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 SF 미스터리 나비클럽 소설선
천선란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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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을 받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의 질감이었다. 표지가 까슬한 재질이었는데, 보통 책들은 맨질맨질한 표지였던 것이 많은 것 같아 거칠거칠한 촉감이 굉장히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내지 안쪽이 그림자가 진 것처럼 어두워서 잘못봤나 싶었는데 내지 색을 일부러 그렇게 설정해두었던 거였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던 건, 안쪽 여백이 넉넉하지 않아 내지 안쪽 글을 읽으려면 책을 쫙 펼치고 얼굴을 들이밀어야 했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총 9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코로나 종식 이후인 2035년’이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GMO, AI, 복제인간과 같은 과학적 요소와 난민, 환경문제와 같은 사회적 요소가 섞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20세기 말에 태어나 2000년대를 살아온 나도 체감할 수 있을만큼 세상은 약 20년동안 정말 빠르게 발전했다. 그렇기에 2035년이라는 연도는 생각보다 먼 미래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와 비슷할 것 같지만,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에서 나오는 ‘제네시스 돔’같은 것이 들어서는 것이 전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고양이의 마음>에서 내전을 겪고 있는 우후루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은 수록작은 천선란 작가의 <옥수수 밭과 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GMO 농작물로 가장 대표적인 옥수수 밭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라니. 잔잔하고 따뜻한 것 같으면서도 후반부에 지속되는 긴장감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다 읽은 뒤에도 계속 여운이 남아 다시 한 번 빠르게 훑어 보았는데, 다시 읽으니 눈에 들어오는 장치들을 발견하고는 더욱 감탄했다. 또한 이후 이야기가 가장 궁금한 수록작이기도 했다.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후 나올 드라마 역시 어떻게 이 작품의 분위기를 표현할지 기대되는 바이다.

자폐아 푸코와 백혈병에 걸린 형. 형은 결국 투병 생활 끝에 생을 마감한다. 슬픔에 빠져있던 푸코는 어느 날, 형과 함께 자주 시간을 보내던 옥수수 밭에서 형을 만난다. 발목에 숫자가 새겨져 있는 형이었다. ‘새로운 형’과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집에 들어온 푸코는 또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또다른 형’이 집에 와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형 역시 발목에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작가는 푸코가 수업시간에 ‘식량난’과 ‘개량된 품종’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만을 흘리며 직접적으로 형의 정체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독자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며 추리해 볼 따름이다. 이 단편집의 제목처럼 SF와 미스터리가 정말 적절하게 섞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혜진 작가의 <억울할 게 없는 죽음>도 기억에 남는다. 전혜진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감겨진 눈 아래에>를 읽었었는데, 읽은 직후 한동안 답답함과 참담함, 그리고 공포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억울할 게 없는 죽음> 역시 지금보다 앞선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여성 혐오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규나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동생 규진의 죽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난민캠프에 방문한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규나와 규진이 각기 어떤 대우를 받고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 규나는 20대에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 과장에 의해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잃는다. 규진은 코피노와 그 엄마를 두고 한국에 돌아오고, 그들이 양육비를 요구하자 죽여버리겠다며 청부살인을 맡기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을 알게된 독자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규나가 ‘혹시,’하고 떠올는 단상이 설사 진실이더라도 ‘억울할 게 없는 죽음’이라는 규나의 서술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SF적인 요소는 조금 부족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20대 여성으로서는 공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 역시 SF와 미스터리를 적절하게 섞은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발생할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읽고 나서 깊이 생각할 거리들을 얻을 수 있다. 각각 분량이 길지 않은 단편소설들이고 몰입도가 좋은 작품들이니 틈을 내어 읽기도 좋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런데 다 같지는 않을 거야. 기억이 다르니까. 저 끝에 있는 옥수수와 반대편 끝에 있는 옥수수의 기억은 다르잖아. 그러니 같은 옥수수라고 할 수 없어. 정말 중요한 건 기억이야. 푸코와 아무리 똑같아도 푸코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건 푸코라고 할 수 없어."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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