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누가와 - 鬼怒川
단이리 지음 / 나남출판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주문했다가 포장 박스에 우연히 끼워진 책 광고 팜플렛을 보고 호기심이 들어, 꼼꼼히 정독을 했다가 내용과 메시지의 형편없음에 실망한 소설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기누가와'인데, 일본의 유명 온천 이름으로 물이 너무 뜨거워서 귀신이 울부짖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만... 뭐, 귀신이 울부짖든지 웃던지 그건 중요한게 아니죠.

 

이 소설, <기누가와>의 겉표지에는 장편추리소설이라고 되어 있으나, 속지 마십시오. 이 소설은 절대 추리장르가 아닙니다.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훤히 나옵니다. 게다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전여옥 욕하기'입니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특이하다 못해 참으로 엽기스러운데, (1) 주인공 박민자를 소설 내내 지독하게 폄하하다 못해 극단적으로 모욕하고 있다는 점, (2) 한국의 반일 감정을 파렴치한 위선이라고 까고 있다는 점 (3) 일본은 진심으로 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니, 한국인들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라는 것 등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일본의 극우파들이 하는 망언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저자 이름을 가명으로 썼나?)

 

또, 이 책의 저자인 '단이리'라는 사람의 내역도 의문스럽습니다. 대체로 어느 저자가 책 한 권을 내면, 바로 그 저자에 대한 대략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뜹니다. 생년월일이나 졸업 학교, 어느 문학 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작가로서 어떤 경력이 있는지 등등... 아무리 삼류나 무명작가라도 말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자인 '단이리'로 검색을 하면 그저 이 기누가와 한 권만 쓴 것으로 나오고, 나머지 내역들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기누가와 한 권만을 쓰고 그대로 잠적해 버린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단이리가 진짜 이름이 아닌, 실명을 숨기기 위한 가명이라고 확신합니다.

 

뭐, 가명으로 책을 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쓸 수도 있지요. 그러나 굳이 왜 가명을 써가면서까지 소설을 써야 했는지가 의문입니다. 작가의 개인 정보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으나, 이 소설보다 훨씬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유명 인사들도 얼마든지 자기 실명으로 책을 내고 있는데 말이죠. 하다못해 신 친일파로 지탄을 받았던 김완섭이나 오선화도 자기 실명으로 책을 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한국 여성 국회의원으로 나오는 박민자인데, 소설에서 묘사되는 이 사람의 활동 내역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박민자는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서 이름을 날렸다.

2. 박민자는 한국의 유명 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했다.

3. 박민자는 그 후, 일본을 비판하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와 명성을 얻었다.

4. 박민자는 그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5. 하지만 사실 박민자는 줄기차게 일본을 자주 여행하고, 일본 음식과 쇼핑을 즐기는 등 일본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니 박민자가 일본을 까는 책을 쓴 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한 거짓 위선에 불과하다.

 

위 5가지 사항에서 말하는 사항에 딱 맞아 떨어지는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 분이 되시겠습니다...


                               전. 여. 옥. 

 

실제 기누가와에서 말하는 박민자의 내력은 전여옥의 활동 양상과 매우 흡사합니다. 전여옥은 KBS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시절에 일본을 욕하는 책인 <일본은 없다> 시리즈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발판으로 해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어, 국회의원 활동을 했었죠.

 

또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낸 이후에는 일본의 식도락 문화를 요란하게 소개하여, <삿포르에서 맥주를 마시다>란 책을 내기도 했죠. 물론 <삿포르에서 맥주를 마시다>에서는 <일본은 없다>에서 나온 치열한 주제의식은 전혀 없고, 일본의 식도락 문화를 화려하게 찬양하는 내용들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기누가와>에서는 중반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드러냅니다. 박민자가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을 욕하는 책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원고를 도용한 표절이라는 것이었지요. 이것 역시 전여옥의 내역과 비슷합니다. 전여옥의 베스트셀러작인 <일본은 없다>는 그녀와 함께 일본 유학을 했던 유재순의 원고인 <하품의 일본인>의 내용을 그대로 무단 도용했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판결났으니까요.

 

즉, <기누가와>의 박민자는 현실 속 인물인 전여옥을 그대로 빗대서 만들어 놓은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저자인 단이리... 는 자기 소설 속에서 전여옥을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집요하게 욕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써 내면서 가명으로까지 전여옥을 모욕할 만큼, 그녀를 미워했던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요?

