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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흑역사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9세기 북유럽의 장수였던 ‘천하장사 시구르드’는 적장 ‘뻐드렁니 마엘 브릭테’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귀환했다. / 그러나 마엘 브릭테의 뻐드렁니가 말 타고 달리던 시구르드의 다리를 계속 긁었고, 그 상처의 감염으로 시구르드는 며칠 만에 죽고 만다. 12쪽,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2019)
어처구니가 없다. 시쳇말로 '뻘짓'이 아닐 수 없다. 북유럽 영웅담에 나오는 이야기니 실화일 가능성이 높다. 뭐 9세기 먼 옛날이니까 그럴수 있다고?
- 스웨덴의 천재 화학자 '칼 빌헬름 셀레'는 산소, 바륨, 염소 등 많은 원소를 발견했는데, 새로 발견한 원소마다 맛을 보았다. 결국, 납, 불산, 비소 중독으로 1786년 죽었다. (247쪽 참조)
- 19세기 영국 정부는 인도 델리에서 유해 동물 방제 운동의 일환으로 죽은 코브라를 가져오면 포상금을 주었다. 결론은? 코브라를 직접 길러 포상금을 타가는 작자가 생겼고, 정부가 알아체자 그냥 방생하여 델리는 살아있는 코브라 천국이 되었다. (127쪽 참조)
- 1938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와 협정을 맺고 이렇게 말했다. '평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집에 가서 발 뻗고 주무십시요.' 1939년, 세계는 전쟁에 돌입했다. (258쪽 참조)
최근까지도 인류의 '헛짓' 파노라마는 끝없이 이어진다. 인간 역사 한복판이 '뻘짓' 퍼레이드로 채워진다. 유머러스한 필치의 책, <인간의 흑역사>가 '유머러스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한숨과 안타까움이 겹친다. 단순한 생각과 무모한 의지로, 인간은 환경과 자연을 망쳐놓고, 그릇된 지도자를 따르고, 전쟁을 저지르며, 약탈을 일삼고, 그릇된 사상과 엄한 기술을 맹신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럴까?
우리 머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내지만, 가게에서 포테이토칩 하나를 살 때도 무슨 종류를 살지 족히 5분은 고민해야 겨우 결정할 수 있다. (중략) 진화라는 과정은 영리함과 거리가 멀다.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고집스럽게 멍청하다. 진화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래저래 죽을 수 있는 수천 가지 시나리오를 피하고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잘 넘어갈 때까지만 죽지 않고 사는 것, 그것뿐이다. 그렇게만 되면 성공이다. 25쪽
멍청한 짓을 반복하는 것은 별 생각 없이 손쉽게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 편법을 전문용어로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한다. 사전정보가 부족할 때 제일 처음 얻은 정보를 따르는 '기준점 휴리스틱'과 모든 정보를 고루 분석하지 않고, 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사실을 '편애'하는 '가용성 휴리스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사안을 '케바케'로 신중히 따지지 않고, 관성과 본능에 따라 해결하려 드니 바보짓은 반복된다.
우선 패턴 찾기 능력의 문제를 알아보자. 문제는 우리 뇌가 패턴 찾기를 워낙 좋아해 여기저기 모든 곳에서, 패턴이 실제로 있든 없든 패턴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가령 밤하늘의 별을 보며 “와, 저기 여우가 낙타를 쫓아간다” 하는 정도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범죄는 대부분 특정 인종이 저지른다’고 인식해버린다면…. 그렇다, 심각한 문제다. 27쪽
'게으르게 낙관하고, 내로남불을 합리로 삼을 때, '확증편향'과 '공유지의 비극'은 이어졌고, 지울 수 없는 인간의 흑역사가 남겨졌다. 자신의 몰락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국 사냥터를 재현하고자 영국산 토끼 24마리를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온 토머스 오스틴은 1920년대 온 나라의 초목을 싹쓸이한 100억 마리의 토끼 군단을 이끌어냈다.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게 참여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문명화'라는 자선 명목으로 콩고 원주민 1,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류에 대한 희망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흑역사를 통해 지혜와 분별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흑역사를 흑역사로' 남기는 것이, 그것의 재현을 막는 것이 현재 우리 인류의 소임이다. 재밌고 신선한 책이 분명하지만 2020년 이후의 흑역사 시즌 2를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보다 이걸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호구가 금방 나타날 거라고 믿고(263쪽)' 암호화폐가 뭔지도 모른채, 비트코인 광풍에 참여했던 '호구들'의 바보짓이 가장 마지막 인간의 흑역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타 발췌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손쉽게 판단을 내리기 위한 요령 내지 편법을 조금 어려운 말로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한다. 이 휴리스틱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다. 남들과 소통할 수도, 경험을 통해 배울 수도 없다. 알고 있는 원리 몇 개를 놓고 어떤 행동을 할지 일일이 추론해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침이면 해가 뜬다’는 상식을 깨닫기 위해 머릿속으로 대규모 무작위 대조 실험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머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면 인간은 도저히 발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해가 몇 번 뜨는 걸 보고 나면 그냥 “아, 아침엔 해가 뜨는 구나”하고 깨다는 편이 훨씬 실익이 크다. 26쪽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하는 유명한 인지 편향 현상이 있는데, 이 책을 대표하는 이론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이는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무능에 대한 무지 Unskilled and Unware of it’라는 논문에서 제안한 효과로, 우리가 살면서 익히 알던 현상을 입증한 것이다. 즉,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엄청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잘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34쪽
식민주의는 나빴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 얼마나 나빴길래 그러느냐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20세기에 유럽 식민주의에 희생된 사망자 수만 대략 5,000만 명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이 죽인 사람 수의 합과 비슷한 수준이다. 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