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새물결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번역한 책을 읽으면서 멀미를 하고 있다. 번역 책의 속의 실정성, 실정적 따위의 단어는 도무지 무슨 뜻을 가진 단어인지 모르겠다. 아마 Positive라는 단어의 번역인 것 같은데, 책 한 쪽에 무려 4~5회 씩 무더기로 출현하는데,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기표로, 아니면 번역가의 말버릇으로 거들먹거리는 단어나, '거시기', '그러니까' 식의 군더더기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동안 지젝의 책을 읽으면서 한번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번역에 만족한 적은 없다. 나의 지적 이해력의 탓이 70%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번역 상의 문제로 이해력이 떨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특히 번역가가 원전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Positive/Positivity 따위를 실정적인, 실정성이라는 단어로 단순하게 번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정적인/ 실정성'에서 실정은 '실제의 사정이나 정세'의 實情이나 實定法(positive Law)에서 보이는 '일정한 시대,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정립되어 시행되고 있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실정성이라는 단어는 '현실적인 사정이나 정세에 맞는 성질'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번역자가 쓴 실정성이나 실정적이라는 단어는 맥락 상 의미가 다르다고 느껴진다.


번역자가 사용한 실정성이라는 낱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유령같은 단어같은지 책의 270쪽에서 한번 살펴보자.


  "출발점이자 토대로서의 실재는 결여 없는 실정적 충만이지만..."

  "...부정의 변증법에 걸려들지 않는 실정적 관성의 소여이다."

  "...실재 그 자체가 실정성에서 어떤 구멍, 결여, 근본적 부정성의 ..."

  "그것은 실정성에서 이미 그 자체로 순수한 부정성, 비어 있음의 ..." 


이와 같이 번역을 해놓았지만, 실정성의 의미를 발라낼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다가 결국 원문을 읽게 된다는 고통스런 하소연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Positive는 사전을 보면, '명백한, 법령(관습)에 의해 정해진, 자신있는, 과잉의, 독단적인, 절대적인, 현실의, 실재하는, 경험적인 사실에 근거한...' 따위로 폭넓고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 중 적절한 것을 취사선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번역자의 임무다. 그런데 실정적으로 번역자는 번역의 실정성에 비추어 볼 때, 실정적 배임을 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책의 278쪽 4행에 "그것에 대한 표상의 실패는 그것의 실정적 조건이다"라고 나와 있는데, 9행에는 "표상의 실패야말로 주체를 적절히 표상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나와 있다. 그렇디면 4행은 이렇게 번역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표상의 실패야말로 그것을 드러내는 조건이다."


또 279쪽의 "전체 요점은 바로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동일성을 위협하는 이러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이 동시에 그것의 실정적 조건이 되는지를 체험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자. 여기서 실정적은 앞의 부정적(negative)이라는 단어에 반하는 뜻으로 긍정적(positive)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또 글이 이해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것은 (원문에 충실하기 위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취소선을 친 것과 같이) 너무 군더더기가 많다. 그리고 우리 말은 대명사보다는 명사를 직접적으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문장을 "요점은 우리의 동일성을 위협하는 이러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이 어떻게 동일성의 긍정적인 조건이 되는지를 체험하는 것이다"로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원문에 충실하려는 탓이겠지만, 한 문장 안에 '다시 말해', '오직'와 같은 말버릇같은 부사 따위가 군더더기로 달라붙고, 대명사가 중복된다. 따라서 문장의 경제성이 떨어진다. 대명사가 가리키는 명사나 명사구를 찾고, 쓰레기 따위로 쓸데없이 길어진 문장을 이해(독해)하기 위해, 한 문장을 몇번이고 읽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펼쳐놓고 나의 이해력이 빈약한 것인지, 번역이 개판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원작자가 이해할 수 없게 글을 (개떡같이) 썼다고 하더라도, 번역자는 독자를 위하여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찰떡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역자의 원문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나, 이 책을 읽으면 의문이 든다. 이해를 못한 사람은 절대 남을 이해시킬 수 없는 법이다.