 

한동안 저도 이런 의문을 풀어줄 답을 찾지 못하고, 이 책 <기누가와>는 그냥 그대로 잊고 있었습니다. 뭐, 새삼 기억을 할 만큼 대단한 책도 아닌지라...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JP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서 정보 검색을 하다가 이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유재순 씨가 직접 쓴 글이었는데,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언제까지 한국은 일본을 미워할 셈인가? 이제 한국도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고, 더 이상 옛날의 약소국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심을 버리고, 그들과 손을 잡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제 일본과 손잡지 않으면 저 거대한 중국에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다. 한국은 한시라도 빨리 일본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

 

헌데 이 글은 <기누가와>의 첫부분에 나온 내용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기누가와 본문에서도 저 문장에서 말한 식으로 한국은 세계 12위권 경제 대국이고, 더 이상 일본을 미워하면 안 된다, 일본과 손잡고 어서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중국에 맞서서 나라를 존속할 수 없다, 라는 식으로 서술되었죠.

 

저 글과 기누가와의 내용을 비교해 보았을 때, 제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기누가와는 유재순이 '단이리'라는 가명을 써서, 전여옥에 대한 울분을 풀기 위해 써낸 책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유재순은 자신이 오랫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쓴 원고인 <하품의 일본인>을 전여옥에게 일본어 공부하는데 쓰라고 빌려주었다가, 그걸 전여옥이 무단으로 도용해 <일본은 없다>를 써낸 것에 대해 크게 분노했고, 여러 차례 전화로 전여옥과 말싸움을 주고 받은 적도 있었으니까요.

 

기누가와가 출간된 때는 2010년 4월인데, 이 무렵이면 아직 전여옥은 국회의원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재순은 전여옥을 미워해도, 차마 직설적으로 그 실명을 드러내며 그녀를 공격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혹시 유재순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했던 전여옥에게 복수를 하면서도, 동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가명으로 전여옥을 공격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기누가와의 진짜 저자가 혹시 유재순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기누가와의 여러 의문점들은 쉽게 해결됩니다. 기누가와는 유재순이 전여옥에 대한 분노를 풀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 목적을 달성한 이후, 그 책을 썼다는 '단이리'라는 인물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추리인 것 같지 않습니까?

 

덧붙여 기누가와의 저자라는 '단이리'라는 이름도 알고 보면 무척 의미심장합니다. 한 번 단이리로 검색을 해보니, 이런 글이 뜨더군요?

 

(http://ask.nate.com/knote/view.html?num=950396&sq=%B4%DC%C0%CC%B8%AE

그래서 저작권을 인격권도 재산권도 아닌 인격권적 요소와 재산권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단이리의 저작궈너 1원론이 나오기도 하였다.)

 

'단이리'라는 이름이 저작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저작권이라... 이거 자기 원고를 무단으로 도용한 전여옥에 대한 유재순의 분노를 다분히 반영한 이름이 아닐까요? 표절한 박민자를 저작권과 연계된 단이리가 글로써 벌한다...

 

끝으로 이 글은 유재순과 전여옥 두 인물에 대한 모독이나 폄하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그저 저의 개인적인 상상력과 추리가 들어간 신변잡기적 성격임을 밝혀둡니다.

 

 

--------------------------------------------------------------

 

아래는 제가 예전에 적어둔 이 책의 평인데, 중복되는 것 같아서 여기에 옮깁니다.

 

---------------------------------------------------------------

 

  1. 한국이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책의 앞 부분에서 저자는 한국 대통령(아마 MB인가 보다.)의 입을 빌려, 한국도 이제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어느 부분에서는 일본을 앞지르기까지 했는데 언제까지 일본에 응어리를 가지고 있을 거냐면서 당당하게 외친다.


  하지만 2011년 현재 한국의 GDP규모는 세계 15위로 주저앉았다. 러시아와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들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밀려난 것이다.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지닌 신흥국들이 본격적으로 경제 발전에 들어서면 그 순위는 더욱 더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세계 경제 순위는 17위에서 20위, 어쩌면 25위나 30위까지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 때 저자는 뭐라고 할까? 한국은 세계 20위의 경제 대국? 30위의 경제 대국?


