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부의 이력서
최희숙 지음, 김홍중 엮음 / 소명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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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의 혼란스러운 삶과 방향...

 

불우한 가정환경도 모자라 6.25를 겪고, 거기서 흑인에게 강간을 당해 어린 나이에 순결을 잃는 지우. 엄마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흑인에게 죽임을 당한다. 

거지생활을 하다 입양 되지만 정신적 불안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거기서 정신과 의사 서재우의 극진한 보살핌과 애정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서재우에게 별 다른 애정이 없던 지우는

"그가 나에게 지급한 만큼 나는 창부 역할을 하며 육체로 갚았을 뿐입니다" 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재우의 숙부 민준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같이 자살을 시도한다.

(이 허무하고도 극단적인 선택은 어딘가 일본스러운 느낌이 든다...)

 

민준은 끝내 목숨을 잃었지만 지우는 살게 되고 

민준의 부인 안 여사의 저주 속에 지우는 창부가 된다. 

 

사실 처음에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갈팡질팡 하는 지우의 행동만큼이나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무 어릴 때 많은 일을 겪은 젊은 여주인공이 굳게, 아무 흔들림없이 산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지우는 좀 독특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창부가 된 지우가 한 가정집 밑에서 하는 생각이 있다. 

 

'... 나는 그 창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한 가정을 가진 주부가 되고 싶다고 얼마나 강렬하게 동경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단지 나의 운명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자신을 그렇게 망친 후에 절망하며 비틀거렸던 것이다.'  

 

끝끝내 서재우와의 삶을 택하지 않았던 지우는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면

나는 순간순간 무엇을 기준으로, 뭘 제일 중요시하며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내가 만든 나의 모습은 과연 훗날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모습은 글쎄...

 

아무튼 죽음으로 자꾸만 발길을 돌리는 지우의 모습을 난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여자의 대부분은 창녀의 기질이 있다. 그리고 남자들은 얼간이 바보 기질을 가졌다.' 

라는 주장 때문에 65년도에 출간 예정이었지만 부녀자들의 질타를 받고 연재도 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실상 이 소설은 그런 뜬금없는 주장을 담고 있진 않다. 

 

저 말은 안여사의 아들 윤호의 주장인데, 한 집안에 살면서 버젓이 정부를 두고 살아가는...

그렇지만 겉으론 태연한 그들의 부모들이 역겨워서 내뱉은 절규이다.

지우의 꿈이긴 했지만

거대한 저택을 활활 불태우고 수많은 남자들과 놀아난 엄마를 나무에 묶어놓고 동네사람들을 끌어모아 소리소리 지르는 윤호의 모습은 꽤 생생하게 상상이 됐던 것 같다.

 

사실은 소설속에서 더 뚜렷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알아먹기 쉬운? 것도 안여사와 윤호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외적으론 지우와 안여사의 모습이 딴판이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겹치는 것이 묘했던-

작가가 20대 때 집필했다고 하는데 꽤나 그려낸 모습이 암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분명 안 여사 같은 여자들의 모순을 작가는 아프게 꼬집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깊이 상처받은 세상의 많은 윤호들에게 대리만족 같은 복수극을 선사해주고...

 

문득,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빠와 결혼할 거라던 엄마의 모습이... 비록 무뚝뚝하지만 변함없이 우리 가족을 우직하게 지키는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의 모진 것들을 굳이 겪지 않아도 됐던 내 모습까지도...

지우라는 아이가 실제로 있었다면 날 부러워했을까.. 라는 생각...

 

그렇게 질타받을 만한 내용의 소설이 아니었는데 그 때 한 젊은 작가의 의욕을 너무 쉽게 꺾어버린 건 아닌지 좀 아쉬웠다. 만약 이 작가가 계속 활동했다면 우린 더 좋은 작품을 만났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작가가 용감하게, 당차게 내뱉었던 저 말에 찔리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저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욱하는 건 좀 수준낮은 반응 아닐까...

 

60년대 소설이라 약간 올드한 느낌은 있지만, 그 당시의 배경으로 20대 작가가 썼다는 걸 감안한다면 굉장히 파격적이고 앞선 느낌의 소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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