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
넬리 아르캉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어쩜 이렇게 말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올까. 난 아마 그녀의 반의 반도 못 떠들고 나자빠질 것 같은데 그녀는 책 말미에 이 말을 덧붙일 것 같다. '자, 이제 본론에 들어갈게.' 

 그녀가 처음부터 창녀라는 이름을 달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순수했던 한 여자아이가 창녀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불행한 부부의 아이 


 부모님의 침대는 방 하나를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지나치게 크다. 한 쪽 끝에 어머니가, 한 쪽 끝엔 더 이상 어머니에게 손끝 조차 대지 않는 아버지가 눕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녀가 누웠다. 

그녀의 언니가 어린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밤에 의지할 언니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어머니가 자기를 침대에서 내쫓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맥없이 내버려둔 그녀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누구의 딸도 아닌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자꾸만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은, 침대에 누워만 있는 어머니와 독실한 신자이지만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올 것만 같은 극단적인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아버지. 그래서인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커플들이 곱게 안 보이는 그녀. 

 죽음을 갈망하는 여자는 그렇게 자랐다. 


결국 겁나는 건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결코 혼자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랍니다. 

(p.144) 


* 우스운 사람들 


 음악회장에 모이는 사람들을 종종 구경한다. 깔끔하고 세련된 옷, 기분 좋은 웃음, 지적이고 고상한 매너. 욕이 들리지 않는 대화.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 같은 건 주지 않을 것만 같다. 클래식이 흐르는 밤은 평화롭고 따뜻하기만 하다. 

 내가 어떤 세상을 마주하고 사느냐에 따라 인간을 보는 시각도 다를 텐데 그렇다면 자신의 다리를 아프도록 벌리게 만드는 남자들을 매일 만나는 그녀에게 인간과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본인은 어떻게 할 수도 없을 만큼 뚱뚱하면서 저번에 만났던 여자애는 별로였다고 투덜대는 남자. 유대인임을 강조하면서 매일 찾아오는 까마귀 같은 남자. 방바닥에 늘 굴러다니는 털 몇 가닥을 남긴 채 떠나간 남자들... 그리고 속옷 모델들을 어지간히 들쑤시고 다녔을 아버지. 


그래서 그녀는 극지방을 동경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곳이 아닌. 


이를테면 그런 데선 출산 같은 걸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점. 그 어디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점. 가족을 형성하거나 마을과 국가 따위를 구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 등등 바야흐로 진짜 권위가 뭔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p. 100) 


 그녀에게 아름다운 세상이란, 인간을 싸그리 지운 곳이라는 것이 슬펐다. 그러게 왜 애초에 그런 일을 했냐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 같다. 나만 모르면 그만일까. 나만 그 세계에 발을 안 들이면 그만인 걸까. 그러면 부인과 하지 않는 모든 짓을 하러 창녀를 찾는 남자들이 없어지는걸까. 


* 이 직업이 사라지는 날은? 


19세기 런던에는 60가구당 하나가 매춘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제일 오래된 직업, 이제 그만 노동으로 인정을 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던 그녀. 

 못하는 것이 없는 인간이 왜 여태 천시하는 직업 하나 없애지 못한 것일까. 

 섹스 머신이 개발 된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고, 장애인의 성적욕구를 풀어줄 여성에 관련된 기사도 본 적이 있다. 탑골 공원을 전전하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 의 박카스 아줌마 소영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자신이 색골임을 못 드러내서 병인 남자들이 아니라, 그녀의 몸은 거들떠도 안 보는, 그저 일이 끝나면 가정으로 돌아가는 정식분석가였던 것도 마음을 이상하게 했다. 

 역시 여태 없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은 쉽지 않은 문제들. 

 그저 불행한 아이들이 없을수록 이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들도 하나 둘 없어지려나 어렴풋한 생각만이 남았다.  


이 게임을 진행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당신은 이해 못 할 거야. 한 사람은 문을 노크하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은 그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말이야. 

(p.161) 


 불행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굳이 낯선 방에 앉아 있을 생각도, 그 문을 두드릴 생각도 하지 않을 텐데. 나나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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