  그리고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 분야가 대체 몇 개나 있을까? 나는 일본을 경박하게 추종하는 자들을 매우 혐오하고 경계하는 성격이지만, 일본이 경제 규모와 다른 분야에서 한국보다 뒤떨어진 것이 무엇일까? GDP규모? 국민 소득? 국민 구매력? 인구? 국토 크기? 국제적인 지명도? 군사력? 출판 시장? 내수 시장? 범죄? 과학 기술? 도대체 어느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것일까?

 

 

  2. 일본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자?


  경제 규모에 이어 저자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두 나라를 합해봐야 중국의 1개 성 밖에 안 된다는 언급을 하고, 그러니 팽창하는 중국에 맞서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한다.


  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이미 GDP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도 함부로 다루지 못할 위치로 성장해 버린 중국에 일본과 손잡고 맞서자니?

 

  더구나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 무역 흑자의 90%는 중국에서 나온다. 즉, 중국과 교역을 하면 할수록 우리한테 이익이란 말이다. 반대로 한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일본과 교역을 할수록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한테 이익을 안겨주는 중국에 적대하고 일본과 손을 잡자고? 도대체 이 구절을 무슨 생각으로 썼을까?

  덧붙여 저자는 일본의 새 총리인 하토야마가 아시아를 중시한다며 야단법석을 떤다. 하지만 하토야마는 이미 물러난 지 오래이고, 그 뒤를 이은 일본 총리들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을 경계하는 쪽으로 외교 방향을 돌렸다. 이 책의 원고는 하토야마가 집권하던 2008년에 쓰여진 모양이다.

 

  그리고 아시아 중시 외교를 한다던 하토야마도 ‘독도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라는 자민당의 주장에 동조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쿨하게 독도를 넘겨줘야 할까?  


 


  3. 반일을 외치는 자들은 전부 돈에 팔린 얼간이, 아니면 위선적인 변태?


  저자의 주관적이고 악의적인 편견이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이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반일운동을 펴고 있는 박민자는 일본인 이복 언니를 만나서 일본에서 반일 시위를 펼 준비를 하는데, 막상 거기에 응하는 사람이 없자 그녀(언니)가 운영하는 여행사의 직원들과 친척들을 동원해서 가짜 시위를 한다고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 일본 천황의 사과를 요구하는 반일 시위를 주동하는 박민자는 사실, 일본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틈만 나면 일본에 여행오고, 그럴 때마다 일본인 호스트를 불러 자신이 우월감을 누릴 수 있게 섹스를 일삼고, 일본 물건을 미칠듯이 좋아하는 위선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더욱이 그녀가 일본을 공격하는 글들은 그녀 자신이 아닌 남이 쓴 글들을 베껴 썼다고 나온다. (혹시 친구 유재순의 글을 무단 도용해서 출판한 책 ‘일본은 없다’를 쓴 전여옥을 모델로 삼은 건가?)


  즉, 저자의 말대로라면 일본을 비난하는 반일 운동이나 시위를 하는 자들은 모두 남이 동원하고 돈에 팔린 가짜 시위꾼이나 아니면 입으로만 일본을 욕하면서 일본을 추종하는 위선자 내지 일본인과의 섹스를 갈망하는 변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악의적이고 매우 역겨운 편견에 불과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2차 대전 중에 저질렀던 추악한 전쟁 범죄를 폭로하고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열심히 운동을 한 일본의 시민 단체들, 일본의 억지스러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아예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독도 연구에 몰두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인정한 일본 공산당과 기독교인들, 일본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실은 중국과 조선 침략을 선동하고 약자의 인권 탄압을 정당화했으며 민주주의를 ‘미친 자, 무뢰배들의 짓거리’라고 비난하던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용감하게 밝혔던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 같은 훌륭한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도 전부 돈에 팔린 얼간이, 아니면 위선적인 변태란 말인가?


  그리고 한국인들이 일본 욕하면서 일제 상품 선호하고, 일본 여행 자주 가니까 위선자라고? 그런 논지라면 미국으로 제일 많이 불법 밀입국하고 미국 상품 선호하고 미국 여행 자주가는 멕시코인들은 옛날 미국이 전쟁 걸어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빼앗아간 일에 대해서 불평할 자격도 없나?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드라마를 자주 보고, 영국에 자주 여행가니 영국인들이 아일랜드를 7백 년 동안 지배하면서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을 학살하고 굶겨 죽인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할 자격도 없나?