또 번역자가 책을 쓰고 난 후 독자들로 부터 자신의 상품(번역)에 대한 의견을 듣거나, 출간 전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번역에 대하여 자문을 구해보았는지 의문이다. 출판사에서 감수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제대로 감수를 했다면 이토록 군더더기가 많고 중요한 용어에 대한 정리조차 안된 인문서적(문학, 기술, 기능서적에 해당안됨)을 그대로 서점에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책을 서점에 내놓고 판매를 하고 또 팔리는 우리나라의 도서시장에도 놀랄 정도다. 하여튼 나같이 책의 품질 불문, 자신의 지적 역량 불문하고 사서 읽는 놈이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아무튼 번역의 품질과 출판사의 감수에 대한 문제점을 제외한다면, 즉 번역이 만족할 수준에 이른다면, 지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현 사회의 분석을 위한 위대한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1
토니 마이어스 지음, 박정수 옮김 / 앨피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값싸고 좋은 문고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라져버린 우리나라 출판계에 대해서 나는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문고판이야말로 좋은 책에 대한 실증적 관념을 제공한다. 또 페이퍼 백으로 된 문고판이 값이 쌀 뿐 아니라, 출퇴근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데 반려하는 서적으로 알맞다는 것을 모른다면, 독서와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출판계는 독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지 영리를 위하여 책을 만들고 파는 곳이다.

1. 책, 그 물리적 어려움에 대해서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책의 내용이나 번역, 편집 등의 문제는 아니다. 책의 기능적이고 물리적인 면에서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독자들에 대한 고려는 아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책은 책상 위에 펼쳐져야 함에도 이 책은 그렇지 못하다. 책갈피에 돈을 숨겨놓기에 적당하다. 180도로 펼쳐지지 않을 뿐 아니라, 보아야 할 쪽(페이지)을 보기 위해서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책을 잡고 힘을 주어 펼쳐야만 책을 읽을 수 있다. 한 손을 놓으면 경첩에 용수철이라도 붙어 있는 것처럼 책은 쾅하고 닫힌다. 무게가 상당한 책으로 이 책의 상단 여백을 눌러놓고 책을 읽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무거운 책 밑으로 밀려나와 저절로 닫히기가 일쑤였다.

책이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된 데에는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제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책값은 무지하게 비싼데도 불구하고, 제본은 노동력이 별로 들어가지 않아 가장 싼 무선제본(일명 떡제본, 본드로 종이 끝을 그냥 붙이는 방식)을 한다. 이 책도 벌써 제본이 풀어져 몇 장은 책 사이에서 혀를 내밀고 있다. 이 책을 180도로 펼친다면 이 책의 제본은 풀어지고 종이는 산산히 흩어질 것이다.

종이는 두껍고 질은 좋게 보인다. 하지만 가독성 면에서 종이표면이 매끄러워 번들거리기 보다는 신문지나 갱지처럼 빛이 난반사되는 것이 좋다. 하얗고 반질거리는 종이로 만든 요즘의 책들은 컴퓨터 화면보다 더 눈이 아프다. 이런 불편하지만 비싼 종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책의 면수에 비하여 두껍고 외관 상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만큼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두꺼운 종이로 떡 제본된 이 개떡같은 책을 펼치고 읽기 위하여, 나는 책과 씨름을 했다. 그래서 "내가 슬라보예 지젝 어쩌구 저쩌구 하는 책을 미워한다"고 말하게 된다.

제발 책의 기능이나 독자에 대해서 생각을 해가면서 책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제에발!

2. 이 책, 그 내용에 관하여

우선 번역가 박정수씨는 슬라보예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이라는 책을 번역한 사람이다. 독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라캉'을 슬라보예 지젝 특유의 신공인 '꼬고 비틀어' 읽기를 시도한 이 책에, 박정수씨가 제공한 번역은 가히 외설적인 수준의 난해함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책은 슬라보예 지젝이 쓴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번역이 난해함을 가중시켰다고 말할 구석은 없다. 이 점에서 박정수씨의 번역도 괜찮았지만, 저자인 토니 마이어스의 지젝에 대한 해설이 탁월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보다 'How to read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편이 났다. 지젝의 사유에 대한 개론서이지만, 이 책은 지젝의 저작을 몇 권 쯤 읽고, "이 사람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때, 읽는 것이 좋다. 지젝의 현란한 모순어법, 들배지기 논리, 대중문화와 문학 그리고 사유들을 통하여 대타자가 사라진 이 시대의 문제를 해부하는 그의 글을 읽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란 없다.

