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 - 세상을 경악시킨 집단 광기의 역사
맥스 커틀러.케빈 콘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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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유문화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들이 어떤 종류의 정치, 종교, 윤리를 설교하든지 간에, 이들의 말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들리건 간에, 그 모두는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카리스마적 컬트 지도자는 자기한테 유리하다 싶으면 핵심 원칙조차도 저버린다. 내심 이들이 따르는 규칙은 단 하나뿐이다. ‘뭐든지 간에 내가 원하는 것은 가지며, 그걸 얻기 위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이 없다.’” - p.173-174]



  컬트cult란 젊은이들에게 종교적인 숭배에 가까운 열광적인 지배를 받는 현상을 일컫는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참조). 이 현상이 문화로 확대되면 컬트 현상, 즉 일반적인 경향과 다른 다소 낯설고 동떨어진 가치를 배타적으로 추구하고 향유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가치에 동조하는 소수 집단이 열광한다. 태생부터 주류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멀리함에도 일부 극소수 사람들은 무언가를 강력히 믿으며, 거기에 의존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줄 사람이 등장하여 맹목적인 신앙을 바칠 사람과 결합할 때 컬트가 탄생한다. 


  누구에게나 어딘가 소속되려는, 삶에서 더 깊은 의미를 끌어내려는, 권태롭지 않고 신성한 목적을 지닌 채 일상을 살고 싶은 열망이 존재하지 않은가? 책에 소개된 컬트 지도자 9명과 6개 유형은 그렇기에 단순 사례 모음집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은 아주 지독하고, 잔인하고, 뻔번하고, 교활하게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이용했다. 하지만 박수를 치려면 양손이 있어야 하듯이 단순히 돌연변이 같은 컬트 지도자만이 아니라 어떤 경우든 간에 무조건적인 헌신을 해줄 지지자들이 함께 필요하다. 때문에 우리 역시 컬트를 그저 사회에서, 규격에서 벗어난 이들로 마냥 치부할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언제 그런 광신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 빠질지, 그리고 이를 이용해 먹으려는 인물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수치, 착취, 가학성, 과대 망상, 탈주, 현실 부정 같은 6개 키워드는 듣기만 해도 부정적이다. 사실 이런 소재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단골 소재이며, 〈놀라운 TV 서프라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 아주 오랫동안 다룬 바있다. 하지만 이 책이 여느 프로그램과 다른 것은 단순한 현상 나열을 넘어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시행 착오를 겪었는지, 추종자들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이 흐름이 어떻게 광기로 이어졌는지 같은 흐름을 쭉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저 일부 엽기적이고, 불편하고, 악명 높은 사례로 치부하기엔 찜찜함이 많이 남는다. 언제 이런 일이 또 생길지 모르기에 그렇다. 넷플릭스에서 한때 큰 화제를 모았던 〈나는 신이다〉를 흥미있게 본 분들이라면 이 책 역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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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물이 위험하다 - 과불화화합물을 쫓는 집념의 르포
모로나가 유지 지음, 정나래 옮김 / 산지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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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니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과불화화합물은 화학 전공자나 관련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면 꽤나 생소한 용어다. 책은 비교적 익숙한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 2019)〉이야기로 출발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에다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제작진이 참여했단 소식을 듣고 개봉하자마자 바로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화학 기업 듀폰Dupont은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을 그대로 방류했다. 이 오염물질은 과불화옥탄산(Perfluorooctanoic Acid, 이하 PFOA)란 물질인데 프라이팬,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 같은 일상 용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이 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자 가축들은 폐사하고, 사람들은 온갖 중증 질병에 시달리고, 기형아도 태어난다. 20년이나 이어진 지난한 소송 끝에 듀퐁은 패소하고 피해자들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을 보상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영화 제목 끝에 붙은 복수형 접미사 -s처럼, 이는 비단 미국에서만, 한 회사가 벌인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PFOA 외에도 과불화옥술폰산(Perfluorooctane Sulfonate, 이하 PFOS)란 물질도 있다. 이 둘은 대표적일 뿐이고 과불화화합물은 수천 종이 넘는다. 따라서 '어디에나 있는 화학물질(Everywhere Chemical)'이자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 있을 뿐더러 쉽게 분해되지 않고 잘 축적되는 특성 탓이다. 이 물질에 자연에 방류되면 토양에 잔류해 지하수까지 오염시킨다. 우리 생활을 아주 윤택하게 해주는 탄소(Carbon) 결합물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되어 돌아오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이 책은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사히신문》 기자 모로나가 유지가 2018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끈질기게 취재한 기록을 담았다.