  이런 식의 비난을 가리켜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이를 가리켜 표피 모순이라고 불렀다. 극히 표면적인 일을 가지고 전체를 왜곡시켜 폄하하려는 못된 수작이라고 말이다. 한 예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를 중국에서 몰아낸 중국 공산당원들이 서양식 트럼프 카드 놀이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서구를 추종하는 위선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트럼프 카드는 그냥 재미있는 놀이감에 불과하고,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가 나타나면 트럼프 카드를 지체 없이 던져 버릴 것이다.

 

 

  4. 일본의 극우파는 극히 일부?

 

  소위 한국의 일본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가 이런 식이다. 한국을 욕하거나 미워하는 극우파들은 전체 일본인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너무 열내지 말자. 대다수 일본인들은 한국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 라는 식이다. 예전에 딴지일보에 글을 올리던 어떤 사람은 일본인들은 당장 대마도가 한국 땅이 되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만 없으면 관심 없다, 라고 했었지?


  그러나 일본 최대의 인터넷 커뮤니티이자 한국을 욕하는 혐한 사이트로 유명한 2ch의 하루 평균 접속자 수는 1500만 명, 전체 일본 인구의 10%를 넘는다.

 

  일본의 혐한이나 극우파가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틈만 나면 한국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4선에 성공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유명인사다.


  또한,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위인 1위에 랭크된 일본 근대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을 사람이 아닌 짐승 수준의 야만인으로 여기고 극도로 멸시했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언들을 몇 가지 올려 본다.

 


  “조선은 아시아 중에서도 조그만 야만국으로 그 쪽에서 조정을 찾아와 우리의 속국이 된다고 해도 기뻐할 만한 가치가 없다.”- 1875년 10월

 

  “일국의 인심을 흥기하여 전체를 감동시키는 방법으로 외전(外戰)에 필적하는 것이 없다. 진구황후의 삼한정벌은 1700년의 옛날에 있었고, 도요토미의 출사도 3백년을 지났건만, 인민은 이를 잊을 수 없다. 전쟁은 인심을 감동시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시키는 힘이 강대한 것, 우리 인민의 보국심을 진작시키기 위한 수단은 이들과 일전을 벌이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 1878년의 <통속국권론>에서. 조선을 공격하자는 이른바 정한론을 열렬히 찬양.


  “조선은 미개하므로 이를 유인하고 이끌어야 하며, 그 인민은 정말 완고하고 고리타분하다.” - 1882년 3월.


  “조선인은 미개한 백성이다. 극히 완고하고 어리석으며 흉포하다.” - 1882년 4월


  “조선인은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우며 거만하다.” - 1882년 9월 6일.


  “조선의 사절이 미국에 가면서 중국인을 동반했다는 것은 거지와 천민이 함께 가는 것과 같다.” - 1883년 8월.


  “천황이 시모노세키로 와서 행재소를 세우고, 조선과 중국에 맞선다면 전군은 용기백배하여 기꺼이 적(조선과 중국)을 몰살하게 될 것이다.” - 1885년 1월 8일


  “어쨌든 그런 국가(조선)는 하루라도 빨리 멸망하는 쪽이 하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1886년 10월. 후쿠자와 이치타로에게 보낸 서신에서.

 

  “조선의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다를 것 없다. 실제로는 조선을 정복한 것으로 간주해 그 정부 중추의 지위에 일본인을 채워 실권을 잡게 하고, 일체 일본인의 손으로 직접 실행케 해도.” - 1895년 1월 5일.


  일본 내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배우 기타노 다케시도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뻔뻔한 나라, 한국의 드라마를 보지 말라.”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의 극우파는 정말 소수(?)인가 보다. 
 

