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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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영어나 제 삼국의 언어권의 사람들이 자국어로 번역된 이 책을 읽고 열광했다는 것이 놀라왔다. 신경숙 씨의 글도 김훈 씨의 글처럼 다른 나라의 말로 번역한다는 작업이 몹시 어려운, 보편적인 언어가 아니라, 우리말에 고유하게 특화된 우리 글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이 소설의 '엄마'는 식민지 생활과 한국전쟁 후, 최극빈국에서 OECD에 가입하기 까지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밑바탕에 있었던 우리나라 '엄마'의 거룩하고 원초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마 외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은 있을 것 같지도 말도 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놀랍게도 신경숙 씨의 소설 속에서 뚜렷하게 발견한 탓 아닐까 싶다. 거룩한 엄마의 모습을 나도 그의 소설 속에서 찾았다.

이렇게 놀라운 엄마는 때때로 너무 순종적이라는 이유로, 당신의 희생이 자신에게 질곡이 되었다는 변명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늘 희생했기에 늘 그래야 한다고, 무시되거나 아니면 잊혀지고 결국 버려진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엄마를 잃어버린 것으로 하기로 한다.

'엄마'의 부존재로 부터 가족들은 자신들의 옆에 있었던 '엄마'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탐구 방식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영화 라쇼몽의 원작)에서 사무라이의 죽음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큰 딸, 큰 오빠, 아버지, 그리고 떠도는 엄마의 혼, 모두가 떠올리는 '엄마'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찾는다.

늘 밭에 나가 있거나, 부엌에서 밥을 짖기 위해 달그락거리던, 글조차 모르던 무지랭이 엄마야말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 죽은 아들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성모의 거룩함과 합치한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서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들고 피에타상 아래 무릎을 꿇은 큰 딸은 마침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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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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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강(韓江)이라는 여류작가가 쓰고 있는 희랍어시간이라는 인터넷연재 소설을 읽고 있다. 아니 어제서부터 오늘까지 47회 분량을 다 읽고 또 내일의 글을 기다려야 한다.

서늘하다

라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 서늘했다.

한두줄의 문장으로 읽는 나의 가슴을 사각사각 갉아대더니 문득 잊고 있었던 감각의 단어를 집어들고 "혹시 찾으시는 것이 이것 아닌가요, 서늘함?"이라는 느닷없는 습격은, 짝사랑하던 사람이 "날 사랑해?"라고 물었을 때의 정곡을 찔린 화끈함과 고개를 끄덕일 때의 후련함, 그것처럼 복합적이면서도 깔끔하다.

이렇게 우리말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20110810에 인터넷 연재를 읽으며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래도 마음 속은 고요하고 따스하다.
오늘은 강 가에 있는 도서실로 갔다. 넓은 창 가에 앉아 강물에 겨울 오후의 빛이 스미는 것을 보며, 책을 읽었다.

이 곳의 여름밤을 기억하니.
한 낮의 무더위를 보상하는 듯 서늘하게 젖은 공기.
흥건히 엎질러진 어둠.
플냄새. 활엽수들의 수액냄새가 진하게 번져있는 골목.
새벽까지 들리는 자동차들의 엔진소리.
뒷산과 이어지는 캄캄한 잡풀숲에서 밤새 우는 풀벌레들.
그 속으로 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어.

희랍어시간 79쪽

이 글을 읽었을 때 강물 위로 감귤빛 햇살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에 맺혔던 한기가 무릎 위로 슬며시 올라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강의 문장은 이미 가슴에 엎질러져 흥건했다. 마저 다 읽기로 한다. 서서히 장님이 되어가는 희랍어 강사와 말(言)의 날카로운 의미에 질려 그만 실어가 된 여자. 그녀는 어렸을 적 불어를 배우면서 실어에서 풀려난 기억을 더듬어 아무데도 쓸데없는 희랍어를 배운다.