  상하수도 설비가 본격적으로 갖춰진 근대 이후 인류는 마침내 수인성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엔 수돗물은 몇 세기 전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깨끗하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부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거나, 조사를 해놓고도 기록을 은폐하거나, 관련 법규를 충분히 보완하지 않은 것도 모두 문제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오염원이 결국 미군 기지였다는 점이다. 미군은 포소화약제 사용을 인정했으나 조사에 제대로 협력하지 않았다. 가데나 기지 인근을 비롯해 미군 기지가 곳곳에 자리 잡은 오키나와 현에서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일미군지위협정도, 미일합동위원회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미군 기지는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많이 있다.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로 기지가 일원화되면서 부지 반환이 잇따르는 추세다. 필자 역시 『냉전의 벽』이란 책 저자로 참여해 서울 용산과 부산 서면에 위치했던 구 미군 기지 내 심각한 토지 오염을 지적한 졸고를 쓴 바 있다. 캠프 히야리아가 오래 전에 반환되었음에도 부산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토지 정화 작업이 그만큼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면적도, 주둔 병력도 훨씬 컸던 용산 기지는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책임 주체인 미군과 정부, 그리고 일부 기업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그나마 희망을 찾자면 최근 이상 기후 등으로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이 가파르게 늘면서, 세계 각국에서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규제하려는 점이다. 물 한 모금 마음 편히 마실 깨끗할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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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도박 페이지터너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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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소굴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이문열의 소설 제목, 혹은 이에 영감을 주었다던 바흐만의 시 〈유희는 끝났다 Das Spiel ist aus〉한 구절이다. 처음부터 바닥에 있는 이가 추락하진 않는다. 주인공인 빌헬름 카스다 소위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다. 할아버지는 중장, 아버지는 중령 출신이다. 집안 대대로 군에 복무했으며 빌리(빌헬름의 애칭) 역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를 나락에 빠트린 사건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한다. 옛 전우 오토가 빌리에게 돈을 빌리러 오면서다. 오토는 도박에 빠져 군에서도 쫓겨나고 근무 중인 회사 돈에도 손을 댔다가 들킬 위기에 처한다. 오토는 같은 회사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슬쩍했던 1천 굴덴을 돌려놔야 하지만 노름에 빠진 이에게 그런 큰 돈이 있을 리가. 누구보다 착실한 빌리에게 옛 정을 호소하는 수밖에.



[“죄송합니다. 외숙모님. 사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대단히 절망적인 처지에 놓였습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반드시 갚아야 하는 노름빚입니다. 노름빚을 갚지 못하면 저는 군인의 명예를 잃게 됩니다. 저 같은 군 장교로서는 모든 걸 다 잃는 겁니다.” - p.113]



  당장 내일 아침까지 돈을 빌려달라는 급한 부탁을 빌리 역시 거절한다. 처음에는. 하지만 빌리가 재미 삼아 해본 도박으로 꽤 큰 돈을 번다. 그러자 빌리에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그까짓 돈 도박으로 좀 벌어주면 될 게 아닌가! 하지만 인생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특히나 도박판에서는 더 그렇다. 거듭된 승리에 도취해버린 빌리는 그만 독립시행의 확률도 망각해버린 듯하다. 빌리가 도박에서 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의지할 사람은 자신을 전부터 돌봐줬던 부유한 외삼촌뿐이다. 하지만 외삼촌은 어찌 된 일인지 그 많은 재산을 잃은 상태다. 마치 새장 속에 갇혀 정해진 만큼만 모이를 먹을 수 있는 새처럼, 외삼촌은 모든 생활을 외숙모에게 의지한 상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희망은 외숙모다. 비장하게, 그리고 비굴하게 부탁드릴 생각으로 외숙모를 찾아가지만 빌리와 외숙모는 사실 이전에 엮인 적이 있는 사이다. 



