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니까 파랑"이라는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내 아들이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말을 곧잘해서 훈육을 할 때가 아니라면
쉬운 유아어가 아니라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내가 쓰는 표현으로 대화를 나누고
조금은 넓게 퍼져 있는 내 생각을 들려 주며 나름 나쁘지 않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 입에서 '남자니까~ 여자니까~'라는 말이 요근래 자주 나왔다.
적잖이 놀라며 왜 그럴까를 궁리하던 때, 이 책을 만났다.
유아기의 교육이라는 것이 이제 가정에서 머물지 않고
기관에 따라, 그리고 자아가 형성됨에 따라
확장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아이가 방학 후 이런 발언을 시작했다는 점에
난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럴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지해야 하는 차원에서의 성교육은 적극 찬성한다.
고유한 성향을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하나의 인격으로 자라는 교육일테니까.
하지만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이건 정말 아니지 싶다.
좌절해 마지 않는다.
내가 그 동안 열린 교육을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소용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 혼자 무릎을 끊고 띠로리---가 흘러나오는 연극무대에 선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를 읽으며
나만의 독백은 아님을 알고
휴- 안도의 한숨도 쉬었다가
펑- 하고 눈물도 쏟아냈다가
하- 하고 탄식도 했다.
참 요즘 포스트잇을 부르는 책들이 많아서 살 것 같다.
얼마나 옳은 말을 하는지 밑줄 치는 색연필이 쉴새없이 움직였다.
아무렴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부제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후에
참으로 '무례한 세상 속'에 던져진 기분을 느낀다.
그것도 많이, 다채롭게.
내가 무례하다 느꼈던 대표격은
즐겁게 놀러간 동물원에서 정자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동생 어딨어?' 물어대는 할머니였다.
본인도 가족과 함께 와서 아이 또래의 손녀가 있었는데
굳이 잘 놀고 있는 일면식도 없는 우리 아이에게 쉼 없이 물었다.
'니 동생 어딨어?'
처음에는 조금 아프신 분인가 했는데
곁에 있는 자녀들 눈치도 그렇고 아닌 것 같아서
할머니 왜 그러시냐, 우리 아이 외동이다, 거기도 손녀 있지 않냐
물었더니 내 말엔 답도 않고 퉁하신다.
그냥 던져본 말이라면 나 또한 가만 있을 수가 없다.
(이전에 있던 수많은 무례함에서 터득한 발악이라 할 수 있겠다)
자녀인 듯한 분에게 물으니 자매인데 자신들도 아이가 하나씩이란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 왜그래~'하시는데....
아무도 나에게, 내 아이에게, 미안하단 말은 물론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최고봉이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소소한 무례한 일은 아주 많다.
요근래 찾아간 청평의 한카페는 들어가자마자 아이 데려오시면 안된다고 크게 소리지르는 통에
분위기 파악 잘 하는 우리 아이는 많이 속상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불쾌하지 않은 척 하는데 바빴다.
그러면 노키즈존이라고 크-게 공지를 해놔야지!
나오며 보니 큰 나무 뒤로 어설프게 아주 작게 적어놓았다.
내 친구도 카페를 운영한다.
원래 어린시절부터 사람에 대한 허용치가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카페를 운영하며 100중에서 70정도로 노키즈존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는 수치가 올랐다고 한다.
그렇다, 힘겹게 하는 엄마들도 있겠지.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닌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키즈카페로 종결되는 요즘 상황이 슬프다.
애엄마들에게 무례한 사람은 늘어가는데
사회에서 보는 시선은 참 우리가 맘충이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공중도덕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나와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이와 나를 향한 무례함에도 당당히 맞설 것이다.
나는 개념맘도 맘충도 아니다. 나에게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p.64)"
저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 또한 아이를 낳고 '욱'하는 일이 많아졌다.
(저자는 조금 세련되게 '전투력과 행동력이 대폭 상승'(p.163)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욱'이라는 것의 대상이 사회에 대한 면면들이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 요즘 보기 드문 '정의롭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가 싶었지만 생각할수록 아닌 것도 같다.
내 스스로 왜 이렇게 욱하지 싶었던 일은,
아이 등원을 시키려고 유치원 앞에 잠시 주차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엄마의 차를
정수기배달아저씨가 딱 가로막고 주차한 것을 봤을 때이다.
그것도 차들이 위험스레 다니는 언덕 커브길에 떡하니 주차를 하고
굉장히 바삐 물통을 들고 뛰어 올라갔다.
아- 난 내 뇌를 멈추지 못하고 말이 나가버렸다.
"아저씨! 여기 앞에 주차하시면 어떻게 해요! 유치원 앞이기도 한데!"
아저씨 왈, 저도 유치원에 배달왔어요. 금방 뺄거예요.
미안하긴 한건지... 나한테 대답한 후 곁에서 당황하는 그 어머니에게도 뭔가 제스처라도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그 어머니가 나한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게 뭔 상황인가.
양성평등이고 뭐고 나도 갈데까지 간다면
왜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고 힘겨운 과정도 짊어져야 하고
'아이의 시간에 저당 잡혀 이리로 저리로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걸.
엄마가 된 이상 업무공백 따위 없다는 사실(p.144)'을 인정해야 하는 이 극한직업 속에
이런 무례한 일까지 당하고도 우리끼리 서로 미안하고 미안하다 해야 하는지...
남자는 그래도 되고
여자는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이렇게 또 도로아미타불.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제자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