지젝의 사유에 아무 통일성없어 보이거나, 문화비평가로서 날렵한 자신의 기지에 입각하여 떠들어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이 책은 지젝이 아주 튼튼하고 풍성한 사유의 전통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몹시 기지가 넘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기존의 사유를 재해석하고 그것을 도구로 포스트 모던시대에 당도한 '주체'의 당혹스러움과 냉전 이후 홀로 남은 탓에 냉소적일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 신으로 대표되는 '대타자'가 없는 이 세상의 병증을 아주 불안한 눈으로 진단하고,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극복 방안을 암중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어렴풋이 - 나의 역량으로 명확히 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 이전에 지젝의 책을 몇 권 읽은 후,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그 후 다시 지젝의 책을 읽어라.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도 괜찮다. 그러면 그의 문법, 그가 지향하는 바, 그가 진단하는 현실의 의미가 이전보다 투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 내용 상으로는 별을 4개 이상 주어야 하지만, 책 제본 등의 문제로 별 하나를 삭감한 탓에 별 3개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루몽 - 전12권 세트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장자라는 책에는 호접몽 이야기가 있다. 나비가 꿈 속에 장주가 된 꿈을 꾸었고 슬퍼했던 것 같다. 혹은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김경주의 시 '非情聖市' 안에는 "귀신으로 태어나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생들이 있다"고 쓰여 있다. 이 프랑켄슈타인 문법이 인간의 생애에 비하여 더 서글픈 서사구조를 가진다는 보장은 없다.

홍루몽의 서사구조는 중층적이다. 신화의 서사구조는 꿈의 서사구조와 수평선 상에 존재하며 현실의 서사는 꿈에 의하여 지배되는 착종된 구조로 되어 있다. 대국적으로는 꿈과 현실의 서사는 태고의 신화 속에 버려진 돌덩이(石頭) 위에 중과 도사가 오래 전 새겨놓은 이야기(石頭記)와 같다. 그러니까 모든 이야기는 예정조화인 셈이다.

또 지나던 공공도인이 이 석두기(石頭記)를 읽게 된다. 이야기를 읽고서 공(空)에서 색(色)을 보고, 색에서 정(情)이 생기고 정을 전해 다시 색에 들고 색에서 다시 공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정승(情僧)'이라 고치고 '석두기'를 고쳐 '정승록'이라 한다. 그 뒤 이 이야기는 오옥봉(吳玉峰)의 손을 거쳐 '홍루몽(紅樓夢)'이라 하고, 동노(東魯)의 공매계(孔梅溪)는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 제목을 지었다. 다시 그 뒤에 조설근이라는 사람이 도홍헌에서 이 책을 십년동안 연구하면서 다섯번 고쳐 쓴 다음(曹雪芹于悼紅軒中披閱十載, 增刪五次) 목록을 엮고 장회(章回)를 나누어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라 이름하고 책머리에 시 한 수를 적어 넣는다.

1. 홍루몽 줄거리

滿紙荒唐言   이야기는 모두 허튼소리 같지만
一把辛酸淚   실로 피눈물로 쓰여진 것이어늘
都云作者癡   모두들 지은이를 미쳤다고 하나
誰解其中味   이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요

1) 돌덩이 위에 쓴 이야기(石頭記)

신화시대에 공공과 전욱이 싸우다가 하늘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중국의 창세신인 여와(女媧)가 하늘을 떠받치기 위하여 대황산 무해애에서 3만6천5백1덩이의 석두(石頭)를 연단한다. 하늘을 떠받친 후, 남은 1덩이의 석두를 청경봉 아래 버린다. 이 석두가 통령보옥(通靈寶玉)으로 다년간의 수련 끝에 영혼을 갖게 되었고 스스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떠받치는데 쓰이지 못한 채, 청경봉 아래에 버려졌다는 사실이 늘 서운했다.

이 곳을 지나던 중과 도사가 이 석두를 보자 영혼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앞으로 좋은 시절, 좋은 집에 태어나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될 것임을 넌즈시 알려주고 석두에 겪게 될 이야기를 새겨넣는다.

한참 후 공공도인이 지나가던 중 석두에 새겨진 이야기를 읽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정승이라고 바꾸고 이야기(情僧錄)를 전하게 된다.

