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 연구
이상훈 지음 / 주류성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흔한 말로 군기가 빠진 엉터리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한다. 그러나 서기 7세기에 존재했던 진짜 당나라 군대는 결코 '당나라 군대'가 아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제로 꼽히는 당태종 이세민은 군사를 일으킨 지 불과 8년 만에 중원을 통일한 뛰어난 군사 전략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옛날 한나라 무제가 수십년에 걸쳐 70만이 넘는 대군을 투입하고서도 끝내 실패했던 북방 유목민족들을 단 12년 만에 완벽하게 제압해 버렸다. 수나라가 망하자, 중국의 각 군웅들을 지배하면서 중국을 우롱하던 돌궐(투르크)족은 당태종이 보낸 원정군에게 너무나 순식간에 무너졌던 것이다. 단기간에 돌궐을 제압하고 중국의 영토를 북방 초원에까지 넓힌 당태종의 위세를 두려워한 유목민 추장들은 그에게 하늘의 왕이란 뜻의 텡그리 칸이란 존호까지 바치며 자발적으로 복속할 정도였다.

 

  어디 그 뿐인가? 수나라의 백만 대군도 막아냈던 고구려조차 끝내 당나라 군대에게 멸망당했다. 백제의 경우는 더더욱 허무했다. 즉위 초에 신라의 성 40개를 빼앗으며 위세를 떨치던 의자왕은 당나라 원정군이 바다를 건너오자, 대번에 힘도 못쓰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백제도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으니까. 백제를 돕겠다고 온 나라의 국력을 털어 3만의 군사를 보낸 왜국조차 백촌강에서 당군에게 철저한 참패를 당하고 나서, 어찌나 당나라를 무서워했던지 약 50년 동안 당나라가 쳐들어 올까봐 해안에 성을 쌓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이게 바로 진짜 당나라 군대의 힘이었다. 당시 주변 나라들을 모조리 제압한,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그런데 이런 당나라 군대에 맞서 신라가 이겼다. 게다가 이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신라가 고구려 유민들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요동 반도에 주둔하던 당군을 먼저 공격했다고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저자인 이상훈은 이 책 <나당전쟁 연구>에서 신라의 대당항쟁은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되어 왔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나라가 애초에 신라와 한 평양 이남의 땅을 모두 준다는 약속을 지키기 않아 신라가 불만을 품었고, 여기에 오랫동안 신라의 숙적이었으며 신라가 힘들여 멸망시킨 백제를 당나라가 다시 부활시킨 것에 분노하였던 것이다. 백제가 당의 힘을 등에 업고 다시 살아나면, 또 신라와 전쟁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신라의 오랜 노력은 전부 수포로 돌아가니 분노할 만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나라가 계림도독부를 둔 것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신라까지 멸망시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증거였다. 결국 신라는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들도 고구려나 백제처럼 당나라에 정복되어 노예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었고, 살기 위해서 당을 먼저 공격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한반도의 작은 나라인 신라가 거대한 제국 당나라와 맞서 끝내 이겼을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신라의 국력이나 군사력은 도저히 당나라와 견줄 수 없는 열세였는데?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당나라가 신라와 싸울 때, 서쪽의 토번(지금의 티벳)이 강성해서 당나라의 배후를 공격했고,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국력에 버겁다고 느낀 당나라가 신라 쪽에 보낸 군대를 대거 철수시켜 토번 쪽으로 배치했고, 그 틈을 노려 신라가 당과 싸워 이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훈은 <나당전쟁 연구>에서 그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당나라의 국력으로 볼 때, 토번과 신라 양쪽에 전선을 형성하더라도 그다지 국력에 큰 무리가 가지는 않으며, 또한 당나라가 결코 신라와의 전쟁을 대충 치른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당나라가 신라를 정복하기 위해 한반도에 투입한 병력을 모두 합치면 20만인데, 이 정도의 병력을 보냈다는 것은 당나라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허면 신라는 어떻게 당나라에 맞섰을까? 우선 당나라에 큰 증오심을 품고 있던 고구려 유민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내세워 당나라 군대에 맞서게 했다. 신라인의 희생을 줄이는 대신, 장래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고구려 유민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고구려 유민과 신라인 간에 공통의 적인 당나라와 싸운다는 동질감을 형성하여 갈등을 축소시킬 수 있다. 또한 당나라와 고구려 유민 간에 적개심을 키워,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와 손잡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아울러 신라는 오랜 적국인 왜국에 사신을 보내, 순망치한의 고사를 들먹이며 중립을 보장받았다. 만약 신라가 당에 정복되어 한반도 전체가 당나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결코 일본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덕분에 왜국으로부터 배후를 찔릴 염려를 없앤 신라는 모든 국력을 기울여 당나라의 침공군에 맞설 수 있었다.

 

  그리고 신라의 군사력이 당나라보다 강력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쉽게 무너질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했다. 중국 못지 않게 신라도 한반도에서 고구려와 백제 및 왜군과 부딪치면서 노련한 전투 경험을 쌓은 군대를 가졌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애초에 신라는 고구려 영토 전체를 차지하기 위해 요동까지 건너가 당나라를 기습 공격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당나라의 힘에 눌려 요동을 포함한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고, 결국 평양 이남의 땅만 챙기기로 전략 목표를 수정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도 나름대로 큰 성과이긴 하다.

 

  우리가 잘 몰랐던 신라의 나당전쟁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 준 저자의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하는 책을 만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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