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ouch of sin 지아 장 커
1. 분노
황량한 산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 멀리 고속철도로 보이는 다리는 공사중이다. 남자는 토마토를 싣고가던 트럭 옆에 멈춰있다.
남자는 마을의 공동재산이었던 탄광을 팔아먹은 촌장에게 불만이 있다. 관리해주는 대신 일정 수수료를 받기로 했는데, 한참이나 주지 않는다. 회계한테 얼마냐 받아처먹은 건지 묻고, 당 중앙위원회에 고발해보려고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말 좀 들어보라고 한다. 하지만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저 듣기 귀찮다는 표정 뿐이다. 달구지를 끄는 말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농부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
지주인 사업가 부부가 홍콩에서 개인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환영회 때, 남자는 어처구니 없게 회장에게 도발한다. 그리고 골프공처럼 처맞는다. 남자는 퇴원후 호랑이를 두른 사냥총을 가지고 길을 나선다. 차례로 회계, 촌장을 차례로 살해하고, 달구지를 끄는 말을 채찍질하는 농부에게 총을 겨눈다. 전에는 그저 말을 무시하듯 지나갔지만, 이번에 그는 채찍질 당하는 말의 편이다. 마지막으로 회장의 머리를 날려버린 후, 주인없이 달구지를 끌고 가는 말을 보며 미소짓는다.
남자는 분노한다. 마을 사람들은 공동재산으로 자신들만의 배를 불린 회장과 촌장에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달라고 했다가 골프공처럼 얻어맞은 자신에게 골선생이라며 놀린다. 남자는 순수한 분노를 표출한다. 그저 목적은 회계, 촌장, 회장을 죽이는 것 뿐.
2. 싸이코패스
영화 처음에 청년 셋을 무심히 살해한 남자는 총 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 맞춰 고향에 내려가지만, 오랜만에 보았을 아이를 억지로 잡아끄는 폭력적인 남자다. 물론 설날의 불꽃놀이에 맞춰 총의 화염을 보여주기도 하는 가부장이기도 하다. 남자의 집은 시골이다. 저 멀리 고층 아파트와 비교하면 너무나 가난한 동네다.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한 자들이 마작판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한다. 상대의 부인은 타지로 돈 벌러 나갔고, 어떤 남자와 붙어있을지 모르며 그로 인해 에이즈 검사를 해야한다는 시비다. 남자는 싸움을 보며 썩은 미소를 날릴 뿐이다.
사실 남자는 부인에게 꽤 많은 돈을 부쳐주기도 하지만, 부인은 그 돈을 쓰기에 떨떠름하다. 부인은 남자가 시골에 정착하기를 원하지만 남자는 더 좋은 총을 가지기 위해 미얀마로 갈 생각을 한다. 집을 다시 떠난 남자는 대낮 길거리에서 은행에서 나오는 부잣집 부부를 총을 쏘고 가방을 탈취한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슬리핑 버스를 타고 가다 어딘가에서 그냥 정처없이 내린다. 사소한 시비를 거는 양아치든, 대낮 길거리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총질을 해대는 남자에게도 처자식과 엄마가 있다. 목적없이 또는 돈을 목적으로 죄책감없이 마음껏 살인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3. 여자
불륜관계의 남자는 여자를 만나고 돌아가는 고속철도 안에서 사고를 당한다. 멈춰있던 고속열차를 들이받은 고속열차는 탈선하고, 다리 위에서 몇 량이 떨어져 200명이 넘게 사망한 사건이다.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철도 인맥의 공직자 비리도 한 몫 했다. 여자는 몸을 파는 안마소의 카운터에서 일한다. 남자의 부인이 찾아와 여자를 구타하고, 여자는 심신이 지쳐있다.
마침 공사중인 동네의 도로에서 통행세를 받아 먹던 건달이 찾아온다. 그리고 업소의 아가씨를 초이스하지 않고 여자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어한다. 여자는 싫다고 난 몸파는 여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건달은 돈을 듬뿍 줄테니 서비스를 받자고 한다. 건달은 돈다발로 여자의 얼굴을 치고, 여자는 맞아도 맞아도 두 눈을 치켜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륜의 남자가 주었던 과도 칼로 건달의 가슴을 베고, 배를 찌른다.