2) 애정 이야기의 본보기(風月寶鑑)

여기서부터 신화의 시대를 벗어난다. 고소(姑蘇=蘇州)의 창문성(閶門城) 안 인청 골목(仁淸巷)의 호로묘(葫蘆廟) 옆에 사는 진사은(甄士隱 : 진짜 사실은 감추어져 있다는 眞事隱과 동일한 소리)이 꿈 속에서 중과 도사가 석두 통령보옥을 경환선자(警幻仙子 : 太虛幻境의 주관자로 남녀의 치정관계를 맡아봄)의 적하궁(赤霞宮)으로 데려가는 것을 본다. 경환선자는 통령보옥을 신영시자(神瑛侍子)로 임명한다. 이 신영시자는 강주선초에 물을 주곤 한다. 진사은이 중과 도사 등이 어리석은 물건(蠢物)이라고 하는 석두를 집어서 보니 통령보옥이라고 새겨져 있고 자세한 글을 읽어보려 하니 이미 환경에 들어섰노라고 하여 눈을 들어보니 누각문에 태허환경(太虛幻境 : 아무 것도 없는 꿈 속)이라고 쓰여 있고 양쪽에 대련이 있다.

假作眞時眞亦假   헛 것(夢)이 참된 것을 만드는 때는 참된 것 역시 헛 것이요
無爲有處有還無   없음(太虛)이 있는 것이 되는 곳에서는 있음 또한 없음이라.

이 대련을 보는 순간, 그만 뇌성벽력이 나며 진사은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 태허환경을 좀더 들어가보면 중문에 얼해정천(孼海情天 : 수심과 애정의 바다와 하늘)에 쓰여 있고 대련에는

厚地高天堪歎古今情不盡   하늘 땅에 사무치는 고금의 정 다할 날이 없고
癡男怨女可憐風月債難酬   치정에 빠진 남녀의 안타까운 회포 풀 길이 없다

즉 꿈과 풍월(애정이야기)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참고로 이 태허환경의 주소는 Lihentien Guanchouhai Fangchunshan Qianxiangdong(離恨天 灌愁海 放春山 遣香同)이다. 한마디로 이별의 원망으로 가득한 하늘과 근심이 흘러드는 바다를 건너 봄이 풀린 뫼 안의 향기가 풀린 동네인데, 얼빠진나루(迷津)를 건너야 한다.

3) 남경의 열두미녀들 그리고 한 사내(金陵十二釵)

결국 태허환경의 신영시자(석두)는 통령보옥을 입에 물고 남경의 영국부(榮國府)라는 가(賈)씨의 대갓집에 가보옥(賈寶玉)이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네 누이와 임대옥, 설보채, 사상운, 왕희봉, 습인 등의 열두미녀와 함께 대관원이라는 영국부의 비원에서 보내며 시를 짓기도 하고 서로의 정을 나눈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는 중 여자들은 시집을 가거나 죽고 가씨 집안을 비롯 왕씨, 사씨, 설씨 등의 금릉 네 대가는 갖은 치정사건과 고리대, 폭력, 살인, 이권 개입등의 사건으로 서서히 영락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통령보옥을 잃어버리고 반백치가 된 보옥은 태허환경의 강추선초의 화신인 임대옥과 목석의 인연은 맺지 못하고 그만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임대옥은 죽고, 잃어버렸던 통령보옥을 찾게 되고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그만 보옥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다. 아버지의 강권에 마지 못해 과거를 보고 합격했지만, 중과 도사를 따라 홀연히 속세를 떠난다.

4) 치정스님의 이야기(情僧錄)

위와 같은 석두에 쓰여진 이야기가 한 차례 끝난 후, 공공도인 즉 정승이 다시 청경봉 밑을 지나다가 석두를 마주하게 된다. 돌에 적힌 글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기왕의 게문 뒤에 새로 여러가지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석두가 세상에 내려가 단련을 받은 끝에 밝은 빛을 내고 수도를 하여 원만하게 각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왕이면 자기 손으로 다시 한번 옮겨서 누구든 한가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널리 전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이 기이하면서도 기이하지 않고 속되면서도 속되지 않고 진짜이면서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이면서도 가짜가 아닌 이야기를 알게 되리라며,

說到辛酸處   피눈물로 씌여진 이 이야기는
荒唐愈可悲   황당할수록 더욱 슬프다
由來同一夢   애당초 다 같은 꿈이었던 것을
休笑世人癡   세인들의 어리석음 비웃으며 어쩌랴!

고 다시 계송을 단다.

2. 홍루몽이라는 소설

1) 지은이

홍루몽이란 소설 속에서 중과 도사가 돌 위에 쓴 것을 공공도인이 베껴쓰고 이를 전하여 오옥봉, 공매계 등을 거쳐 조설근(대략 1715~1763)이 십년이란 기간동안 다섯차례 고쳐쓰고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의 사실 유무는 차치하고 조설근은 홍루몽의 가보옥처럼 금릉(남경)의 대갓집에 태어났지만 옹정제의 즉위 후 조부의 해직과 가산의 몰수로 가문이 영락하면서 어렸을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요절한 다음 해, 석두기 80회 전편과 후편 약간 만 완성된 상태의 원고를 남긴 후 48세의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난다.

