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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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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기 정체성 형성의 근거


색채가 없는 쓰쿠루는 개성이 없고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중에 친구들은 쓰쿠루가 유복하고 그룹을 잇는 사슬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쿠로는 쓰쿠루를 좋아하기까지 했다. 아마 시로도 쿠로의 마음을 알았을 것이고 역시 쓰쿠루에게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름에는 색채가 없지만 주위로부터의 평가는 "냉정하면서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다자키 쓰쿠루"다.


케미가 잘 들어맞는 친구그룹으로부터 추방당한다는 것은 어떨까. 성장기의 피어 그룹은 자신의 행동틀의 준거집단이 되고, 교류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며 주체를 만든다. 동시에 어떤 그룹에서든지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하는 페르소나 또한 자신이다. 여러 그룹에 속한 우리는 각 그룹에서 대부분 수행하는 역할이 다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러 자신은 정체성을 구성한다.


쓰쿠루가 속한 그룹은 케미가 완벽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존재, 존속 자체가 목적인 그룹이었다. 그래서 이성의 감정이 그룹을 깨뜨릴 것을 우려하여 서로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억압한다. 아마 비극은 이런 감정의 억압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2. 죽음과 애도


쓰쿠루는 그룹으로부터 추방당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방황한다. 그것은 거대한 상실이고, 실제 죽음의 충동을 느낄만한 충격일 터이다. 자신이 믿는 그룹에 소속된다는 것은 안정감과 위안을 주고 인정받고 있으며 돌아갈 곳이 있다는, 어떤 잘못이라도 받아주는 내 편이 있다는 것과 같다.


이는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있다가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의 충격에서 다시 안전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쓰쿠루는 그 어머니와 같은 안정감을 상실했다. 곧 엄마의 죽음과 같다. 쓰쿠루는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산다.


쓰쿠루는 소년에서 남자로,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삶에 기대감이 없는 상처받은 어른. 사라는 말한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그리고 쓰쿠루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애도를 위해 순례를 떠난다.



3. 소중한 것의 사라짐


그룹으로부터 추방된 쓰쿠루에게 하이다라는 후배는 유일한 위안이 된다. 하지만 회색빛의 하이다는 논리적이고 총명하며 예쁜 미소를 가졌지만, 그 역시 어느 날 쓰쿠루의 곁에서 사라진다. 말 그대로 사라진다. 쓰쿠루가 시로와 쿠로의 꿈을 꾼 날, 하이다가 쓰쿠루의 사정을 입으로 받는 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하지만 팬티에 정액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것은 현실이었고, 하이다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쓰쿠루를 떠났을 것이다.


하이다는 회색이다. 아카의 동성애, 아오의 운동능력(하이다의 우아한 수영 포즈와 능력), 시로의 음악(르 말 뒤 페이), 쿠로의 육감적인 탄탄함을 합쳐놓은 듯하다. 유색의 색채를 합치면 점점 무채색이 되며 나중에는 검정색이 된다. 하이다는 빨강과 파랑, 흰색과 검은색을 섞은 회색이다. 그리고 그들 그룹처럼 어느날 갑자기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이다는 르 말 뒤 페이 앨범을 남겼다. 그것은 향수나 멜랑콜리의 의미로 사용되나,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이라는 말이다. 애도를 하지 못한자의 우울(멜랑콜리)은 그렇게 쓰쿠루를 감싼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든 나아가려면, 사라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애도하고 과거의 뚜껑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4. 순례의 끝


쓰쿠루는 시로를 용서할 수 있었다. 쓰쿠루는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겠지만 영문 모를 희생자다. 하지만 시로는 마음에 병이 있었고, 쓰쿠루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일본에 돌아온 쓰쿠루는 사라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쓰쿠루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강하게 원하게 되었지만, 아마도 사라는 쓰쿠루가 아닌 중년의 남자를 선택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쓰쿠루는 다시 한 번 상처받고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죽도록 힘들겠지만 이번에는 애도하고 다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사라가 가르쳐줬다. 상처주고 상처받고 성장하는 것. 그리고 그 상처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다. 어차피 삶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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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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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친스의 <논쟁>, <리딩> 출시기념(?) 리뷰..