 

  5. 일본 남자는 로맨틱가이, 한국 남자는 변태 마초?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가의 일본 사랑이 너무나 지나쳐서 가히 뒤틀린 정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인 박민자를 목졸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시체를 겁탈하는 시간까지 저지른 파렴치한 살인범을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이룩했던 업적이 부정당하자, 분노를 못 이겨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일본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두려움과 죄책감에 짓눌린 나머지 자살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내가 여러 추리나 스릴러 책들을 읽어 보았지만,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을 한다는 맥 빠지고 허탈한 설정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는 일본 남자라면 변태적 살인자도 불쌍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그리고 일본인 살인범 아버지의 입을 빌려 “조센진 계집(박민자)는 죽어 마땅하다.”라고 당당하게 일갈하기까지 한다.


  저자에게 당부한다. 이왕 내친 김에 네덜란드 여성을 총으로 쏴 죽이고 그 시체를 먹어치우고 시간(屍姦)까지 한 희대의 식인종 살인범인 사가와 잇세이의 일대기도 써보면 어떨까? 혹시 누가 아는가, 그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또, 이 작품에서 성(性)의 주체는 일본인 남자와 한국 여자, 거기에 서양 여자가 두 건 끼어든다. 물론 중심적인 성의 주체는 일본인 남자다. 거기에 종속적으로 한국 여자와 서양 여자가 딸려온다.

 

  이 책에서 시종일관 일본 남자는 박민자의 살인범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로맨틱가이로 묘사된다. 심지어 나이 70에 젊은 영국인 여성 간호사와 섹스를 하는 일본인 살인범의 조부조차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런데 늙은 노인이 젊은 여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아름다울까? 아무래도 거북해서 나는 정서적으로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


  반면, 한국 남자가 성의 주체로 나오는 부분은 딱 한 번뿐이다. 그나마도 여성에 대해서 폭력과 억압을 일삼는 ‘변태적인 마초’들로 묘사되고 있다. 박민자의 아버지는 목욕을 하고는 집안에서 벌거벗고 다니며, 심지어 딸과의 근친상간을 암시하기까지 하는 역겨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한국을 침략한 북한 인민군 출신 군인마저도 여성을 배려하는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로 묘사되고 있다. 도대체 저자는 한국 남자와 한국 사회를 얼마나 지독하게 혐오하기에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일까?


  저자는 작품 속에서 술집 접대부 출신이었다가 동거하던 야쿠자의 눈에 들어 대학 교수가 되고 한국을 악의적으로 모욕하고 있는 오선화(작중에서는 가명 처리했다.)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저자도 오선화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녀보다 더욱 교활하게 혐한과 친일을 선동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혹시 그녀와 비슷한 출신은 아니겠지? 
 


  6. 개방적인 일본 사회?


  저자는 한국인 여경찰을 접대하는 일본인 형사의 입을 빌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해군은 영국을 본받고 육군은 프로이센을 본받았으며, 전 세계의 문화를 모두 수용할 정도로 개방적인 국가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그렇게 개방적인 일본이 왜 2천년이 넘게 신성불가침 군주를 섬기는 천황제를 유지하는 것일까? 또, 천황의 전쟁 책임이 있다고 말한 시장이 피격까지 당했을까?


  언젠가 일본을 취재하러 갔다가 돌아온 한국인 기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은 흙으로 덮인 바위와 같다고. 겉으로 보기에는 개방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폐쇄적이라고 말이다.

 


  7. 일본의 전쟁 범죄는 침묵하면서 한국의 일제 선호는 씹는 이중적 잣대.


  일본의 해군과 육군이 프로이센을 본받아서 창설된 군대라고 말하면서 칭송하는 저자는 정작 일본이 그 군대를 가지고 근대 아시아 국가들에 저질렀던 침략이나 학살 같은 전쟁 범죄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는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자행한 침략이나 학살(1919년 3월 1일 독립 선언 당시, 일본의 무자비한 진압이나 1921년 관동 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퍼뜨린다고 일부러 유언비어를 퍼뜨려 놓고는 무고한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한 끔찍한 범죄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일본의 한국 병합이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뿐이다, 라고만 아주 간략하게 말한다. 심지어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것은 러시아의 침략을 막고 동양의 평화를 위한 공리적인 시각에서였다는 어이없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한다.

 

  그런 반면, 한국인들이 일본 상품을 좋아하고 일본 여행을 즐기는 현상을 무슨 파렴치하고 가증스러운 범죄처럼 서술하고 있으니 정말 어이없는 지경이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전쟁 범죄는 침묵하거나 넘어가면서, 그보다 훨씬 평화적이고 온건한 한국인들의 행보는 밉살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이중 잣대도 이 정도면 거의 예술이다.

