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궁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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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궁

                                       박 향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연다.

올해 장마는 늦게 시작되었고 그런 만큼 국지성 폭우가 많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연일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다. 세월이 갈수록 예전에는 없던 것들이 새로이 생겨나고 예전과 같은 것은 존재하기 어려워지고 어렵기에 더 그리워지는 것인가 보다.

상상해 본다. 2013년의 에메랄드 궁을…….


2013년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향 작가는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이다.

잘은 모르는, 다소 생소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대상작품이기에 마음의 저울을 사용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워진 마음을 쉽게 가볍게 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는 상을 받지 못하거나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금도 에메랄드 궁과 같은 구석지고 그늘진 곳에서 자신의 글을 쓰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니 어서 그들도 그늘을 벗어나 빛의 거리로 나아오길 응원해본다.

에메랄드 궁

그곳에는 뜨거운 열기와 가뿐 호흡이 있으며, 눈물이 있고, 갈 곳 없는 이들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었다.


한낮, 스스로 몸을 팔러온 선정이 에메랄드 궁으로 들어온다.

211호. 청소하는 직원들의 휴게실로 사용하는 곳이었지만 선경이 나타난 후로는 선정의 차지가 된 방이다. 그곳에서 선정은 여자를 찾는 남자를 기다리고, 잠을 자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난다.

시작이 다소 선정적이고 소외된 이들의 에메랄드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곳은 어느 누구도 손가락을 들어 지적할 수 없는, 험담을 할 수 없는 곳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어쩌다 한번쯤은 에메랄드 궁을 상상하고 음욕의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니까.

몸을 사고팔고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관계들이 찾아들고, 그런 곳이다. 에메랄드 는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점점 나락의 길로 접어들어 운영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렇다고 손을 탁탁 털고 정리할 수도 없는 연희의 마음은 다 타고 남은 숯처럼 잔 불기만이 남아 스러져 가고 있는 중이다.

연희와 그의 남편이 운영하는 모텔 에메랄드 궁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보통사람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들로 넘쳐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뭐? 그렇게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은 어디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나쁜 사람이었나? 응, 먹고살게 없어봐, 배고픈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나쁜 사람이 된다는 말도 몰라? 그 걸 몰라?” (173쪽)


에메랄드에서 고자의 성무선악설이 외쳐지고 있다.


유부남이었던 상만을 유혹해 에메랄드 까지 오게 된 연희

돈을 벌어 딸 현지를 데려오기 위해 스스로 몸을 파는 선정

부모의 반대에도 아이를 낳고 집을 나와 에메랄드에 오게 된 혜미 와 경석

바람난 남편을 찾아다니는 마을의 여인


이들의 삶속에 녹아든 그림자는 저들만의 것이 아닐 것이고, 그들의 한숨 또한 저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울하지만도 않은, 욕망만이 넘쳐나는 곳 같지만 그곳에는 소박한 꿈과 가난한 희망이 있는 곳이었다.


잘 읽혔고 잠깐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에메랄드 궁의 붉은 네온은 오늘도 붉게 깜박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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