4. 청년
청년은 고속철도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전에 일하던 세탁 공장에서는 자기잘못이 아님에도 월급을 차압당해 도망쳤다. 새 일자리는 카지노 업소의 웨이터다. 젊은 여자들을 코스프레식으로 입혀놓고 쇼를 보여주기도 하고, 상황 설정을 하고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탈의실에서 청순한 얼굴의 여자를 만난 청년은 여자에 관심이 있다. 둘은 여자의 아이패드로 인터넷에 댓글을 달면서 낄낄댄다. 남자의 핸드폰은 제일 싼 모델이다. 친해진 둘은 같이 방생을 하기도 하고, 부처님을 만드는 석상 공장 앞에서 참배를 올리기도 한다. 비오는 날 폐차장에 놓인 차안에서 키스를 하지만, 여자는 업소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없다고 한다. 자신은 부양해야 할 아이가 있단다.
청년은 손님에게 과일을 갖다주며 여자를 훔쳐본다. 여자는 손님의 요구에 가슴을 핥고, 청년은 그 모습을 보고 일을 그만둔다. 새로 일하게 된 공장은 일주일의 실습에는 돈을 받지 못하지만, 기숙사도 있고 적당히 돈을 벌 수 있는 글로벌 전자회사다. 청년이 관리자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묻자, 관리자는 타이완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기숙사에서도 어디에서도 뿅뿅 거리는 전자음이 들린다.
고향의 엄마에게 돈을 부치고 나오는 은행 앞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엄마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냐며 청년을 비난하고, 청년은 짜증나고 억울할 뿐이다. 명백히 폭스콘을 연상시키는 공장의 청년은 아이패드를 쓰는 여자를 떠나, 공장에 들어왔지만 이제 더 이상 돈도 없고, 일하고 싶지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자신도 싫다. 그리고 폭스콘의 노동자처럼 기숙사에서 투신한다.
5.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영화는 내내 폭력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폭력, 총과 칼과 구타가 일상적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폭력을 부르는 구조적인 폭력은 어떠한가. 누구나 물리적 폭력에 대해서는 쉽게 비난할 수 있지만, 구조적 폭력을 받고 있음에도 무기력하다. 상대가 누군지, 실체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비리, 탄광, 고속철도, 폭스콘, 가난, 물리적인 폭력은 어딘가 원인이 있고 그것이 인간의 탐욕이든 사회의 시스템이든,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영화는 중간중간 탐관오리를 벌하는 경극을 보여준다. 아마도 경극은 사회가 너무나 썩었기 때문에 발전한 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힘이 없는 자들은 저항할 수 없고, 연극 속에서만 정의를 실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극을 구경하던 단체관광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경극의 관객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리키고 있고, 경극 배우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외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선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을 향한다. 그리고 묻는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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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큐브의 영사기 상태가 좋지 않아, 처음 5분을 한 세번 다시 반복해서 틀어줬다. 덕분에 쓸데없는 옥의티 하나 발견. 모자쓴 살인자의 오토바이가 토마토 트럭 옆 멈춰선 오토바이 사이로 지나가는데, 처음 장면을 보면 그 정도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중간중간 끊김 현상으로 인해 또 언제 끊기려나 하는 불안감으로 집중하기 힘들었다. 필름 영사기처럼 픽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이지러지면서 그린스크린이 뜨기도 하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영화의 끊김이었다. 하지만 영화 상영 후 초대권으로 짜증은 사라졌다-_-;; 태광그룹은 최근에 증여세 및 소득세 관련해 뉴스에도 몇번 나오긴 했다. 문화재단으로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으로 문화적 안목이 높다는 세간의 평가가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시네큐브는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 천주정을 보고 나오니 더욱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중국이 이 영화 개봉을 허가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터넷도 검열하는 곳에서. 영화를 보면 역시 아직은 기 소르망의 중국에 대한 판단이 맞는 듯 싶기도 하다. 영화 속 사건이라든가, 지리 등, 옆나라임에도 중국에 대해 잘 몰라, 영화를 더 즐기지 못함이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