, 누가 좌익이고 우익인지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권력에 방해가 되면 좌고 우고 가리지 않고 죽였던 것이 이유였으리라.

 

그리고 자국민들이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군인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계획적인 학살극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보도연맹 학살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보도연맹 학살에서 자그마치 20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적과 협력할 수 있다는 막연한 추측만으로 군인과 경찰 및 준군사조직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을 당했다.

 

또 국민방위군 사건도 계획적인 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방위군 병사들에게 지급할 의복과 양식 등이 방위군 사령관 등 고위 관계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횡령되었고, 그 결과 수십만 명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었으니까. 어쩌면 이것도 적이 인적자원을 미리 이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잔인한 조처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실제로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승만을 비롯한 한국전쟁 당시의 권력자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했는지, 국민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겼는지를 알고 소름이 끼쳤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남기며 리뷰를 끝낸다.

 

"'총알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후퇴해야 했다'던 그들에게 후방의 자기 국민에게 쏠 총알은 남아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적으로 여겼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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