나머지 부분은 고악(高顎 : 1738~1815 추정)이 40회를 지어 석두기 80회와 함께 120회 전편 홍루몽으로 이름을 단다.

조설근이 남긴 후편의 내용에는 '가보옥은 몰락하여 거지가 되고, 가교저는 기녀가 되며, 왕희봉은 인심을 잃고 몸종이 되어 쓸쓸하게 죽어간다'(천지인 刊 그림으로 읽는 중국고전 335쪽)고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악의 40회의 내용은 내가 읽은 텍스트나 정갑본이나 가씨의 '영국부'가 완전히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몰락 직전 황제의 은사로 가문이 다시 회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홍루몽의 저자는 두 사람, 조설근과 고악인 셈이다.

2) 판본의 문제

내가 가지고 있는 홍루몽은 3가지다.

하나는 홍콩 三民書局의 완판 홍루몽으로 120회본 정갑본(程甲本)을 저본으로 한 홍루몽이다. 분량은 상하 두책 1400쪽에 달한다.

정갑본(程偉元이 쓴 첫 판본)은 1791년(乾隆 辛亥 冬至 後 5日)에 출간한다. 그 다음 해 정갑본을 개정한 정을본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정갑본 출간에 즈음하여 고악이 쓴 서문에 보면, 홍루몽이 인구에 회자되기 이십여년이 지났다고 되어 있는 바, 원작과 시간 간격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위원이 쓴 120회본의 서(序)를 보면, "석두기(石頭記)가 원명이며, 작자는 서로 전하되 하나가 아니다. 오로지 책 안에 조설근이 잘못된 글귀를 지우고 바르게 하기(刪改)를 수차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조설근이 작자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 하나는 홍콩 中華書局의 그림과 글이 함께 들어 있는 간사본(簡寫本 : 다이제스트판)이다.

마지막으로는 간자체로 된 연환화(만화) 홍루몽이다.

중국어나 한문을 읽지도 못하면서 욕심으로 산 책들이라 읽지도 못하고 그냥 갖고만 있다.

이번에 읽은 12권 짜리 홍루몽은 청계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 판본은 척료생이 서문을 단 석두기 80회에 고악의 40회를 더한 판본이다. 척서본은 후대의 가감을 거친 정갑본보다 원작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고 본 책의 서문에 강조하고 있다.

3) 번역의 문제

번역자는 안의운, 김광렬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다 북경중앙민족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북경외문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중국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사람들로 자세한 내용은 없으나 조선족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번역이 여간 잘된 것이 아니다. 딱딱하고 생경한 표현이 없다. 필요할 경우 의역을 함으로써 직역이 지닌 이질감을 덜어낸 탓으로 보인다. 때때로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이나 격언같은 것을 만날 수 있다. 이는 본래 북한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먼저 번역했던 것을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교정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남은 흔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문화의 총체라고 할 홍루몽에 나오는 모르는 개념이나 낱말 등에 대한 주석이 깔끔하여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3. 홍학(Redology)이란

홍루몽에 대한 연구를 홍학이라고 한다. 세익스피어 이후 하나의 작품에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연구를 하는 예는 흔하지 않다고 한다. 홍루몽은 정을본(정위원의 두번째 판본)이 출간된 이후 백여종의 간본에 30종의 속작이 나와 판본에 대한 연구도 연구지만, 홍루몽 자체가 중국문화를 읽을 수 있는 거대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유불선이 혼효된 문화 그리고 융성기의 청대의 문물과 천문, 역법, 시계 등 서양외래문물 등이 유입되어 뒤섞이는 당시의 상황 또한 연구과제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모택동은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중국의 근대사회에서 상류층의 생활이 어떠했으며, 그로 인해 인민들이 얼마나 피폐했는가를 홍루몽이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이겠으나, 홍루몽이 써질 무렵의 중국은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3대 황제의 치세가 융성하여 팍스 차이나를 구가하던 시절로 우리나라로는 정조 때였고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에 도착하면 유리창 거리에서 서적과 각종 문물을 수집하기에 바빴고 조선으로 돌아와 청나라에서 배우자는 북학을 주장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홍루몽에 나오는 단어나 시, 그리고 서사구조 만을 연구하여도 유교, 불교, 도교 뿐 아니라, 시 그리고 서상기 등의 연극, 그리고 축적되어 면면히 흘러내려온 중국문학의 대체를 감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문화의 보고로 이런 사정 상 홍학이라는 것이 나왔다.

