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놓아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서정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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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중간에 `내가 뭘 놓친거지?`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은건 저 뿐인가요? 작가가 독자들을 제대로 속였네요. 이런 반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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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문장강화 - 이 시대 대표 지성들의 글과 삶에 관한 성찰
한정원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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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講話
강의하듯이 쉽게 풀어서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

強化
수준이나 정도를 더 높임.

'문장강화' 하면 이태준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그 만큼 글쓰기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을 찾기 힘들지요. 이태준 선생님의 문장강화에는 글쓰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내용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태준 선생님이 '강의하듯이 쉽게 풀어서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문장강화라는 제목이 붙은 것 같습니다. 

이 책. 명사들의 문장강화는 이태준 선생님의 문장강화와는 다릅니다. 이 책은 문장에 대해 얘기하지 않습니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내용도 없습니다. 글쓰기를 즐기는 명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글에 대한 내용보다 더 많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 된 여덜명의 명사들은 책을 많이 내신 분들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만한 분들이고 이분들의 책 중 한권은 봤을테지요. 그래서 글쓰기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에 관심이 갑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문장력을 높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명사들이 앞에서 하는 강의를 듣는 기분입니다. 그들의 삶 이야기,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명사들을 통해 듣는 기분이 듭니다. 책은 보통 처음부터 끝까지 어조가 일관되기 마련인데 이 책은 명사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작가가 글을 쓴게 아니고 명사가 강의를 하는 기분이 드나봅니다. 

명사들의 인생 강의를 듣다 보면 그들이 왜 글을 쓰게 됐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글을 쓰는 방식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떤 노력을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만약 글을 쓰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었다면 이태준 선생님의 문장강화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태준 선생님의 문장강화는 나에게 부족한 글쓰기 기술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쓰는 기술이 아닌 글쓰는 이의 마음가짐, 글을 대하는 태도, 나만의 글을 완성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명사들간에 글 쓰기에 대해 서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일필휘지로 한번 써놓은 글은 뒤도 돌아 보지 않는다는 고은 선생님, 100번을 다시 봐야 하기에 미리 글을 쓴다는 최재천 선생님. 한 책에 이렇게 다른 얘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 보이는 말이 결국은 같은 얘기가 됩니다. 궁즉통이라고 하던가요.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같은 의미가 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글을 씁니다. 책을 써볼 생각같은건 없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는 트위터에, 누구는 페이스북에, 그리고 카톡으로 무수히 많은 글을 쓰는 현대인입니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날리는 문장하나, 단어 하나에도 의미가 담기고 생각이 담깁니다. 매일 매일 만드는 수백가지 문장이 의미 없는 데이터의 쓰레기가 될지,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이 될지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카톡 한줄 보내더라도 데이터의 쓰레기 보다는 '글'을 써서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을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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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삼경을 읽다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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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서문쯤 되는 '느긋한 글읽기'에 보면 [서경]을 박사학위 논논문으로 쓰려고 했는데 지도교수인 쉬탄훼이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만류했다고 한다

"김경일, 자넨 안돼. 이건 너무 어렵다고"
김경일 교수는 정말 제대로된 지도교수를 만난 듯 하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봤을 때 저자가 논어는 한번 읽어 봤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논어를 제대로 한번이라도 읽어 봤다면 절대로 그런 책은 쓰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나라를 살리기 위해 공자를 죽여야만 했는 지를 대충 알게 됐다.
김경일 교수는 그가 강조하듯 우리나라 최초의 갑골문 박사일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경일 교수는 배타적인 기독교신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김교수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배타적인 자기 아집만으로 똘똘 뭉친 기독교 신자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기독교신자 모두를 폄하하는 얘기는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린 배타적인 기독교신자들이 저지른 실수를 이 책에서는 그대로 범하고 있다.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린다고 얘기해 버렸으니 이 책에 비판을 가할 처지는 못된다. 우물에 독뿌리기식 오류를 범하게 되면 비판을 하고싶은 의욕까지 상실하게 된다. 내 맘대로 해석했으니 너희들은 상관 마라는 식의 발언을 책의 첫머리에 버젓이 해놓고 있으니 비판을 해 봐야 소용도 없다.

그래도 한가지만은 지적해 보겠다. 이 부분이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들 중에 비교적 제일 앞쪽에 나오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28페이지에 [主忠信]이란 말이 나온다.
앞뒤 얘기는 무수한 설들이 존재하니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를 한들 무슨 할말이 있겠냐만은 [忠]을 충성으로, [信]을 무슨 정치가 끼리의 절대 복종 계약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부부유별]을 남여차별적 언사로 이해하는 웃지 못할 오해보다 더욱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 참고로 김경일 교수의 전작에서 말하듯, 유교가 남녀차별을 부추겼다고 하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건 한참 뒤에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린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곡해일 뿐이다.

[충성]이란 말은 유교 사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유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곡해해서 근대에나 생겨난 말을 버젓이 [忠]을 해석하는데 써버리는 것을 보면 이건 가장 기본적인 이해도 갖고있지 않다고밖에 볼 수 없다.

[忠]은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마음(心)의 중심(中)을 하나로 하여 절대로 흔들림이 없음을 말한다. 절대로 임금에게 이 한몸 다바쳐가 아니다. 임금이 백성에게 못을 하면 자신의 념에 따라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게 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忠]이다. 이것은 서양의 사상에 기초를 둔 [충성]의 개념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동양에는 義는 있을 지언정 [충성]은 없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충성]을 찾을 수 있지만 근대 이전의 동양 역사에서는 충성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관우와 장비도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했는가? 유비에게 의를 지켰을 지언정 충성을 맹세하지는 않았다. [도원 결의]지 [도원 충성]은 결코 아니다.

공자 이후, 천년도 몇번씩이나 넘긴 시절에 나온 말을, 그것도 공자의 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을 공자의 생각인양 얘기하고 있으니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忠, 忠恕(충서),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學을 책펴놓고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읽은 사서삼경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 學은 책을 펴놓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논어 첫머리의 [학이시습지....]란 구절을 우리는 초등학교때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이라는 식으로 우리의 교육실정에 적합한 해석으로 배웠지만, 제대로 된 해석은 "배우고 그것을 때에 맞춰 몸소 실천하여 내것으로 만들면"이 된다. 공자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의미한 암기를 반복하는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한 일인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호흡법을 배워 뒀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하여 인공호흡으로 죽게된 사람을 살려 냈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실전에서 써먹어 봤으니 제대로 내것으로 익히게 돼 기쁘고, 사람을 살렸으니 좋은일을 해 기쁘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란 말인가. 공자가 즐겁다고 한 말은 후자의 의미이지 전자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김경일 교수는 오직 전자의 의미로만 學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공자 사후 수백년이 지난 후에, 정치적 목적으로 본질은 빼고 껍데기만 남겨둔 정치사상을 유학으로 착각하는 사람, 그것도 동양의 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 서양의 기독교적인 사관을 철저하게 세뇌된 사람이 읽은 사서삼경일 뿐이다.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렸다고 버젓이 얘기하고 있으니 토를 달기도 민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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