[빌어먹을 스페이드! 스페이드는 늘 그에게 불행을 가져왔다. 1천 굴덴이 다시 영사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게 무슨 문제가 되나? 아직 수중에 돈이 남았는데. 게다가 이미 망한 신세 아니었나? 남은 돈이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수천 굴덴이 눈앞에 나타났다. 영사는 정말 훌륭한 분이야. 빌리는 잃은 돈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장교답게 영사에게 빌린 노름 빚은 반드시 갚아야지. 엘리프 녀석 따위는 늘 저 모양으로 살겠지만, 나는 장교다. 보그너 같은 놈하고는 달라……. - p.58]



  책 말미에 실린 역자 해설에서는 에로스(삶의 본능)과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방적인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은 외삼촌의 처지, 한때 친밀했던 빌리와 외숙모의 관계는 에로스적이다. 결국엔 타나토스가 에로스를 압도하지만 이를 위해선 그리스 신화에서 또다른 개념을 빌려와도 좋을 듯하다. 니체를 빌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어떨까? 주인공 빌헬름은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 오토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한다. 하지만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건 도박에서 연이은 승리다. 아주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승리가 주는, 그리고 승리에 뒤따르는 목돈은 이성을 지워내기에 충분하다. 도파민, 오르가즘, 카타르시스. 뭐든 간에 그는 승리에, 상금에, 쾌락에 도취한 디오니소스 같은 상태다. 전도유망한 빌헬름 카스다 소위는 어리고 자신만만했던 이카로스가 날개를 잃고 바다로 떨어졌던 것과 마찬가지 처지에 빠진다.     

  

  또 하나 곱씹어 볼 것은 제목이다. 한밤은 Morgengrauen인데 이는 morgen과 grauen의 합성어다. Morgen은 '아침'이라는 명사도 되지만 '아침에, 내일에, 미래에'라는 부사도 된다. 또하나 grauen에는 '날이 밝아 오다'라는 뜻 외에도 '무섭다, 두렵다'라는 뜻도 있다. 주광성 동물인 인간은 빛이 있는 낮을 갈구하고 어둡고 스산한 밤을 무서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시간이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낮이든 밤이든 간에, 결국 우리 인간은 카이로스에 삼켜질 뿐인 가련한 운명이다. 카이로스가 오는 걸 도박이 몇 차례 막아줬지만 매번 이기기만 하는 도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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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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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모집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멤버로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마르틴 베크는 이십삼 년간 경찰 생활을 했다. 동료가 업무중에 죽는 일도 여러 번 겪었다. 매번 괴로운 경험이었다. 경찰의 업무가 갈수록 위험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음 차례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p.40]



  마르틴 베크가 불현듯 느낀 불안한 감정은 앞으로 일어날 불길한 사건을 미리 꿰뚫어 본 것이었다. 전세계가 베트남 전쟁에 휘말렸던 1967년, 스웨덴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웨덴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반전 시위가 일상이던 11월 어느 날이었다. 스톡홀름 47번 노선을 운행하던 빨간색 2층 버스가 교통 사고를 일으켰다. 탑승객 전원이 사망해버린 아찔한 사고였다. 그런데 이들은 교통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버스 안 총기 사고로 사망했다. 피해자들은 그저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공통점은 달리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문에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쏜 총을 맞고 사망했는가? 스웨덴에서 최초로 발생한 대량 학살 사건이란 점 만으로도 이미 평범한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 중에서 경찰이 있었다. 마르틴 베크의 부하 수사관이었던 스텐스트룀이었다. 그의 특기는 미행이었다. 사건 피해자 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무차별 범죄 같기도 하다. 그러나 범인은 사건 현장에 별다른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건 계획 범죄 같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질 무렵 실마리를 제공하는 건 스텐스트룀이 쫓던 사건이다. 아리아드네, 아니 스텐스트룀이 남긴 실타래를 좇아가보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듯하다.



