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올든 위커 지음, 김은령 옮김 / 부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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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입는 옷이 얼마나 많이 유해 화학 물질로 뒤덮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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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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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모집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멤버로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경찰은 직업이 아니지요. 사명도 절대로 아닙니다. 저주입니다.˝
슬루커는 잠시 후 몸을 돌려 계속 말했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결혼하셨습니까?˝
˝네.˝
˝그러면 잘 알겠군요.˝ - p.195 ]



  한 달이나 되는 휴가를 떠나려면 언제부터 준비를 해야할까. 휴가 중 편안히 쉬는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운 기분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어찌 되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전작과는 달리 이번 무대는 스웨덴이 아니라 헝가리다.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던 냉전 시기, 헝가리는 소련의 위성국이었다. 나토도, 바르샤바조약기구와도 거리를 두었던 중립국인 스웨덴 기자가 어느 날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휴가 중이었던 마르틴 베크는 외무부 지령을 받아 비밀스럽게 타국에서 수사를 진행한다.  



[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는 아파트로 들어서자마자 사람이 변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랬는데,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팽팽하게 긴장하고 초조하게 경계하던 태도가 사라졌고, 대신 몸에 익은 듯 차분하고 기계적이며 단호한 태도가 떠올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의 태도, 그리고 같은 일을 과거에도 겪어본 사람의 태도였다. - p.324 ]



  휴가 중임에도 사건과 엮이는 마르틴 베크를 보고 코난과 김전일이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이게 단순히 실종인지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마르틴 베크가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일은 전작처럼 주변을 탐문하고 끊임없이 생각하여 진실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지는 일이다. 냉전을 배경으로 하기에 음모론스러운 내용으로 전개되기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사실을 넘어 진실을 탐구하려는 기자가 실종된 사건이 이념을 두고 갈라진 타국에서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직업 목적은 다르더라도 꽤나 비슷한 과정을 공유하는 탐정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을 곱씹어보면, 체제 유지, 강화라는 흐름 속에서 개인의 존재감과 정체성은 얼마나 연기처럼 덧없어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이를 그저 흘려보내면 안된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나 그런 법이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 p.122]



[마르틴 베크는 계속 궁리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경찰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시민이 경찰에게 진 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안타깝게도. - p.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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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의 밤 -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을 암살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극비 작전
하워드 블룸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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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의 밤 -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을 암살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극비 작전 (Night of the Assassins: the Untold Story of Hitler's Plot to Kill FDR, Churchill and Stalin, 2020)』 하워드 블룸 Howard Blum 지음, 정지현 옮김, 타인의사유, 2024   



*. 타인의사유 출판사가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은 거의 유럽 전역을 지배했다. 한때였다. 여전히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종전 2년 전인 1943년쯤이 되자 나치 독일이 결국 연합국에게 패할 것이란 게 사실상 확실해졌다. 1943년 1월 카사블랑카에서 모였던 미국, 영국, 프랑스의 수뇌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추축국은 무조건 항복 unconditional surrender 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한 달 후 소련은 독·소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후 7월 연합국은 시칠리아를 침공했고, 9월에 이탈리아 왕국은 독일과 일본보다 먼저 항복했다.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문에 참석할 수 없었던 소련의 스탈린까지 모여 11월에 또다른 회담이 열렸다. 이란 테헤란에서였다.


  테헤란 회담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듯하다. 직전에 있었던 카이로 회담 때문일텐데, "한국을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키기로 결정"한 카이로 선언이 우리 역사에 미친 파급력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영국, 중화민국 3개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결의가 카이로에 모인 목적이었다면, 미국과 영국은 뒤이어 유럽에서 독일을 굴복시키기 위해 테헤란에서 소련과 힘을 모았다. 이미 소련과 육상전에서 밀리고 있던 독일 입장에서 미국과 영국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다. 독일은 사실상 사형 선고가 될 테헤란 회담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다만 이미 불리해진 전세를 군사 작전으로 뒤집을 순 없었기에 독일은 패전하더라도 합리적으로 평화 협상을 이끌어낼 수단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와중에 독일이 접한 소식이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에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장소였다. 세 사람이 어디에서 회의를 하는지 독일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담은 절대 열려선 안됐다. 세 사람을 한 번에 죽이는 게 확실했다. 적국 최고 지도자를, 한꺼번에 모조리 암살하겠다는 기상천외한 작전이었다. 이른바 '롱 점프 Long Jump' 작전이었다. 연합국도 눈 뜨고 당할 수는 없었다. 테헤란 회담을 두고 죽이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 치열한 물밑 작업, 암살 작전은 이렇게 전개됐다. 


