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바꾼다 - 망가진 세상에서 부르는 회복의 노래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경적이고 복음 중심적인 사람은 결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언제나 연미의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다루신다.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다루시는 것은 사랑하는 우리가

죄의 구렁텅이에서 뒹구는 꼴을 계속해서 보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창피를 주거나 우리를 위협하기 위함이 아니다.”(『복음이 바꾼다』 202中)

 

 

 

책을 보는 내내, 요즘 나의 생활과 삶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 속에 숨은 돌덩이들은 파헤쳐 던져버리고, 마음을 복잡하게 하며 늘 갈등하게 했던 마음속에 뿌리내린 잡초와 우거진 엉겅퀴들이 뿌리채 뽑아져 내던져 불에 태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유쾌, 통쾌, 상쾌 그리고 명쾌하다라는 표현들을 노트에 수차례 적어가며 마음과 머릿속이 정돈되어 참 행복했습니다.

혼자서 말씀을 보고 듣고 묵상할 때에 위험한 것 중에 하나는 자기식의 판단과 정점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해주시고 알려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내 자신을 속이는 결론에 도달했었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표현이 좀 과장된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복음이 바꾼다”는 저를 위해서 출판된 책이 아닌가란 표현을 해봅니다. 그래서인지 프롤로그에 기록된 문장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스치네요.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17)

내면에 깊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저에게 위로의 말들로 다독여 주시고,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슬픔과 좌절로 주저 앉아있던 저에게 일어나라 다그쳐서라도 나를 바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실감나게 와 닿았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면 내 자신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69~75에서 자신의 네 가지 도구를 내려놓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①나를 의지 하는 마음을 내려놓다. ②다른 사람의 평가를 내려놓다. ③ 세상 쾌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 ④종교를 위한 종교를 내려놓다. 주님의 은혜와 신앙생활에 익숙해지면, 나 자신의 도구들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은 말씀 앞에 통제 시키려 들면서 정작 나는 이 말씀은 배제하고 저 말씀은 받아들이며 구속의 은혜를 뿌리 깊이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칭의와 양자의 과정은 받아들이려 힘쓰고 이해하려 들지만 성화의 과정은 ‘해야 하는 데…’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성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자녀만을 위한 것이다’(119)라고 표현하듯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인데 이유와 핑계가 많은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 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자녀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리를 다하고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후의 문단에 참 멋진 표현들이 있습니다. ‘성화는 우리가 값없이 받는 선물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일이다. … 우리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다.’(118)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는 자꾸 무언가 내가 했고, 내가 했더니 내가 이렇다는 것이 참 쉽게도 나옵니다. 본서 전체를 읽어보면 우리의 행함과 움직임과 칭의, 입양, 성화, 살림, 죽음, 믿음 등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시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서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고 나 자신이 바꾸려 하니깐 안됐던 것임을 책을 통해 다시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사람으로 슬픔도 하나님이 주신 감정 중 하나라고 여기긴 했지만 그에 대한 대처법에는 참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을 보는 중에 ‘슬픔에 대한 성격적 태도’(93-99)에 한참 머물러 섰습니다. ①내 죄를 분명히 보게 되다. ②죄에 대해 비통하게 되다. ③기꺼이 죄를 고백하게 되다. ④죄에 대한 미움과 새 마음을 받다. 독자의 말을 조금 더 빌자면 ‘슬픔이 죄와 나쁜 태도의 필연적 결과로 찾아오지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헛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던 것을 버리고 성경적인 슬픔, 경건한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의미로 위의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의 결과인 슬픔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 시키려 했던 보호막과 방어막으로 사용했었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내 자신이 깨어지고, 생각과 고정관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아(고집)가 여전히 생기발랄하게 살아서 주 하나님 아버지와 의 깊은 관계를 훼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웃사랑에 관한 교훈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이자 놓치고 있었던 핵심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이웃사랑은 당연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184-5). 모두가 나 자신 나의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비관적이고 특별히 우리나라는 우리라는 표현으로 울타리를 치고, 넘어가지도 넘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못된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데 내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았던 그러한 마음들이 있다면 뿌리째 뽑아지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단원의 작은 제목이 ‘전부를 팔아 복음을 사라!’는 표현부터 부드럽게 타고 들어와 심장에 콱 박히네요. 전 생애와 삶을 드리겠노라며 울며 매일같이 기도합니다. 방금도 금요기도회를 드리는 순간 그와 같은 고백을 했지요. 그럼에도 전부를 드리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헌신하고 주어진 시간에만 올인하고 틈을 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고자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본서는 제가 늘 머리로 알고 마음을 다해 생각하는 척만 했던 복음과 사명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성경적 교훈과 가르침인 ‘세상적인 어떤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복음뿐이다!, 복음이면 다된다!, 복음이 아니면 안된다!, 복음으로 살아라!, 복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으로 심령 깊숙이 끊임없이 고동칩니다. 감성에 젖어 머뭇거리고 당연하고 익숙한 신앙생활로 은혜를 값없이 여겨 이성의 판단은 흐릿해지고, 죄가 죄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혼란의 세대에 이 책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에게 중심을 잡아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에필로그에 영적빈혈, 영적과식 그리고 영적비만에 대한 표현들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후에 모든 분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