 


  8. 일본인은 소박하고 강직, 한국인은 뻔뻔하고 파렴치?  


  책의 서두에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민족성과 국민성을 들먹이며, 일본인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소박하고 정직한 교육을 받고 자라며 반대로 한국인은 남을 이기라는 이기적인 교육을 받아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자란다고 악평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뻔뻔하고 파렴치한’ 일본인도 상당히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인사 두 명만 들어보자. 수십년 동안 한국의 산케이 신문 지국장으로 있는 구로다 가쓰히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비빔밥 먹은 미국인 '양두구육'에 경악 할 수도…"

 

  "한국 성노예 여성들, 가난 때문에 택한 거 아닌가"

 

  "한국, 위안부 문제로 민족적 쾌감 즐긴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 공식 입장이 교과서에 기술되자 한국이 다시 소란을 피우고 있다. 한국이 영토 문제에서 일본에 양보하면 어떨까"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 근대 일본의 지성인(?)이라고 칭송받는 후쿠자와 유키치 역시 아래와 같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발언들을 남겼다.  


  “대만의 반민 등은 필사적으로 저항을 시도하나 대수롭지 않은 오합지졸의 좀도둑떼. 무지몽매한 오랑캐 대만인을 모조리 바깥으로 쫓아내고 일체의 권력을 일본인이 장악하고 그 전토를 모두 과감히 일본화하는 방침을 확정하고.” - 1895년 8월 14일


  “대만에 있어서는 섬 전체를 소탕하고 원주민 같은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말라. 비록 무기를 들고 저항하지 않아도 우리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무리는 하루도 그냥 놓아둘 수 없다. 조금이라도 우리 병사에 저항하는 자는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가릴 것 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주살하고 살육하여 살아 있는 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 1895년 8월 14일.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대만인은 닥치는 대로 주살하고, 그렇지 않아도 불순한 자들은 모두 쫓아내야 한다.” - 1895년 8월 22일.

 

  “우리에게 반항하는 대만 도민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여 악인의 무리를 없애고, 병력을 동원하여 가차없이 소탕하여 이파리도 말려죽이고 뿌리도 끊어 모든 악인의 무리를 섬멸시키고 토지 같은 것은 모조리 몰수하여 섬 전체를 모조리 관유지로 만들라.” - 1896년 1월 8일.


  “대만인의 완고무식함은 그들의 성질로서 도저히 깨달을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섬멸하는 것 외에는 수단이 없다. 풍속습관에 대한 법률 같은 것은 일본 국내와 똑같이 집행하고 조금이라도 못 본 척 봐주어서는 안 된다.” - 1896년 1월 15일.

 

  “매춘부의 해외 진출은 결코 비난해서는 안 되며, 자유롭게 하는 것이 경세상 필요하다.” - 1896년 1월 18일.

 

  “대만의 미개한 야만인에게 문명의 법률을 시행하려는 것은 수레꾼이나 말구종의 무리에게 무가 집안의 예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 1896년 7월 29일.

 


  더불어 사람들이 무슨무슨 민족성이니 국민성이 하면서 나라를 제멋대로 편가르고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못된 버릇 좀 제발 그만 두었으면 한다.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전부 술주정뱅이는 아니며, 독일인이라고 해서 모두 무뚝뚝하지는 않으며, 영국인이라고 해서 전부 예의바르지도 않으며(이 책의 저자도 영국인들이 예의바르고 점잖다고 썼는데, 사실 영국의 청소년 범죄와 엽기적인 범죄는 그야말로 아찔할 정도로 많다! 심지어 현직 국회의원 부인이 매춘을 하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인이라고 모두 타문화에 관용적이지도 않다.

 

  최근 일이지만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 일본의 모습을 보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국이나 중국 및 러시아 같은 주변국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방사능을 바다로 마구 버리는 짓까지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저자가 칭송한 ‘소박하고 정직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9. 야쿠자와 일본 사회가 한국 여성을 두려워하고 존중한다?

