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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평점 :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던건 아마 중학교 시절이였나?
집에 세계문학전집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또렷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읽고 느꼈을법한 감동이나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감명 깊었던 구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생각나는 것은 정말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느낌만 남아있기에 지금에 와서는 정말 이 책을 읽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이유를 몰랐는데 카뮈로부터 온 편지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고전, 그중에서도 외국의 고전은 번역자의 재해석에 의해서 국내독자들의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물론 어떤 책(이방인처럼 번역된 고전)은 너무도 감동적이고 내 속에 잠든 문학적 소양을 불타오르게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은 게 내 경험상 그렇다.
이 책은 죽은 알베르토 카뮈에게서 한통의 편지가 배달되면서 시작한다.
그냥 누구의 장난이려니 했지만 중학생 딸의 이방인에 대해 재미없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에 다시 읽은 이방인은 지루하고 아무런 반전도 소설적 긴장도 느낄 수 없는데 전 세계인이 열광했다는 카피에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소설은 지루한 이방인을 재번역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지루하고 재미없어야 하는데 반대로 전혀 지루하지 않고 너무도 재미있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또 움베르또 에코의 “푸코의 추”나 “장미의 이름”같은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는 소설에서 단어하나, 쉼표하나 접속사 하나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원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까막눈으로 볼 때 그 말이 그 말이고 이렇게 번역하나 저렇게 번역하나 같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가지 예를 들고 마치고자 한다.
“나는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의 발가락들이 사이가 몹시 벌어져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김수영역)
“나는 피리를 불고 있는 자의 발가락이 바짝 긴장한 것을 알아보았다.”
처음의 번역을 보고 의문부호를 느꼈지만 작가의 해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같은 수없이 많은 나머지 예는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고전문학 읽기의 재미에 푹 빠져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더불어 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다는 욕구가 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