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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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고 주로 남기는 글들은 서평이라기엔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해서 산책단에 지원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글 솜씨를 떠나서 산책이라는 소재라면 나도 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얻었다. 막상 감투를 받아드니 감사하면서도 역시나 부담스러워서 행복한 산책자를 위하여라는 작가님의 친필 메시지가 적힌 책을 받고서 보름은 지나서야 완독하고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훌쩍 지나서 리뷰를 쓴다.

 

에세이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 기초한 글쓴이만의 감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나의 경우)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게다가 요즘 뜨는 에세이라고 하면 내가 열 살 때부터 배웠던 쉽게 읽혀야 한다는 글의 특성과는 달리 비유와 현학적 표현이 난무하여 곧잘 독자(나 나 나)를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기 마련이어서 에세이는 잘 사지 않는다. 사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의 경우에도 시적인 표현이 많아서 한 문장을 몇 번씩이나 읽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 소개 글에 조금 우울하고 불투명하며 지나치게 사소한 지리책 같은 것을 써보려고 했다는 말이 이 책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소하지만 좋았던 것은, 여기 실린 사진들이 전부 글쓴이의 휴대폰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었다. ’폰카야말로 목적 없는 산책자에게 어울리는 사치품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등산마저도 전문가를 찾는 이 세상에서 산책만큼은 전문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나아가 지나치게 산문적인 이 책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서울을 자주 드나들면서도 외면해 왔던 한 공간과 그 역사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내 시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낯선 공간을, 타인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녹사평에서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용산의 과거와 현재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지나치게 한정적이었다. 녹사평역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사람들로 붐비는 일이 많지 않은 이 역은, 거대하고 공허한 가설무대를 연상시킨다.‘는 문장에 크게 공감했던 것을 제외하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용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덥고 텁텁하면서도 싸늘한 곳이었는데 참말, 그 날은 숨이 막힐 정도로 너무 더웠을 뿐이었다.

 

따라서 내멋대로 이어가자면,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공간을 산책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멋과 맛이 있겠지만 산책의 최고봉은 역시 내가 자란 곳을 거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서 건물이 무너지기를 여러 번 해도 시간은 장소에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다. 내가 뛰어 놀고, 다치고, 싸우고, 웃어재꼈던 그 길들을 걸으며, 돌이켜보면 시간을 입지 않은 곳은 없었다. 작은 시간의 흔적들이야말로 장소를 아련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역사를 알고서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듯이, 내가 걸어온 길 위에서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은 꽤 의미깊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산책이 주는 기쁨에 고마워하는 것으로 내 산책을 마무리했다.

 

매년 찾아와도 예외없이 지겹고 힘겨운 여름도 끝이 보인다. 아침마다 방충망에 달라붙어 괴롭히는 매미도, 뜨거운 공기 덕에 더욱 파란 나무도 겨울이 되면 보지 못할 테니까, 늦게 전에 더 걸어보자..

 

 

 

세월이 흘러서 건물이 무너지기를 여러 번 해도 장소는 시간을 기억하고 시간은 장소에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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