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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평점 :
◆ 살아남기 위한 이악스러움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고,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세계를 만들고 있다.
'북한'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부끄럽지만 나는 '미사일', '휴전' 등과 같은 군사·외교와 관련된 단어만 생각이 났다. 북한에 살고 있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역사를 공부할 때 미시사에도 관심을 가졌던 나인데 정작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 든 적이 없었다. 저자는 북조선(저자가 사용하는 단어를 쓰겠다.)에서 '선전'을 위해 매체에 소개된 여성들과 자신이 직접 만난 북조선·조선족·자이니찌 여성들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선전'을 위해 소개된 여성들을 다룬 1부는, 그들을 매체에 나온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서사적 서술 방식으로 풀어내어 독자가 이입할 수 있게 한다. 착실한 북조선 노동자로 매체에 소개된 건실, 공장 노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와 연애결혼 후 부업을 시작한 만자, 계산이 밝아 만자의 부업을 사업으로 확장시켰으나 화폐 개혁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잃고 다시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중국으로 떠난 혜원,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아 해외 파견 노동자로서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수련까지.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북조선이라는 국가에 규제를 받기도 하지만, 수완을 발휘해 유연하게 규제를 피하기도 하고, 가끔은 순응하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저자의 상상력을 가미한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북조선 여성 역시 우리와 같은 여성이며, 체제 내에서 나름대로 자아실현을 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2부는 저자가 조·중 접경 지역에서 만난 북조선 여성들과 조선족 여성들,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자이니찌 여성들의 이야기다. 냉전 시기 조·중 접경 지역은 조선족과 북조선 여성들의 교류의 장이었으나, 냉전 종식 이후 남한과의 교류가 늘어나자 조선족과 북조선 여성들 간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진 것은 분단국가라는 성질이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로 간의 교류가 줄어들었음에도 북조선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넘어와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하게 서로를 돕는다. 북조선 여성이 중국으로 넘어와 일을 하게 되는 경우, 남은 남편은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중국의 북조선 여성들은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낸다. "누군가에게는 '어머니'라는 것이 자신을 규정짓는 전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어머니이기에 강을 건넜고,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고, 무시당하면서도 버텼다. 그런 그녀가 가족들에게 거절당했을 때 그녀는 그만 텅 빈 존재가 되어버린다."(p.159)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지금 남한의 여성들 역시 가부장적 질서 아래 메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떠오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저자 자신이 아시아인 여성 사회학자로서, 그리고 남한 출신 북한학 연구자로서 복합적인 위치에서 연구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연구자로서의 길을 택하게 된 계기부터, 남한 출신 연구자로 북조선 여성들의 삶에 대해 연구하면서 체감한 자신의 한계에 대해 들을 수 있다. "나의 인식의 위치는 어디이며 그것의 구조적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가? 그로 인해 내가 감각하고 문제시할 숭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일까?(p.225)" 등, 저자는 '위치성'에 대해 고민하며 페미니스트 인식론을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의 복합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기 못했기 때문에 적절한 사회학적 질문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p.226) 그래서 저자는 분단 문제를 국가가 아닌 사람들의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을 선택했다(p.234)고 밝힌다.
자신이 어떤 입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구자가 들려주는 자신이 들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북조선·조선족·자이니찌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는가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을 갖추어야 하는지까지. 전쟁, 냉전, 분단, 그리고 여성이라는 복합적인 위치에서 이악스럽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남한 사회는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 서평단에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