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시선 383
최정례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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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용의 홈타운

최 정 례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고, 개천

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날개도 없이 날개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

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

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화를 낼 자

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

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

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

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 대 놓치고, 그다음 버스 안 온

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

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문득 제 말

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

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

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개 개떡끼

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었어? 다

행히 썬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

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

기로 했다지? 수억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

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이 창궐하여 다시 그들의 세상

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

은 꿈 아니었니?

사라져간 개천.

사라진 개천.

개천은 복개가 되거나 아예 없어져 버렸다.

개천은 흘러 흘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개천은 보이지 않는데도 강이 흐르고 바다가 마르지 않은

것을 보면 보이지 않는 어디론가는 흐르는 모양이다.

개천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것들은 그 수를 헤아릴수 없어서

헤아리기를 포기한다.

자연을 개인의 야욕으로 삼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야욕을 품은 그는 자연 따위에는 마음이 없는 것인지.

개천과 함께 사라진 것중 대표적인 것은

용이다.

이젠 개천이 없으니 용도 살 수가 없다.

개천에서 용이나

세상을 놀라게 한 시절이 그리 먼 옛이야기가 아닌데.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으니

용이 용을 낳는다.

개가 개를 낳고 돼지가 돼지를 낳는 것이 당연한데

용만이 용을 낳으면

무엇인가 불공평한 느낌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다시 개천에서도 용이 나는 시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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