[˝경찰이 필요악이기 때문이야. 누구든 불현듯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지. 직업 범죄자들조차 그래. 제아무리 도둑이라도 자기 집 지하실에서 뭔가 달각대는 소리가 들려서 밤중에 잠을 깨면 어떻게 할 것 같나? 당연히 경찰을 부르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자기 일을 방해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면 어떤 방식으로든 두려움이나 경멸을 표현하기 마련이야.˝ - p.199]



  전작들에 비해 마르틴 베크라는 주인공의 비중이 더욱 낮아졌지만, 그가 속한 경찰이라는 조직을 더 세밀하게 묘사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회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지만 결국 시민들에게 '필요악'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경찰의 기구하고 괴로운 심정이 묻어난 달까? 두려움이나 경멸을 받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짓는 미소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웃는 경찰은, 여느 직업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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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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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시는 가장 오래된 문학 분야지만 오늘날 문학을 지탱하는 건 소설인 게 사실이다. 창비,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문학동네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시집을 출간하고 있지만, 시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최대한 여러 분야를 편식없이 독서하려고 하지만 당장 나조차도 오롯이 시집을 완독해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시구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다. 이 책은〈풀꽃〉으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가 쓴 산문집이다. 평생을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로 생각을 표현해온 시인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글을 썼는지, 독자들에게 무슨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계속 생각해보며 읽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삶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감을 준다. 비록 부족하고 실패할지라도 다시금 시도하고 이어갈 여지를 남긴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보는 내 모습. 내가 평가하는 내 삶. 외부 풍경이 아니라 내부 풍경.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 p.26 좋아한다는 것]



  이 책 제목은 내가 몇 번이고 읽었던 만화 『슬램덩크』 속 명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농구와는 전혀 접점도 없던 양아치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했던 건 첫 눈에 반한 채소연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키가 유달리 컸던 백호에게 소연이 건냈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말 한 마디. 백호는 그저 소연에게 호감을 살 목적으로 "네,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뻔뻔스레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작중 마지막 대회에서 백호는 경기 중에 아주 큰 부상을 입는다. 꿈만 같았던 지난 몇 달이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백호를 농구로 이끌었던 한 마디가 떠오른다. "농구, 좋아하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좋아하다'라는 단어엔 이렇게 마법 같은 힘이 담겨 있다. 사람이 무언가에 빠진다면,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면 거기엔 많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다른 부차적인 이유는 필요 없어진다.


  어느덧 80대에 접어든 시인이 50년이 넘도록 꾸준히 시를 써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건 간에 꾸준히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여전히 자기 일에 애정을 보여주는 나태주 시인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일축하며 자아 비판했지만, 이 책에 실린 여러 글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목표를 차근차근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부분이었다. 언젠가 접한 미국 해군 제독 맥레이븐이 한 강연과 책 "침대부터 정리하라"는 충고와 상통해서 더 내 마음을 울리기도 했나 싶다. 대표작 〈풀꽃〉처럼 나태주 시인은 쉽고 친근한 시어로 시를 쓰는 걸로 유명하다. 나'와 인연과 세상과 글을 좋아한 시인이 평생 동안 시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나 또한 나 자신과 내 주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겠단 다짐을 해본다.   



[오늘에 와 나는 젊은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허우적거리지 말고, 조그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분명히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일생을 바쳐 그 꿈을 이뤄내라고. 그것이 그대들의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다.

소년이여 큰 꿈을 가져라. 이것은 분명 옛날식 충고요 허황한 교훈이다. 그 대신 나는 말해주고 싶다. 소년이여 조그만 꿈을 가져라. 꿈을 가지되 실현 가능성이 분명하고 목표가 확실한 꿈을 가져라. 끝내 그 꿈을 이뤄라. 이것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내 인생을 걸고 하는 말이다. - p.66~67 소년이여 조그만 꿈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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