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부
애슐리 박 지음 / 두란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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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읽고 난 뒤 마음과 생각이 복잡했다. 최근에 책들은 시간적 순서보다는 주제를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결론이 이미 나와 있기에 말하고 싶은 의도는 알겠는 데 동일한 스토리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며 왜 글과 주제를 이렇게 전개해 나가고 있는 지 과정보다는 결과를 많이 비추고 있었고, 충분히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부분에서 뭔가 모를 답답한 단절(아니 망설임?)이 느껴졌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말씀을 통해 삶을 조명하여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저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며 보았다. 하나, 하나 집어 나가면서 가장 그리스도인의 척도요! 표본이요 기본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는 데 이 글은 삶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모여 하나의 기준으로 모여드는 기분이 들어왔다.

   세 번째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고뇌와 아픔을 말씀 앞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저자의 마음의 중심이 느껴졌다.

   ‘부서질수록 아름답다 죽을수록 권세가 있다’라는 그 문구처럼...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의 어느 부분이 어루 만져지길 소망했다. 그런데 반대로 나의 상처에 매스로 후벼 파는 기분에 순간에 ‘책을 덮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왔다. 여자로서 수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회한이들 때가 몇 차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어려움과 내면적 갈등이 지났고 통과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동안 실감했다. 견딜 수 없는 아픈 시간을 지내온 나에게 하나님께서‘너 참 잘했다!’라는 위로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듯 했다.

이 책이 내 손에 잡히긴 전에 책에 관한 정보를 읽으며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리고 나의 손에서 이 책을 거칠때마다 항상 머무는 구절이 이었다.

 

“한국아, 용서할게”

글쎄 …나와 한국 사이에 무슨 풀어야 할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그날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한국을 용서하겠다고.(105中)

 

  왜 나는 이 몇 줄 속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그렇게도 이해되고 공감이 될까? 박사과정 코스웍을 할 때에 나의 지도교수님은 수업시간 마다 들어오셔서

   “아이 재롱 볼 시간이 어디있느냐? 난 박사과정 할때에 집에 들어가면 골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고 글을 썼고, 잠시 눈만 붙이고 아내가 주는 밥만 겨우 먹고 옷만 갈아입고 다녔다”라는 말씀이 처음에는 대단하시다라고 다가왔지만 자주 할실수록 나에게하는 질타처럼 느껴져

   ‘교수님에게는 내조하는 아내와 부모의 말씀을 어느정도 알아들을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있었지만, 저는 내조하는 남편도 없고 친정부모님과 살지만 친정부모님의 살림을 대신하고 있으며 혼자 이제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양말 겨우 신는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단 한마디말로만 내 마음을 대신했다.

   “ 아이를 출산해 보지 못한 남자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정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난 뒤 사실 마음이 시원하거나 편하지는 않았다. 마치 본문 108페이지의 ‘내 존재가 아버지와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에 대해 아파하면서 앙갚음의 마음으로 살아간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라는 문구가 나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때때로 난 세상에게 가장 불행한 여자, 사람 구실도 못하는 못난 딸, 모범이 되지 못하고 큰 오점을 앉은 채 동생들에게도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안겨준 누나와 언니 그리고 눈에 넣어도 가슴에 담아도 아프지 않는 사랑스러운 내 딸에게 항상 미안한 엄마 그리고 부족하고 오점 많은 사역자라는 테두리의 날 가두고 채찍질 하며 아픔을 선택하며 살아온 나의 모습을 반성했다. 그리고 소망도 하나 생겼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여 아름다운 킹덤 패밀리를 세우고 진정한 왕의 신부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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