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선란 작가님의 <천 개의 파랑>과 <어떤 물질의 사랑>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에 <나인>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소설Y클럽을 신청했다. 대본집 형식으로 제본된 형태는 대중교통에서 읽기에는 살짝 불편했으나, 평소에 책에 줄을 긋는 것을 꺼려하는 나에게는 망설임 없이 줄을 긋고, 메모하며 읽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색다르게 다가왔다.


<나인>을 읽으면서 <어떤 물질의 사랑>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떤 물질의 사랑>은 '모두가 서로에게는 외계인이나 다름없다.'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았는데, <나인>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각자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마지막에 깜짝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정말 반가웠다. 아마 <어떤 물질의 사랑>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나인>은 말 그대로 '나인'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나인은 인간이 아니라, 땅 속에서 태어난 '누브족'이다. 소설 속에서 나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섬세하게 나타난다. 누구나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신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나인 역시도 자신이 '외계인'이란 사실에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에 잠식되지 않고 점차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하게 된다. 나인이 이런 인물이라 정말 좋았다. 나인뿐만 아니라 나인의 주변인물들 역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그로인해 고뇌하지만 결국은 나름의 해법을 찾아나간다. 이런 모습들은 나 역시도 지금의 힘든 감정을 무조건 부정하려 들지 않으며, 그 감정에 짓눌리지도 않고 그것을 느끼는 스스로를 긍정하며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나인>은 또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스릴러'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모두에게 잊혀져 가는 실종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기에 더 어려운 사건이기도 했다. "물에 젖은 건 더 무겁잖아. 혼자서는 절대 못 꺼내."(p.358) 미래의 말처럼, 나인과 친구들은 함께 이 사건을 물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사건의 범인의 심리 역시 자세하게 묘사하며 그가 느끼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체념의 과정 역시 놓치지 않는다. '점이 지대'에 서있는 그의 속을 들여다보며, 함께 고통에 빠지기도 한다.


나인과 미래, 현재, 승택이 함께 머리를 맞대 결국은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박원우를 아버지의 품에 안겨준 것처럼,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부딪힌다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믿고 싶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알게 됐으면 한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건 온몸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명이 막는 것보단 여러 명이 막는 게 더 좋다는 것, 무른 흙도 밀리고 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단단해진다는 것."(p.431) '연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보면 '너무 낙관적'이라며 우습게 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여전히 '연대'의 힘을 믿고 싶다.

"물에 젖은 건 더 무겁잖아. 혼자서는 절대 못 꺼내." - P358

그렇다면 이것도 알게 됐으면 한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건 온몸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명이 막는 것보단 여러 명이 막는 게 더 좋다는 것, 무른 흙도 밀리고 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단단해진다는 것. - P431

그러니까 나인은, 기적이라는 뜻이야. - P477

우리는 그냥 딱 보면 알아. 아, 쟤도 바깥에서 왔구나. 신호등이 깜빡일 때 걷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 버스를 탈 때 노인이나 아이를 위해 한발 양보하거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다 내려야만 타는 사람.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야. - P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