강사와 수강생에 불과하던 그들은, 불의에 안경을 잃고 볼 수 없게 된 강사를 여자가 집에 데려다 준 때문에 강사와 하루밤을 보내게 된다. 거의 볼 수 없는 남자와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여자가 물끄러미 앉아 보내는 개와 늑대의 시간. 남자는 "거기 계세요"라고 물으며 어둠 저 편 어디에 앉아 있을 실어의 여자에게 자신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단지 속으로...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플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 부터 단단히 걸어잠길 수 있다는 건.

같은 책 161쪽

그들이 입맞춤을 하게 된다는 사실은 논리도 필연도 아니다. 단지 난잡한 우연이고 고독한 탓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진실에 근사하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같은 책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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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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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그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하여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청문회에 출석하여 진술한 것들과 관련하여 '항명', '하극상' 등의 낱말들이 신문과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항명'은 상명하복의 준말로 항상 전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군과 같은 곳에서 기와 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급 지휘자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을 뜻하며, '하극상'은 주로 무신정권이나 사무라이 혹은 조폭 세계에서 꼬붕이 오야붕을 범하는 것을 뜻하며 역적질과 같은 반란이나 5.16 쿠테타와 같은 최고 통수권자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 즉 헌법원리에 따르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항명'과 '하극상'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일간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병영화된 식민지 시대를 지나 박정희, 전두환 두 군사정권의 엄혹한 시절의 군사문화의 껍질을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나 오히려 회귀해야 겠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항명이며,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하극상인 것이다.

그래서 검사 윤석열은 청문회에서 댓글 수사를 가로막는 거대세력을 향하여 소리높혀 외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엄중한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즐겁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을 읽고 있었다.

책 219쪽을 열자,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가 눈에 들어왔다. 게(蟹) 두마리가 갈대꽃(蘆花)을 결사적으로 부둥켜 안고(貪) 있는 그림이다. 갈대 로(蘆)자는 과거에 붙은 선비에게 임금이 주는 고기 려(臚)자와 소리가 같아서 과거에 붙는다는 뜻이고, 두마리는 소과, 대과를 다 붙으라는 격려이며, 게는 껍질이 딱딱하기 때문에 한자로 갑(甲) 즉 장원급제를 하라는 뜻이라고 오주석은 말한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화제다. 화제는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 즉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 야 옆으로 걷는다'(책 220쪽)

이 말이야말로 윤석열 검사의 기개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횡행이란 모로 가다, 거리낌없이 멋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조를 모시던 김홍도는 과거에 급제하라고 그림을 그려주면서도 왕의 신하가 되더라도 자신의 천연의 본성이나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고, 왕의 눈치나 보고 높은 자리에 있는 어르신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이렇게 화제를 단다.

윤석열 검사야말로 단원이 바라마지 않던 관리, 단창필마로 횡행한 진정한 의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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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그림, '해탐노화도' 하나만으로도 이 시대의 의인의 표상을 짚어낼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오주석 선생의 특강은 쉽고, 재미있고, 신난다. 우리 그림의 속내를 펼쳐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오?"라고 그는 묻는다. 거기에는 가방끈 길이와 관련된 내용은 일체 없다. 단지 그가 우리 그림에 들여왔던 애정과 시간,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가 얼마나 즐거워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 그림을 보는 원칙은 간단하다.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 인데,

가장 보기 좋은 거리인 그림의 대각선 길이의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우리나라의 옛그림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글을 써내려가듯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보아줄 것과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며 함께 살펴보자고 한다.

그와 함께 우리 그림을 살펴보는 여행은 정말 쉬우면서도, 즐겁고, 엄청난 것들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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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인 2024-10-1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잘못봤다. 애시당초 제대로 걸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크아악 퉤!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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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에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그것은 '분노하라'라는 제목의 책이다.

반나치 레지스탕스 운동가이자 세계인권선언문을 초안한 93살의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이 불란서 사회를 향하여 외친 공개유언이다.