4. 다시 홍루몽으로

홍루몽의 마지막 부분에 금릉의 미녀들이 태허환경으로 돌아가고 가보옥마저 속세를 떠난 후

天外書傳天外事   하늘 밖의 책은 하늘 밖의 일을 전하고
兩番人作一番人   두 세상(현실과 태허환경) 사람은 한 세상 사람이 되었다.

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호접몽은 나비가 장자를 꿈꾸었던 것이 맞는다. 물론 나비는 악몽을 꾼 것이다.

또 하늘 밖의 책을 하늘 밖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라 이 세상에서 읽을 수 없듯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고 쓴 고대 시인 침연이 없는 만큼 김경주의 이 프랑켄슈타인 언어는 진여복지(眞如福地)의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다.

태허환경에 반하는 진여복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련이 씌여 있다.

假去眞來眞勝假   가짜가 가고 진짜가 오매 진짜가 가짜를 누르고
無原有時有非無   없음은 본시 있는 것임에 있음은 없음이 아니다

하지만 진여복지보다는 태허환경 쪽이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명시 감상
이석호.이원규 지음 / 위즈온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한시를 갖고 만든 책에 한자의 오식이 이렇게 심한 책은 처음보았다. 번역이나 안에 기재된 시에 대한 연구나 해설 모두 괜찮으나 한시에 쓰여 있는 한자에 대해서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한자 30자 정도 들어가 있는 시 한편에 3자 정도가 틀려있다면 어쩌자는 것인지? 한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09.09.04일 초판이 1쇄 발행되었다.

올해는 교학사 한국사교과서의 왜곡문제로 시끄러웠다.

이덕일의 '한국사...' 이 책은 교학사의 한국사 왜곡 정도는 우습다고 하는 것 같다.

2006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가열되자 정부에서는 교육부 산하의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한다. 하지만 연구성과가 이병도에서 이어지는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논리를 제공하기 보다 동북공정을 강화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망국적 기구화하고 있다고 이덕일은 지적한다. 물론 이전에도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되자 한 일 정상의 합의로 2002.05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발족한 바가 있는데, 한일 간 역사에 문제가 되는 19개의 주제를 가려 2005.06.01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양국의 사학자들이 인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 따지고 역사를 바로하기 보다 오히려 한국의 고대사의 연대를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비정한 시점보다 더 낮추는 등 더 식민사관이고 친일적이었다고 분노한다. 즉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관변사학기구들이 황국사관이나 중화사관을 지지하는 매국적 보고서나 만들어 내고 있다는 침통한 보고를 하고 있다.

이덕일은 그의 다른 책 '역사사랑'에서 황국사관이나 중화사관은 국가권력이 강하게 개입된 관 주도의 어용사학이며 강한 대외팽창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통적으로 우리 역사의 시공간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공간적으로는 우리의 대륙사와 해양사를 모두 소멸시키고 협소한 반도사로 한국사를 국한시키고, 시간적으로는 단군조선을 부인하면서 기자, 위만, 한사군 등 외지인이나 식민지로부터 우리 역사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사학계가 왜곡된 배경을 한국사의 태두라고 불리는 이병도가 식민사관 맹신에서 비롯한 것에 더하여 우리 학계가 스승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학문 풍토와 1차 사료를 학자 본인 스스로 직접 검토해가며 자신의 이론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이병도 등의 친일사학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해 왔던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지도를 펼쳐놓고 삼국사기, 사기, 한서, 삼국지 등을 교차 대조해가면서 때때로 현지답사도 곁들여 역사를 연구해야 하는데, 선배교수가 불러준 노트나 딸딸 외어 석박사를 땄으니 인식의 지평이 스승에 비하여 넓어질 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상아탑이라는 곳이 스승의 연구가 틀렸다고 반박할 경우 학위를 따고 강단에 설 기회를 잃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이병도는 와세다에 유학, 일본과 조선은 같은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주장한 요시다 토우코(吉田東伍) 밑에서 배우고 귀국하여 낙랑 평양설을 주장한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밑에서 수사관보로 근무하면서 식민사학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삼국사기 초기 불신론을 주장한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등의 식민사관까지 흡수하여 해방 후 '신수한국사대관'이라는 책을 써서 오히려 식민사관을 강화해왔고, 정인보 등의 민족사학자들이 납북 등으로 부재하게 되자 한국 주류 사학계를 식민사관으로 물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인지 이덕일은 "한국 주류 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축약한 것이 바로 국사교과서"(171쪽)라고 힐난한다.

