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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김동인 외 지음 / 책만드는집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한국 단편 소설들 모음집이다.
여타 다른 부과 설명 없이 깔끔하게 소설들을 모아놨는데
운수 좋은 날, 메밀꽃 필 무렵, 백치 아다다, 날개 등 유명한 작품들이 고루 실려있다.
다시 읽어보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고등학교 때 읽고 말았던 소설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b 사감과 러브레터
결혼 못한 노처녀 b 사감의 히스테리는 사뭇 코믹스럽다. 여학생들에게 오는 러브레터의 출처를 캐묻고, 모른다 하면 기도까지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굳이 야소꾼/기독교도라는 설정...)
어느 날 소근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여학생들은 b 사감이 가로챈 러브레터를 혼자 읽으며 생쇼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중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도 있었다는...
아주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 시절 b 사감은 그저 웃기고 무서운 노처녀일 뿐이었다면 실제 노처녀로 향하고 있는..ㅋ 지금 다시 b 사감을 만나니 애잔한 느낌이 든다...
특히 눈물 흘리던 여학생 때문에... 외로움에 몸부침치다가 b 사감처럼 되지는 말아야할텐데...
결혼을 일찍 하던 옛날에 비해 사십이 다된 노처녀와 여학생들의 등장으로 바뀐 시대상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옛 정서로선 b 사감이 얼마나 독특한 캐릭터였을까.
-백치 아다다 , 감자
돈과 얽힌 여자의 운명이 참 애처로웠다.
점점 물질만능주의로 바뀌어가는 이 세상의 각박함 속엔 역시 여자의 희생과 눈물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돈이고 뭐고 그저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던 아다다는 남편이 돈 벌면 또 다른 여자에게 가버릴까봐 모아놓은 돈을 몰래 바다에 뿌린다.
그 사정을 알리 없는 남편에 의해 결국 바닷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 아다다...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몸 팔아 돈 버는데 재미를 낸 감자의 복녀...
하필이면 또 중국인 왕서방에게..;
힘 없고 하찮은 한국의 가난한 여자는 그 죽음 마저도 몇 푼 돈으로 무마되고.. 그건 무슨 개값 물어주듯... 허망했던 것 같다.
돈 몇 푼이면 한 여자의 삶은 모조리 무시당해버리는 ,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는 게 서글펐다.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레디메이드 인생은, 고학력 청년실업자가 많은 지금 이 시대에 읽어도 잘 와닿는 소설인 것 같다.
20전도 괜찮다며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몸 파는 여자에게 가진 돈을 다 던지고 나오면서
'... 나무라기로 들면 차라리 정조를 빼앗긴 것으로 자살한 여자를 나무랄 것이지 이십 전에 팔겠소 하는 여자는 나무랄 수가 없다...'
이것도 일종의 노동으로 보며 차라리 자신의 신세를 더 불쌍히 여기는 주인공 P 의 입장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치숙은 일제시대 우리들의 불안정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화자는 멋도 모르는 친일이고 그가 비난하는 아저씨는 감옥만 들락날락하는 사회주의자다.
화자는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장담하는 듯하지만 우리가 읽기엔 비굴하고 줏대없는 친일파 나부랭이로 보일 뿐이다.
자기 개성 무시하고 아첨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거라 말하는 아저씨와 일제를 찬양하는 화자의 교묘한 대립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 시대 우리 삶의 모습과 생각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주옥같은 단편 모음집이었다.
소장가치 충분히 있는 책!!^^ 내 국어교과서 옆에 계속 꽂혀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