테레사 수녀도 까는 히친스는 68혁명 세대이자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의 좌파 작가, 저널리스트인 지식인으로, 도킨스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경구는 히친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세상엔 회의주의자도 급진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필요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미신과 비합리를 의심하고,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논쟁함으로써 세상은 나아가는 것이다.


1
어떻게 급진주의자radical, 회의주의자contrarian의 삶을 살 수 있는지 묻는다. 폭압과 편견에 저항하는 것은 일종의 기질인 듯 하다.

2
회의주의자에게는 고독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3
삶에는 늘 불일치, 분열, 갈등이 있다. 정신은 논쟁과 의견불일치로 발전한다.

4
미신과 권위주의에 도전은 필연적이다. 치유보다 정직한 논쟁이 중요하다. 정치란 원래 분열이란 뜻을 가진다.

5
반대파의 삶의 목적 같은 건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 반대파는 현실에서 '가정'하는 삶의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60년대 미국 남부에서 로자 파크스는 흑인 여성도 퇴근 버스에서 아무 자리나 앉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6
'가정'하는 삶을 유지하려면 그 반론에 직면한다. 그 반론 중에는 인생은 원래 부조리하고 짧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냐는 수동성과 묵인을 권유한다. 이런 현실회피의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7
쿠바의 의료체계가 아무리 좋고 문맹률이 낮더라 하더라도, 쿠바에선 카스트로를 풍자할 수는 없다.

8
일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9
'모든 종교는 똑같은 거짓에 대한 각기 다른 설명'이다. 세상에 신의 말씀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지성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10
마르크스는 '종교에 대한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다'라고 했다.

11
여론조사는 질문 조작과 표본집단의 편향, 간단한 질문에 깔려있는 지배적인 가정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다. 통치권자는 여론조사를 이용하여 '대중'의 기호와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엘리트'가 '대중'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12
'도대체 당신은 어떤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그걸 묻는 거요?'

13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경험이자 나이를 먹으면서 누리는 특권 중 하나는 처음에 만났을 때 정치범이나 망명가였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것일세. (중략) 내가 현재 한국의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을 처음 만난 건 그가 레이건 정권이 용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버지니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네. 그는 한국 군사정권의 살해 기도에서 한 차례 살아남았고 납치 기도도 모면한 후였지. 그리고 김대중이 살해와 납치협박을 받았던 건 단지 그가 무모하게도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했기 때문이었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한창 조국으로 다시 돌아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그와 함께 했고, 그가 다시 체포될 때 내가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는 게 지금까지도 자랑스럽네.) (후략)' (pp.151-152)

무엇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는 어렵다. 롤모델을 찾는 것은 더욱 엉터리다. 삶은 모방하려해도 모방할 수 없다. 반대파라고 성인은 아니고 똑같이 실수투성이 인간일 뿐이다.

14
반체제 활동가나 저항 사상가는 권위에 반항하는 개인주의자라기 보다, 오히려 이타적이고 집단을 위해 행동한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했다. 사회주의는 1차 대전이나 파시즘도 막지 못했고 레닌과 트로츠키로 이어지며 타락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사회주의는 공장과 빈민굴이 통제 체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간을 소유물로 취급하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와 싸우기도 하며, 식민지배의 종식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15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국제적인 사람이 되기를 추천한다. 인간은 모두 똑같고 차이는 아주 작다. 즉 인간 사회의 분열과 다툼과 비참한 삶의 원인은 같을 수 밖에 없고, 그 원인이란 인종차별과 종교이다. 세계에는 어리석음과 잔혹함이 있는 반면, 또 어딜가든 휴머니즘도 있다.

16
인류를 이해하려면 인간이란 동물을 이해해야 하는데,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유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는 유머에서 가장 미묘한 요소이다.

17
반대파는 편집광처럼 했던 말을 또하고 또하는 것이다.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면 사기가 꺾이게 마련이다. 급진주의자로서 보상은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확신에서 얻는 자신감이다.

