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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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 다

아모스 오즈

아모스 오즈는 나의 미카엘(1968)로 우리와 친근해진 이스라엘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스물아홉에 나의 미카엘을 발표했고 일흔다섯 살에

사실상 유작이 된 유다(2018)를 발표했다.


제목이 나의 마음을 끌었고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라는 글은 지금도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의 첫 장을 열었다.

이야기는 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슈무엘 아쉬는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라는 제목으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연구자였고 넓은 어깨, 짧은 목, 곱슬거리는 수염과 털로 덮인 마치 철사로 짠 양모 같은 생김이었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기를 좋아했고, 특히 같은 서클 동료들 앞에서 사회주의 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것을 사랑했다. 그는 만연체로, 즐겁게, 활기차게 말을 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가 되면 곧 참을성을 잃고 주의가 산만해져 갑자기 피곤함을 느꼈고 눈이

감기곤 했다.

그는 야르데나만을 앞에 두고도 열렬한 강의를 했는데 그녀가 말을 하면 2~3분 만에 그의 눈꺼풀이 감기고 말았다.

어느 날 그는 연인이었던 야르데나에게 이별 통보를 받게 되는데 그녀는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가 청혼을 하자 슈무엘과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인 네쉐르 사르쉡스키는 조용한 수문학자로 빗물을 저장하는 연구에 있어서 전문가였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귀에 속삭일 줄 알고 그녀의 부모님 생신을 기억하고 있을 만큼 자상한 남자였다.


비운은 한 번에 몰려온다?


슈무엘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파산에 이르고 사랑하는 여자도 이별 통보를 해온 상황 속에 그녀 아르데나 가 결혼식을 하는 그날 천식을 앓고 있던 그에게 발작이 일어났고 보건소에 실려갔지만 악화되는 바람에 바로 바쿠르 홀림 병원으로 이송되는 불운을 겪는다.

다음 날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했다.

p22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고 사랑하는그녀도 그를 떠나갔다.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는 그가 석사논문으로 준비하던 논문 제목이었다.

마음 맞는 분 구함

p 26

저녁마다 학식이 깊고 지적인 일흔 살 장애인 남성에게 말동무를 해 주시면 숙소를 제공하고 소액의 월급을 지급함.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슈무엘 아쉬는 그 집을 찾아가 일을 시작한다.

아탈리야는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미망인 이었다. 그녀를 처음 본 그날부터 슈무엘 아쉬는 그녀를 흠모하게 된다.

이 세상에 모든 종교와 혁명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 이 세상에 전쟁들이 훨씬 적게 일어날 걸세.

p 104

슈무엘은 게르숌 발드가 그의 논문 제목인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와 유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이 마실 차를 따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기록 중에서 가룟 유다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유다가 아니었다면 십자가도 없었을 테고

십자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p 125

진실로 세상에 있는 모든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는없어요.

p 158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죽었어요.

그는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P 168

유다는 열두 제자 중 가장 충성스러우며, 예수를 가장 사랑한 제자였다.

유다는 유일하게 예수와 함께 죽은 제자이다.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끝까지 예수의 주변을 지켰던 제자였고 30세겔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에게 예수를 넘겼고 예수가 죽는 그 순간 그도 함께 죽었다.

누구도 유다를 탓하지 않았다.

예수를 사기꾼이며 교활한 마술사라고 했던

유대인들조차도...

P 286

슈무엘 은 방황했다.

종교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유다를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고 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했고 또 사랑하기를 원했다.


슈무엘은 노인과 논쟁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과 가까워졌고 아주 오랫동안 알아왔고 사랑해 왔던 관계처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음을 알았고 아탈리야와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 사랑조차도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은 슈무엘에게 더 배 고픈 상태가 되어 그들을 떠나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에 아랍, 유대의 개별 국가를 각각 건설한다는 UN의 결정에 따라 1948년 지중해 동남쪽 연안과 아리비아 반도 서북쪽 일대에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으로 건설되었다.

아모스 오즈는 묻고 있다.

권고인가?

선택할 수 없는 약자의 아픔인가?

[노벨상 후보였던 아모스 오즈는 결국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고 그는 상을 타려고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로 불렸다.

"우리는 모두 가룟 유다야. 거의 여든세 대가 지났지만 우리모두 가룟 유다에 불과해 ."

그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이었을까?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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