한국에서 초판이 발행된 2011년 6월이라면 이명박의 집권 4년차며, 국민의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불과 4년만에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고, 자유라는 함의가 이른바 보편적 자유의 의미가 아니라 자유경쟁시장의 의미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위정자를 향해 소리높혀 외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박근혜 정부가 탄생한다. 이 정부가 탄생한 후,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 후안무치, 적반하장, 개념상실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쓰는 언어와 낱말들이 이토록 타락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라의 말(語)이 이토록 타락했는데, 나라가 온전하겠는가?

우리는 해방 후 어떤 이유에서든지 반민특위로 대표되는 분노해야 할 일을 덮어버렸고, 5·16 군사정변과 유신이 만들어냈던 사악한 일들을 또 다른 군사정권 아래서 유야무야해야 했다. 그리고 5·18 광주민주항쟁 때 학살의 주범을 그냥 풀어주어야만 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분노하기보다 타율적으로 용서하기에 급급했던 탓에, 오랜 시간과 많은 피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반면, 쟁취한 것을 그만 쉽게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이 나라에서는 절대적 가치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상대화되어버리고, 결국 애국이니 진리니 정의가 밥이 되니? 돈이 되니? 결국 돈과 주먹이야말로 진리고 정의가 되고, 공권력이 돈과 기득권을 보호하는 장치로써 존재하는 것이 나라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이다.

이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육성에는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절대적인 가치가 침해될 때 분노하라.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보장 등의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투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의 평결이 재판부에 의해 부인되고, 상사의 외압에 대항하여 직무에 충실했던 윤석열 검사가 대검 감찰에 의해 징계안이 법무부 황교안에게 회부되는 날들 중에 이 책을 읽는다. 스테판 에셀이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70년 전에 구축한 개혁안을 돌아보듯, 우리도 해방 전인 1941.11.28일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건국강령'을 돌아보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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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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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 카드를 발급받고 처음으로 도서관의 창 가에 앉아 읽은 책이다.

강남몽은 1995.06.29 17:55분 삼풍백화점 붕괴를 배경으로 하는 팩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황석영은 광복으로 부터 반세기를 얼마남겨 두지 않은 이 날의 삼풍 붕괴까지의 대한민국의 심층부를 해부함으로써 1994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는 필지의 결과라고 웅변하는 것 같다.

삼풍백화점을 거느리고 있는 삼풍그룹의 이준 회장(소설에서는 김준)의 개인적인 성장사를 통하여 반민족친일세력이 해방 후 미군과 이승만에게 빌붙어 세력을 잡고, 부와 권력을 형성해 온 내력을 정말 소설처럼, 꿈처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추정할 수 있는 실명은 이렇다.

  • 김   준 --- 이   준(삼풍그룹 회장, 관동군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미군 첩보부에 근무하다 516 쿠테타 이후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참여. 40대에 건설업 시작)
  • 김창수 --- 김창룡(관동군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해방 후 방첩대장, 특무부대장을 하면서 김구선생등의 정적을 제거함으로써 이승만의 총애를 받음. 적이 많아 1956년 출근길에 피격당해 죽음)
  • 이희철 --- 이철희(일본육군정보학교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차장을 역임. 장영자와 결혼하여 희대의 어음사기 사건을 일으킴)
  • 이후익 --- 이후락(일본군 하사출신으로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 1기 졸업, 대위 임관한 후 정보관련 업무를 추진함. 후에 중앙정보부장 역임)
  • 낙원그룹 원회장 --- 전낙원(인천 오림포스 호텔과 파라다이스 호텔 등을 경영, 카지노의 대부)
  • 강은촌 --- 김태촌(서방파 두목)
  • 홍양태 --- 조양은(양은이파 두목)

그리고 기타 실명의 인물들 --- 이승만, 박정희 소장 등

이 강남몽을 통하여 '대한민국사'와 강남불패신화와 조직폭력배들이 어떻게 정치깡패가 되는지,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것이 어떻게 거기서 살던 사람을 몰아내고 성남시를 만들었고 가난한 사람의 돈이 어떤 경로로 부자들에게 이전되는지를 황석영은 담담하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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