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이영훈 지음 / 백년동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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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고전세입니다.


세종대왕. 

만 원권 지폐, 세종대왕함,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로와 세종대왕 동상, 세종문화회관 등 그의 이름을 빼고는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 구글에서 '세종'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니 35,400,000개의 문서가 검색된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명실공히 한국사 제1의 위인이다. 

그런데 세종은 정말 이토록 대한민국 국민에게 칭송받을 인물인가? 책의 제목대로 그는 과연 성군인가? 저자인 이영훈 교수는 이에 대해 역사적인 실증 자료를 가지고 따져보자고 한다. 그는 조선 후기 사회 경제사와 노비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 연구를 통한 세종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종은 역사상 유례를 살펴보기 힘든 노비제를 공고히 했다. “15~17세기에 걸쳐 전체 인구의 적어도 3분의 1은 노비였다. 이전의 고려 시대만 해도 노비의 인구 비중은 10분의 1 미만이었다. 조선왕조에 들어 노비 인구가 크게 팽창하게 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세종은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하였다. 이후 노비는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변하였다. 노비를 함부로 죽여도 큰 죄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따라 노비 가격이 고려 시대의 비해 5배나 뛰었다. 아버지 태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한편, 비가 양인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을 양인 신분으로 삼았다. 아들 세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으며, 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렸다. 세종은 노비를 정상의 인류로 간주하지 않았다. 세종은 자주 남편을 바꾼다는 편견에서 비의 정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종이 비의 소생을 모두 노비로 잡은 것에는 이 같은 노비관이 작용하였다. 이후 노비 인구가 부쩍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사에서 노비제의 전성기가 열렸다.”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둘째, 세종은 기생제를 폐지하기는커녕 공고히 했다. 저자는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정부와 지방 관아에는 춤추고 노래하고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기생 신분의 여인들이 있었다. 기생의 신분은 딸에게 세습되었다. 특정 여인에게 성 접대의 역을 강요하고 세습시킨 다른 나라의 예가 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만큼 기생제는 세계사에서 한국사가 지닌 개성적 특징을 상징하고 있다. 그 기생제를 사실상 창출한 국왕이 다름 아닌 세종이었다. 기생의 딸은 기생이라는 법은 세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기생은 관비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이전 고려 시대만 해도 기생은 관비가 아니었다. 나아가 세종은 국경지대의 고을에 군사를 접대할 기생을 설치하였다. 이후 전국 각 군현에 수십 명씩의 기생이 배치되었다. 세종이 창출한 기생제는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었다.”라고 말한다. 

셋째, 세종은 중국 명 나라에 대해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사대하였다. 저자는 “하늘에 대한 제사, 곧 천제는 역대 왕조가 천 년에 걸쳐 행한 최고 수준의 국가의례였다. 세종은 그 천제를 폐지하였다. 천제는 천자의 예로서 제후가 거행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였다. 세종은 독립국의 군국 의지를 상징하는 출정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종은 명의 황제를 섬김에 있어서 성과 예를 다하였다. 세종은 부왕의 죽음을 맞이하여 역대 군왕이 행한 25일상을 폐지하고 3년 상을 지냄으로써 왕례를 가례화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의 국가체제는 천자→제후→대부→사→서→천의 위계로 짜인 예의 국제질서로 재편성되었다. 고려왕조가 외적의 침입을 자력으로 방어한 군사국가였음에 비해, 조선왕조는 예의 국제질서에 부동의 안정성을 구가한 도덕국가였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종을 세종대왕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 즉 오늘날의 '한글'을 창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신의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정광 교수의 <한글의 발명>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종이 독자의 문자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동시대 조선의 한자 발음과 중국의 그것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동시대 조선의 한자 발음은 이 땅에 한자와 그 발음이 유입된 이래 오랜 세월을 거쳐 10세기경에 정착한 것으로서 대략 수당시대의 중국어와 일치하였다. 그런데 원명 시대에 걸쳐 중국어의 중심이 북경어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양국 간 문자와 언어의 소통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세종은 동시대 북경어 중심의 한자 발음을 정확히 표기할 목적에서 발음기호를 창제하였다. 그것이 훈민정음이었다. 글자의 뜻 그래도 백성에게 가르칠 바른 음을 표기한 기호였다. 바른 음 그것은 동시대 북경어의 한자 발음을 말하였다. 통설대로 훈민정음은 하층 서민이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개발한 문자가 아니었다. 한자를 사용하는 지배 신분의 사람들이 동시대 중국의 기준에서 정확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훌륭한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아름다운 시문을 지을 수 있도록 개발된 발음기호였다.” 즉 세종은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중국에 대한 지극한 사대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세종에 대해 이렇게 무작정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세종은 이미 당대의 양반들로부터 조선의 요순 임금과 같다는 최대의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의 국가체제는 <경국대전>의 편찬에 이르러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조선의 서민에게까지 이르는 차등적 신분과 예의 질서를 구조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독립군을 상징하는 군국의 의지는 출정의가 군례에서 배제됨에서 보듯이 현저하게 쇠퇴하였다. 이 나라는 점점 예의 질서로 부지되는 도덕국가로 순화되어갔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배력은 강고하였다. 예의 질서가 천자를 정점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15~16세기의 천하는 명 제국을 중심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그런 가운데 조선왕조가 구축한 예의 국제질서로서 국가체제는 부동의 안전성을 구가하였다. 나는 이 같은 조선왕조의 국가체제가 당대의 세계관, 정치철학, 국제 환경과의 관련에서 구현하는 합리성을 높이 평가한다. 세종은 그러한 국가체제를 구축함에 큰 공적을 남겼다. 앞서 강조한 대로 세종은 역사가 그에게 요구하는 책무를 훌륭하게 감당하였다. 그 이유로 그는 치제 당대에 이미 성군으로 칭송을 받았다. 나는 그 점을 어느 역사가보다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즉 저자는 세종의 업적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잘못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고 말한다. 성리학에 입각한 중국에 대한 철저한 사대주의가 조선왕조 오백 년이라는 번영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는 인색했다. 반면 일본은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 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했다. 그 결과는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결국 36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세종의 지성 어린 사대가 이런 결과를 초래한 밑바탕이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우리나라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어 간신히 독립했지만, 이후 북한은 소련에 의해 남한은 미국에 의해 분리되고 동족 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의지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기까지는 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까지는 선진국들의 선례를 따라 그 길을 차곡차곡 걸어갔지만, 지금부터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즉 지금까지는 '따라 하기'가 통했지만, 이제부터는 직접 길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 시점에서 갈팡질팡하며 혼돈의 길을 걷고 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심지어 건국 세력이 한데 뒤엉켜 아직도 구 시대의 감각으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격다짐하고 있는 꼴이다. 

각성해야 한다. 각자의 세력이 자신을 뒤엎고, 각 개인이 자기를 죽이는 자기 살해를 통해 새로운 철학과 이념을 제시하고 국론이 통일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발전은 여기까지가 될 것이다. 중요하고도 어려운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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