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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시집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 을유문화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자신을 알고 타인을 아는 사람은
여기서도 알게 되리라.
동방과 서방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두 세계 사이에서 곰곰이
생각하고 재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동방과 서방 사이를
오가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 괴테, 『서동시집』 '유고 중에서'.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배타적인 동물인가 보다. 우리 양심은, 우리가 배운 가르침은, 언제나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사르트르에 따르면 "타인은 지옥이다". 2024년 3월 10일에 있었던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가여운 것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 스톤〈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시상식 직후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 전년도 수상자가 시상자가 되어 올해 수상자를 발표하고 트로피를 전달하는 게 아카데미 시상식 관례다. 지난 해 오스카를 석권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과 키호이콴이 나왔다. 두 배우는 아시아계다. 그리고 전세계 이목이 집중된 자리에서, 올해 수상자인 두 백인 배우에게 무시당했다. 누리꾼들은 시상식 직후 갑론을박을 벌였다. 두 백인 배우가 아시아계 배우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는지에 대해서. 이민자들로 이뤄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노예가 해방되고 민권법이 제정된지 오래지만 여전히 백인이 미국 사회에서 중심이다. 흑인과 아시아계를 비롯한 기타 인종은 소수자minorities로 전락하여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이처럼 은밀하게 차별 당했고, 당하고, 당할 것이다.
인권과 세계 시민 의식이 보편화된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부지기수인데, 괴테는 18-19세기에 걸쳐 일생을 보냈다. 특히 19세기 들어서는 유럽이 노골적으로 제국주의를 앞세워 세계 각지를 점령했다.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백인은 이른바 인종 카스트 최상층에 위치한 '신에게 선택받고, 유전적으로 우월하며, 문명도 진보한' 존재다. 따라서 그 아래 자리 잡은 기타 인종을 지배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계몽'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겨진 시기였다.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일갈한 마르크스는 동양을 미개하게 여겼다. "그들은 스스로를 잘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또한 대영 제국 시기 동양을 본격적으로 식민지로 삼았던 디즈레일리 총리 역시 "동양이라고 하는 것은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이다."로 폄하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20세기에 제시했던 『오리엔탈리즘』속 문제 의식은 유럽에서 유구한 전통이었고,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불편한 진실이다. 동양은 여전히 서구인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구획되고 굴절되어 있다.
이처럼 서구에서 비롯하여 동양을 대하는 시각은 편서풍처럼 늘 일방적이다. 괴테는 오늘날 유럽 문명의 근간이 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불멸의 기행문을 남겼다. 유구한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그보다 앞서 번영했던 이집트와 페르시아 같은 동방 문명보다 더 '우월해야 했다'. 그래야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는 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흐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기행』은 물론 괴테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 받아 「이피게니에」, 「스텔라」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런 그가 머나먼 동방 문명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원숙한 인생 말년에『서동시집』을 남긴 건 무척 인상적이다. 찬란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단절되었던 중세 시기는 명백히 서양이 동양에 뒤쳐졌다.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빛나는 전통을 복원한 근대 르네상스 시기를 한없이 드높였다. 오스만 투르크가 너무나 강성해 육상 실크로드 통행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유럽인들은 불가피했던 우회책인 신항로 개척을 진취적이고 모험적으로 포장했다.
이런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 종래 지적 전통을 거부하고, 칸트 뒤를 이어 세계 시민주의를 역설한 괴테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독문학의 거인이었다. 하이네, 만, 브레히트 같은 기라성 같은 후대 독일 문인들이 괴테를 찬미했던 것도, 헤겔과 니체 같은 철학자도 괴테를 향한 헌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간다. 책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괴테가 가졌던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이 유익했다. 나폴레옹과 대비시키고자 했던 티무르 시편을 끝내 미완성으로 남긴 이유, 그리고 동시대 이슬람 문명이 아니라 중세 페르시아와 당시 성행했던 조로아스터교를 중심에 내세웠던 이유는 결국 이미 지나가버린 것에서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표상과 같다는 지적이다. 〈청산별곡〉 속 '청산'이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이듯이, 『유토피아』는 역설적이게도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듯이, 괴테가 진정 바랐던 대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화합하는 시기는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괴테가 대표작 『파우스트』에서 말했던 대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라는 말을 끝내 져버릴 수는 없다. 노력은 결국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