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유현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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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별로 없는 평일 낮 도서관에서,

나는 가방 속에 보드마카 지우는 용도로 갖고 다니는,

꽃무늬가 그려지고 엄마 향기가 나는 두루마리 휴지 반통을 이 책을 읽고 우느라 다 써버렸다.

 

 

문장이 주옥같지 않아도, 표현이 투박해도,

며칠 동안 읽은 글 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감동한 건,

요즘 읽었던 덥으면 잊혀지는 글들이 아니라 이 책이었다.

이게 진정, 삶이고 사람이다.

 

 

멈칫멈칫 하는 사이에 날은 간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쉬운 건 내 청춘이 아니라, 내 젊음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노모의 여생과, 그리고 노모와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다.

 

이른 여섯의 할아버지가 백한 살 된 노모를 수레에 태우고 무려 삼만 킬로미터를 돌아서 중국 땅을 구경시켜 드리다가 노모의 임종을 지켜보는, 늙은 아들의 진실한 송가(送歌)다.

 

세상 구경이 소원인 어머니를 위해 자전거 수레 페달을 밟아서 2년 반 동안 중국 땅을 여행했다.

 

아흔아홉이 된 노모와 여행을 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이어 붙힌 세발 수레를 만드는 것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모는 여행 중에 펼쳐지는 풍경에 어린 아이처럼 기뻐한다.

어머니가 여행 중에 기분이 좋을 때면 노래를 흥얼거렸다.

치아가 거의 다 빠져버려 잇몸에 힘겹게 매달린 이 세개로 부르는 노래에서는 노래 속엔 차마 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울렁이고 있었다.

 

 

"어머니, 노래 잘하시는데요."

"젊었을 땐 더 잘했지."

"근데 왜 저는 어머니가 노래하시는 걸 못 들었었죠?"

"나 혼자 불렀지.  

너무 슬픈 노래들이라서."

 

 

노모가 아파서 들른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아들과 친구가 된 의사는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오늘 아침부터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는 것.

의사의 손이 가리키는 병원 문 앞에 붙은 하얀 종이를 아들은 봤다.

정말이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를 다 하지 못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천국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계림'을 떠나려고 할 때, 노모는

"조금만 더 있다가면 안 되겠냐?"

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거의 다 둘러본 것 같다고 아들이 말하자 노모는 말했다.

"다 봤어? 그럼 또 보자."

그래서 아들과 노모는 계림에서 며칠을 더 둘러본다.

 

노모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원 같은 곳보다 자연의 산수가 그대로 드러난 곳을 더 좋아했다.

노모가 원하는 대로 계림을 다시 둘러봤다.

그런데도 노모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워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신기하게도 참 잘 만들었다."

"조물주의 힘이 대단하지요?"

"조물주란 사람이 여길 다 만들었어?

그 양반 참 재주도 뛰어나구나.

어떻게 이렇게 좋은 델 다 만들었다니?"

 

그렇게 두번을 돌았는데도 노모는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했다.

다시는 와 볼 수 없을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처럼.

 

 

아들은, 요리를 할 때면

무엇이든 참견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의 마음을 알기에 어머니의 참견을 기분 좋게 들었다.

그건 기력이 있다는 얘기니까.

 

오히려 노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했다.

냄비에 물을 반쯤만 붙고서 물었다.

"어머니, 물이 이 정도면 되나요?"

 

 

중국의 제일 북쪽 끝, 탑하에서 시작된 여행이 하얼빈을 들러, 북경과 항주를 거쳐 땅 끝 해남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노모의 기력이 쇠하고 있음을 아는 아들이

돌아가시더라도 가족들 품에서 보내드려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노모의 소원이었던 서장(티벳)까지는 갈 수 없었다.

 

아들은 수레를 끌고 다시 장사와 정주를 거쳐, 청도, 그리고 둘째아들이 사는 하얼빈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노모의 건강을 걱정하며 하얼빈부터 고향 탑하까지는 비행기로 돌아가라고 했다.

 

비행기는 커녕 자동차나 전철도 탈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아들과 노모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동네 하나도 빠져나가기 힘든 두 시간이, 비행기로는 하얼빈에서 탑하까지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향기가 정상궤도를 잡고 완만한 비행을 하기 시작하자 노모가 말했다.

 

"애비야, 비행기가 하늘에서 멈췄나보다."

 

 

 

노모가 유언으로 남긴 "서장(티벳)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말에,

아들은 노모의 유골함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다시 티벳까지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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