 

  저자가 자뭇 자랑스러운 필체로 묘사한 내용이다. 일본의 야쿠자가 한국 여성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존중까지 한단다. 부부싸움을 하면 한국 여성은 식칼을 들고 덤빈다나 뭐라나? 그 무서운 야쿠자가 한국 여성을 두려워한다니 경사로세? 우와, 한국 여성 만세! 한국 남자들은 영광인 줄 알어, 이것들아!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 한 가지를 들어 보겠다. 일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인데, 32세 된 강모 씨라는 한국 여성이 61세 된 이누마 세이이치(飯沼精一)란 남자에게 목이 잘려 살해되고 그 시체가 산속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고, 상해치사죄가 적용되어 이누마 세이이치는 징역 9년을 선고 받았으며, 이에 강씨 유족은 판결이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한국 여성은 일본에서 목이 잘려 죽어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죄란다. 정말 한국 여성은 일본에서 존중받고(?) 있나 보다.

 

  덧붙여, 일본 사회에서 한국 여성의 이미지는 좀 심한 말로 한다면 ‘싸구려 창녀’에 가깝다. 왜? 비싼 엔화 벌려고 자진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술집에서 일본 남자들과 놀아나니까.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접대부 여성의 확인된 수만 6만 명이란다. 이러니 일본에서 한국 여성의 이미지가 어떨까?

  저자가 일본의 쓰레기장이라고 부른 인터넷 사이트 2ch에서 한국 여성은 ‘공중 변소’나 ‘화장실’이라고 불린다. 아무나 와서 마음대로 배설할 수 있는 더럽고 천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저자는 작품 속에서 야쿠자들을 여성들을 배려하고 보호하는 의리와 매력을 갖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야쿠자는 엄연히 조폭, 조직폭력배이다. 아무리 영화나 소설에서 그들을 미화한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반사회적인 폭력 집단인 것이다.

 

  야쿠자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범죄 조직을 연구하는 영국의 르포 작가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어떠한 범죄조직이든 그들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세포일 뿐이다.”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넘어 간 한국의 매춘 여성들이 야쿠자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 절대 다수는 야쿠자들에 의해서 감금과 매춘 강요, 돈 갈취와 성폭력에 시달린다.

 


  특히, 야쿠자들은 av 같은 포르노 비디오들을 찍어서 판매 수익금으로 삼는데, 비디오에 출현하는 여배우들을 협박하기 위해서 그녀들에게 개 같은 짐승과 강제로 섹스를 하는 수간 필름을 찍고, 이걸 가지고 있다가 여배우가 말을 듣지 않으면 공개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구역질나고 비인간적인 수법까지 동원한다.  


  낭만적이고 멋진 야쿠자? 여성을 배려하는 신사적인 야쿠자? 웃기지 마라. 그들은 폭력으로 돈을 빼앗고 사람들을 해치는 범죄자일 뿐이다. 야쿠자들 대부분이 총기와 폭탄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한국 여성이 휘두르는 식칼이 무서워서? 

 


  10. 한국 정부는 드라마나 국가 홍보 하지 말고, 해외 불법 체류나 범죄 단속이나 잘 해라?

 

  저자는 최근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 무척 고까웠던 모양이다. 작품 속에서 저렇게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해외 불법 체류야 한국인만 하나? 중국인, 러시아인, 멕시코인을 비롯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안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있는 국민들의 행동까지 정부가 어떻게 나서서 막나? 이거야말로 억지 논리다.

 

 

  추신: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

 

  저자의 약력을 보니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말만 써있을 뿐, 생년월일이나 학력은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단이리’라는 이름도 본명이 아닌 가명이다. 대체 뭐가 두려워서 가명을 썼을까? 해외에서 산다는 사람이 왜? 뭔가 떳떳치 못한 사연이라도 있었나? 


  추측컨대,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 가 야쿠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 아닐까? 작품을 읽어보면서 느끼는 저자의 자아(自我)는 분명히 여성의 것이었다. 그것도 일본을 동경하고 한국을 혐오하는 오선화의 정신 세계와 일맥상통했다.  


  끝으로 나남 출판사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졸렬한 악서(惡書)는 제발 내주지 않았으면 한다. 훌륭한 대하소설 ‘토지’를 낸 출판사가 생계형 친일파인 오선화의 ‘치맛바람’이나 김완섭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과 똑같은 수준의 책을 낸다면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