18
'최대한 참지 말되 최대한 신중하고 회의적이 되려고 노력하게. 비정의와 비이성을 뼛속부터 증오하되 절대로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한 비판을 게을리 말게. 그리고 이 말은 또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역사를 들먹이거나 표어로 삼지 말고 역사에서 겸손하게 배우기로 결심하라는 말이네.' (pp.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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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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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キョ-.ストレンジャ- : 都市では誰もが異邦人

 


1. 도시란 다름을 받아들이는 곳


강상중 교수가 도쿄 이곳저곳을 다니며 느낀 점과 생각을 말한다. 잡지 연재분을 묶어 낸 책으로 한 장소당 4~5 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읽기 쉽다.

자이니치로서 그는 서울을 방문하고 데츠오에서 강상중으로 이름을 정하며 한때 내셔널리스트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방황 속에서 아이덴티티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물이 흐르듯 변하는 것임을 깨달았단다. 한 사람에게도 여러가지의 모습이 있고, 그 다수의 정체성이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러모습들은 다름을 받아들임에 따라 만들어진다. 도시는 타인을 만나며 자연스레 다름이 자기안에 스며드는 공간인 것이다.

 

 

2. 거리두고 바라보기


그는 '보는 자세에 인간성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노쿠니야 홀에서 '거리를 둔 상태로 인생을 드라마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진 자가 어른'일 터이다, 사람은 여러가지 페르소나를 쓰고 자기 인생을 연출한다, 그리고 이것이 픽션의 가치다라고 이야기한다. 진보초 고서점가에서 문학을 읽을 필요에 대해 '비대해진 자기로부터 또 한 사람의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라고 하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어떤 태도와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거리를 두고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점차 성숙해져 간다.

 

 

3. 도쿄 산책


가부키자에서 전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통이라는 것은 예전 것을 보전하는 고여있는 개념이 아닌, 끊임없는 혁신하는 것이다. 바뀌어 버리면 전통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묻는 사람들에 강상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전통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구구장에서는 스포츠란 역사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탄생되고 이용되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어차피 스포츠란 정치적일 수 밖에 없고, 규칙 아래의 전쟁이며, 피를 흘리지 않음으로 이보다 더 좋은 전쟁도 없다고 말한다. 스포츠로 다소 뜨거워질 수 있지만, 애국심으로 연결해 과하게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설명한다.

 

산게자야 주오극장의 옛날 영화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 할 때는, 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던 시기가 떠올랐다. 그때는 예술영화 잡지도 있었고, 경향신문사 뒷 건물의 극장에서 심야영화로 3편을 연속 상영하기도 하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10만 관객을 넘기도 했던 때였다. 그 시절의 시네키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터넷의 대중화와 더불어, 이미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작은 오락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시대에 90년대를 추억하다니, 세월은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키하바라에서는 전자제품이란 물건의 쓸쓸함에 대해 느낀다. 코제브는 미국 소비사회를 보고 인간이 소멸하고 "동물로서 생존을 계속한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소비자의 필요가 직접 충족되는 지금이 그런 시기다. 하지만 동물의 생리적 욕망 외 인간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현대 소비사회에서 타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점차 사라지고, 소비문화를 통해 자기실현을 꾀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타쿠 문화는 그 소비문화의 아류라고 설명한다.

 

 

4. 타자와 교류,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타자와 만나, 나와 다른 것이 얽히고 스밈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강 교수는 소비문화에서의 자기실현 보다, 타인과 소통하며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시민이 되기를 추천한다. 그럼으로써 도쿄를 자유로운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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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강 교수 사진을 저렇게 많이 넣었을까. 그냥 장소 사진만 넣으면 될텐데 강상중이 아이유나 수지도 아니고 굳이 인물 사진을 그렇게 많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한다. 아저씨 얼굴 말고 난 그냥 거리 사진이 보고 싶다고!