이덕일은 4부로 나누어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존재했는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조작되었는가?", "노론사관은 조선 후기사를 왜곡시켰는가?",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는가?"등을 묻는다.

1부.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존재했는가?

이덕일은 한사군은 물론 고조선 왕검성과 한사군의 위치, 그리고 패수나 열수가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한다. 고대 사서와 지도를 펼쳐들고 이러한 보물찾기에 우리를 초대한다. 이 여행은 인디아나 존스 박사를 뒤쫓아가는 것 만큼 재미있다.

그는 사기, 한서 등에서 요동과 패수와 열수, 그리고 낙랑군 그리고 조선현 등의 사료를 찾아 기원전 1~2세기의 요동으로 간다. 이러한 고대사의 지명과 사건들이 압록강에서 대동강 일대라는 한반도 북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요동의 훨씬 서쪽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부근의 갈석산(碣石山)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갈석산이야말로 당시로는 중국의 끝이자 만리장성이 끝나는 곳이며, 그 밑으로 흐르는 난하(灤河)야 말로 패수(浿水)라고 한다. 여기에 고조선이 위치했고 한나라와 싸웠으며 그 자리에 한사군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

이 글을 보면서 홍콩 중화서국에서 찍어낸 사기의 조선열전을 펼쳐보았다. 거기만도 방대한 주석이 달려 있어서 우리의 고대사가 지금의 북경 부근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방대한 자료들을 구할 수 있건만, 이병도 등은 어째서 해방 후에도 낙랑군을 대동강 일대로 남겨두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국사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학자가 스스로 자신의 고대사를 중국 것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마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2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조작되었는가?

우리나라 주류사학계는 쓰다 소우키치의 주장에 따라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모두 가짜라고 부인해버리고 '삼국지' '동이열전'은 모두 진짜라고 한다는 것이다. 쓰다 소우키치가 삼국의 성립 시기를 늦추고자 한 것은 북부는 한사군이 있었고 한강 남쪽에는 삼한이라는 78개 소국이 우글거려야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를 존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국사기에는 한반도 남부에도 백제와 신라라는 강력한 고대국가가 존재함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이병도 등은 삼국사기 초기불신론을 맹신한다.

이러다 보니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에는 쓰다 소우키치 등이 고구려가 태조대왕(53~146년) 때 건국되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13대 서천왕(270~292년) 때까지 미루고 고대국가 체제는 17대 소수림왕 때나 되었다고 보고할 뿐 아니라, 백제는 이병도가 고이왕 27년(260년)에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완비로 고대국가를 성립했다고 했는데, 이병도가 근거한 '백제본기'조차 조작되었으니 더 늦춰야 한다고 하면서 낙랑군 대방군이 고구려에 멸망된 이후 높은 문화를 지닌 유민들이 편입된 근초고왕(346~375년) 때나 건국한 셈이라는 식의 논지를 펼친다. 몽촌토성에서 수습된 목탄, 목재, 토기 등 13점의 유물이 탄소연대측정 결과, BC199 ~ AD231년에 걸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음에도 3세기 후반에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축조되었다고 보고서에 기재한다. 그리고 4세기 후반 고구려와 백제는 대방지역의 고급문화를 차지하기 위하여 30년에 걸친 전쟁을 벌인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들이 어느 나라 사학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더 우스운 것은 쓰다 소우키치가 '일본서기'를 근거로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부인했음에도 불구, 정작 '일본서기'의 14대 천황 이전의 기록에 의문을 달은 탓에 1942년 금고 3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덕일은 고대 국가성립의 필요충분조건인 철기 생산시기가 신라에서도 서기 1세기 전후이며, 고고학계에서는 한국에서 철 생산 시기는 아무리 늦어도 서기 1세기 이전이라고 보고 있다.

3부. 노론사관은 어떻게 조선 후기사를 왜곡시켰는가?

