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글방 서포터즈 2기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자신의 양심에 따라 바르게 행동하고 사고하면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옳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칭찬만을 바라고 한 행동이나 남의 비난을 피하려고 한 행동 등, 외적 요인만을 원동력으로 삼은 행동은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다. 양심이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되돌리는 “진짜 자기 목소리”이며, 자신에게 “옳은가?”라고 묻는 목소리에 “네”라고 대답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자신이 한 일조차 정말로 자신이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인류 역사 상 가장 혼란스럽고 끔찍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은 여러 분야와 인물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태생이지만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 스위스에서 생애를 보낸 에리히 프롬도 마찬가지였다. 나치가 조국을 넘어 전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에 많은 사람은 자유를 찾아 도피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프롬의 관심사가 이해된다. 집단에 매몰되지 않은 개인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라인홀트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 따르면 선한 개인이 모인 집단에서도 얼마든지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나치즘이 대표적이다. 군중의 광기에 휩쓸리면 개인의 자아와 의견은 쉬이 힘을 잃는다. 여기서 프롬은 ‘고독’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독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고립 상태가 아니라, 타인이나 집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무언가 판단 기준과 준거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확실한 신념이 곧 사리 분별의 첫걸음이다. 나치즘에 따른 몰개성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진정한 개인을 설명하고 강조하늨 대목에서는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떠오른다. 이렇게 보면 프롬은 참 확장성이 좋은 철학자이자 사상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의 대표작인 <소유냐 존재냐>와 <존재의 기술>의 핵심은 원불교 같은 동양철학과 상통하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다른 서구 철학자에 비해 그나마 독해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휴머니즘을 앞장 서서 제창한 프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니 말이다.덧. 마침 프롬의 대표작 두 권이 모두 까치의 스테디셀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