  때론 실화가 영화보다 더 극적인 것처럼, 이 이야기는 실화다.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 소련 기밀 문서가 해제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암살 작전을 실행하려는 이와 막으려는 이들 외에도 같은 국가 안에서 서로 다른 셈범에 따라 움직이던 여러 정보 기관 때문에 상황은 몹시 어지럽다. 그럼에도 이 복잡한 사안들이 결국 테헤란이라는 한 지점에서 수렴하는 걸 보면 작가가 선후 관계 정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기밀 ㅁㄴ서를 읽고 또 읽으며 재구성했을지 감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어찌됐든 여기에는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한 지점이 정말 많을 것이다. 아무리 예전 일이라도 정보 기관이 모든 정보를 공개하리라곤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건이 충분히 개연성을 띤 채 전개되는 건 작가 하워드 블룸의 역량이 충분해서 일 거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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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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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Roseanna, 1965)』, 마이 셰발 Maj Sjowall, 페르 발뢰 Per Wahloo 지음, 김명남 옮김, 엘릭시르, 2024



*.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모집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멤버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 p. 80 ]


  요 네스뵈 같은 북유럽 추리소설 작가가 국내에서도 유명해진지 꽤나 오래 지났지만, 북유럽 문학은 여전히 내게 낯선 영역이다. 네스뵈는 물론 그 전부터 탄탄하게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던 일본 추리소설도 내게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장르를 넘어 추리물로 영역을 넓혀보자면,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시리즈, 내 고등학교 야자 시간을 책임져주었던 셜록 홈즈 전집과 이를 영상화한 BBC 드라마 시리즈,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빙과〉와 그 원작인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정도다. 간간이 「미스테리아」 같은 미스터리 전문 잡지를 접했을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독자들이 생각,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담백하고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예타운하라는 관광 명소에서 갑작스레 발견된 어느 여성의 시신. 확인할 수 있는 건 성폭행과 교살의 흔적이 전부다. 추리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는 어떤 상황이나 특별한 계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마르틴 베크 형사가 그저 사건 현장을 계속 뒤져보고, 주변 인물을 탐문하고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실마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소설이 출간된 게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니 요즘과 같은 최신 과학 기술이 수사에 도입되기 한참 전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무미건조한 전개 방식을 차용한 것은 사건 수사는 그만큼 지난한 과정임을,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노력함을, 그리고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특정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 속 문제가 층층이 쌓여서 발생함을 담백하게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극적인 번뜩임과 카타르시스 같은 요소와는 거리가 한참 멀기에 다른 독자분들은 이에 유념하시길.



덧1) 부부가 쓴 소설이라니 그 자체로 흥미롭다.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의견 교환이 오갔을지...


덧2) 처음에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수많은 과학 서적을 번역하신 그 김명남 번역가가 맞다. 


덧3) 박찬욱 감독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헤어질 결심〉에도 여러 요소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나는 영화를 처음 볼 때 해준이 마시던 카발란 위스키를 바로 알아봤는데, 재관람할 때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영화 어느 컷에 등장하는지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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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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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비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선이 세 개 있다. 이 선은 각자의 시간대 속에서 똑바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교차되어 있다. 서로 만날 일 없고 단절되어 있는 것 같은 평행한 시간대는 이따금 한 지점에서 수렴한다. 지난 해 12월 부고하신 古 서경식 선생의 유작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는 세 가지 시간축이 중심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두 친형의 구명 활동을 호소하고자 처음 미국에 갔던 1980년대, 도널드 트럼프가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기 직전이었던 2016년, 그리고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원고를 집필한 2020년대 코로나 팬데믹 시기다. 


  1980년대에 아직 20대였던 선생은 어릴 적부터 반동 기질이 강했다고 고백한다. 군부 독재는 이미 '박종철'이라는 희생자를 만들었고, 얼마든지 또다른 '박종철'들이 생길 수도 있었다. 저자의 두 형 역시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가 감옥에 갇혀 기약 없는 출소를 바라봐야 했다. 차디찬 감옥에 있는 두 형, 그리고 홀로 일본에 남겨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선생은 여러 인권 단체를 전전하며 이 부당한 일을 바로 잡아야 했다. 그런 사명감과 동시에 선생의 마음에는 뭔지 모를 갑갑함이 있었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디아스포라가 머나먼 미국에서도 쉬이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정체 모를 억눌림을 풀어준 것은 예술이었다. 틈이 나는 대로 미국에 있는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공연장에서 문화 예술을 향유하던 그는 언제나처럼 감상과 깊은 사색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두 번째 시간축인 2016년쯤 미국을 다시 찾은 선생의 감정은 사뭇 다르다. 나이를 생각하면 언제 또 다시 미국을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를, 아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정세가 이맘때쯤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브렉시트, 트럼프, 홍콩, 미얀마, 우크라이나, 그리고 팔레스타인. 각자도생이란 혼란 속에 빠진 세계는 선생을 더욱 옥죄는 듯했다. 그리고 코로나. '연대'라는 인간 사회의 기능을 크게 단절하던 이 무서운 질병은 그를 더 깊은 사색으로 밀어넣었다. 다만 이렇게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디에고 리베라, 벤 샨, 파블로 피카소, 로라 포이트러스 같은 예술가들에게 받은 영감으로 아직 희망을 놓칠 순 없다고, 놓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온갖 부정과 악덕이 세상을 떠돌게 되었지만, 그래도 상자 맨 안 쪽에는 희망이 남았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 선생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고인이 된 그를, 고인이 남긴 글을 반추해본다. 얼핏 파편 같은 기억memory로 남을 단상은 사유라는 실을 타고 한 줄로 엮이면서 회고recollection이 되었다. 그가 남긴 글을,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다 보면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고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본다.

 


덧1) 서로 다른 세 시간대가 교차한 서술 덕분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가 생각났다.


덧2) 이번 미국편 외에도 저자의 또다른 인문 기행인 영국과 이탈리아를 읽어봐야겠다. 공교롭게 둘 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다. 그리고 책에서 중심이 된 세 가지 시간대처럼, 책도 3권이 되어버렸다. 더 많은 인문 기행을 더이상 만날 수 없어서 안타깝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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