서인들은 진정한 임금은 명나라 황제이고 광해군은 제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광해군이 임금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광해군을 내쫓은 것은 임금(명 황제)에 대한 충성이라는 논리 아래 쿠테타를 일으킨다. 이런 배경에서 서인의 후예인 노론들은 일제의 대한제국 점령에 협조하고 그 대가로 기득권을 유지했으며, 자기정체성 부인과 사대주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노론사관이 식민사관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노론에 의하여 조선의 후기사가 왜곡되었는데, 율곡의 '십만양병설', 송시열이 효종과 함께 북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하는 것이나, 노론계열이 실학의 이용후생학파를 주도했다는 등의 역사가 당시에는 노론, 지금은 이병도 등에 의해서 날조 또는 지지되고 있다고 선조실록 등을 펼쳐 증거를 대고 있다.

정조와 심환지 간의 어찰이 발견되자 연구자들은 이 어찰이 정조 독살설을 부인하는 결정적 자료라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언론에 큰 글씨로 특필되었다. 하지만 이덕일은 어디에도 결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어찰을 보니 심환지와 정조가 친했고, 몸이 아프다는 구절로 보아 심환지(노론)가 죽일 리도 (독살로) 죽은 것도 아니라고 급히 말한다. 이덕일은 어찰이야말로 항상 대척점에 서 있는 노론세력을 컨트롤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정조와 노론세력 간에는 어쩔 수 없는 의리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영조가 경종을 죽이지 않았다는 신축년(1721년)과 임인년(1722년)의 사건에 대한 임인의리의 문제는 노론이 주도한 사건이고 정조는 영조의 후손인 만큼 공통의 합의 사항이고, 정조의 즉위 후 반대자인 화완옹주와 정후겸에 대한 사형 후 발표한 '명의록'에 대한 의리는 어느 선에서 상호 합의가 가능한 부분이지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년의 의리는 결코 타협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즉 노론 아니면 정조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해소될 수 있는 불구대천의 문제라는 것이다. 노론벽파는 뒤주에 갇혀 죽은 일은 노론이 살기 위해서라도 옳은 일이고, 정조는 부친 살해사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28일 전 오회연교(五晦筵敎 : 다섯번째 그믐날 경연에서 내린 교시)에서 한 이야기가 빌미가 되어 독살되었다고 본다. 그 날 정조는 "그것이(노론 벽파) 한 번 굴러 모년(사도세자 죽은 사건)의 대의리에 관계되었고, 두 번 굴러 을미년(1775년: 세손인 자신의 대리청정 반대사건)이 되었고, 세 번 굴러 병신년(1776년: 정조 즉위년의 즉위 방해사건)이 되었으며, 네 번 굴러 정유년(1777년: 자객의 정조 암살시도)이 되었다. 정유년 이후는 ... 나 또한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정조실록 24년 5월 30일조)고 말한다. 이는 이 모든 사건에 노론벽파가 연루되어 있으며 자신의 뜻에 동참하지 않으면 관두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를 간파한 노론에서 정조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4부.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1910.08.22일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한 그 해 10월 일제는 76명에 달하는 조선인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내려준다. 76명의 명단을 보면, 그 중 당파를 알 수 있는 인물 64명 중 노론 56명, 소론 6명, 북인 2명, 남인은 없다. 단적으로 3부 노론사관과 맥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노론이 친명 사대주의를 주창한 이유는 성리학을 무기로 국왕과 권력투쟁을 하기 위한 것이며, 임금이나 왕조에 대한 충성이란 개념 대신 개인과 집안, 당파의 이익에 민감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했고 일제 수작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이덕일은 분석한다.

이런 가운데 해방 정국 이후 친일파와 친일사학자가 주류 세력이 되다보니, 독립을 쟁취하고 새 정부가 수립하면 독립운동사 연구가 붐처럼 일어나는 것이 보편현상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까지 상아탑 내에서 현대사 연구는 터부시 되어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고통과 가난 속에 삶을 마감하여 자료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사는 무장투쟁사를 우선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국사교과서'는 무장투쟁보다 식민지 체제 내의 애국계몽운동이나 실력양성운동 등을 위주로 서술하다 보니 마치 항일 무장투쟁이 없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형편 속에서 해방 후 수립된 정부 성격이 민족정체성 수립과 거리가 먼데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표창과 친일세력에 대한 정리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정부 수립 후 과거사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적 표창과 친일파에 대한 청산고 함께 각종 식민지배 이론에 대한 청산작업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여 현재까지 짐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덕일은 이승만 정부 시절 독립유공자로 표창을 받은 사람은 이승만 자신과 혼자 받으면 비난이 일까봐 준 이시영 부통령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이러니 독립운동가를 발굴할 이유도 없고 안중근, 홍범도,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열사 그 누구도 독립유공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며, 역사다.

참고로 이덕일은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주의계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연구 논문인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