다음에 도쿄에 가면 야나카, 네즈, 센다기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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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찬별.노은아 옮김 / 비즈니스맵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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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Moneyball, Micheal Lewis


닉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오글거린다...) The complete polysyllabic spree 를 읽다가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에 대해 호평을 한 부분을 읽었다. 얼마 전 개봉한 브래드 피트의 영화도 씨네21 별점에서 대부분 별 넷을 받은 것이 떠올라(영화의 별점이 높으면 시나리오나 원작은 훌륭할 확률이 높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책을 구매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책은 르포 기사처럼 쉽게 쓰여져 술술 읽힌다.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 에슬레틱스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atrics라 불리는 야구 데이터 통계 연구를 활용하여 적은 돈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어내려고 한다. 단장인 빌리 빈은 전통적인 통계에 따라 쓸모없는 선수 취급을 당한 선수들과, 외관상 훌륭한 선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이저리그에서 버림받고 있는 선수들을 이 데이터를 이용하여 알아봄으로써 성공했다. 


고정관념이란 그런 것이다. 다른 구단은 야구의 전통적인 통계, 스탯, 선수의 외모, 스카우터의 감 등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빌리빈은 확률을 이용한 데이터와 야구의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실제 행동에 옮겼다. 철학은 의심하기에서, 학문은 비판적 사고에서 시작한다. 과학은 회의주의로부터 발전한다. 어떤 분야에서건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것은 어렵지만, 넘어서는 순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흥미로운 점은 빌리빈 자신이 야구를 하기에 아주 뛰어난 몸과 재능을 가졌었다는 점이다. 주위에서는 그를 만년 기대주로 삼았고, 재능이 폭발하기만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는 멘탈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런저런 선수로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감했다. 자신의 실패가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그도 다른 구단주나 스카우터처럼 전통적인 스탯이나 육감을 믿었을 것이다. 선수로서 실패한 빌리빈이 단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실패 원인을 알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우리는 알면서 다시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가 성공의 자양분이 되려면 그것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고 머리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트레이드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빌리빈은 선수들을 확률적인 기계 또는 소모품처럼 대한다. 비인간적이지만, 야구의 목표가 승리이고 단장의 역할이 트레이드를 통해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 선수들은 프로로써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를 내치는 팀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고, 선수들이 잦은 트레이드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면 팬들의 충성도도 낮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장기적으로 팀의 역사를 통한 스토리 만들기나, 마케팅의 측면에서는 단점도 있을 것 같다. 뭔가 미국스러워서 아쉬운 점이다.


야구 중계를 보면 도루, 번트와 희생플라이 등 여러 작전을 여전히 볼 수 있다. 유명 타자가 꾸준히 못쳐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씩 하는 선수라고 여전히 신뢰하고 출전시키는 장면을 본다. 반면 세이버메트릭스를 적용한 선수 순위가 약간은 엉뚱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수치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또다른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겠다. 여전히 야구의 패러다임은 변화하고 데이터의 분석 방법은 진화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야구를 볼 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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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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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은 또래의 글쟁이 중 단연 돋보이는 작가이다. 그의 글들은 친절하며 술술 읽힌다. 또래에게는 위안을 주고, 다른 세대에겐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회문제는 기본적으로 계급문제이기 때문에, 세대론을 문화 측면에서가 아닌 사회문제에 환원시키는 것은 무리한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기존 매체에서든 담론 생산자든 세대론을 불러들이고 있고 사회문제를 해석하려 한다. 삐딱하게 보면 계급 문제를 희석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제 부모 세대와 대화가 안 통하는 모습을 본다. 문화적인 세대론 외에 정치적인 면에서도 계급과는 상관없이 세대간의 보편적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아마 극빈곤 시대에서 90년대 민주화 경제발전을 이루고, 다시 IMF 금융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인식의 격차가 훨씬 크다. 지금 박정희 향수의 부모 세대와 386으로 대변되는 세대, 그리고 청년 세대는 어느 때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책은 일관되게 한 권을 써내려간 것이 아니고 여러 글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거나 큰 줄기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꼭지씩 읽다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와 세대론이 정치 문제와 얽히는 지점이 보이곤 한다. 한윤형의 예상대로 사적인 것이 공적이 되고 그 반대도 되는 장면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변하려면 역시 정치를 통해서일 것이다. "파편화된 취향과 만성화된 불안의 세대"인 20대를 정치의 지형으로 끌어오려면 정치로 어떻게 변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가능성과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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