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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선 남자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평점 :
*.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모집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멤버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남자는 다시 접이의자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저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남자는 꼼짝 않고 앉아서, 사방에서 도시가 깨어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시는 내키지 않는 듯 우물쭈물 깨어났다. - p.20 ]
"스타벅스에서 한 남자를 봤는데 폰도 없고 태블릿도 없고 노트북도 없고 그냥 거기 앉아서 커피나 홀짝이고 있었다. 싸이코패스처럼. I saw a guy at Starbucks today. No iPhone. No tablet. No laptop. He just sat there. Drinking coffee. Like a psychopath." 당연히 우스개소리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밈이다. 인터넷에서 재미로 본 밈이 1967년에 출간된 소설, 그것도 범죄 소설에서, 용의자의 시점으로 접하게 되니 퍽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했던 서평 2건에 이어지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덩케르크〉와 〈오펜하이머〉에서 서로 다른 세 시점과 시간대를 능수능란하게 엮어 이야기를 진행시킨 걸 연상시킨다. 앞서 언급한 용의자가 발코니에서 사건을 관찰하는 시점, 무차별 강도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시점,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시점. 세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처음에는 작고 한적한 공원에서 이따금씩 일어났던 무차별 강도 사건은 어느새 어린이들이 실종되고, 성폭행당한 후, 살해되는 사건까지 이어진다. 강도와 성폭행/살인 사건은 별개인가? 그저 우연히 맞물린 건가? 아니면 동일범이 일으킨 소행인가? 형사 마르틴 베크는 전작에서 보여준 것처럼 천천히, 하지만 꼼꼼히 수사를 진행한다.
단순히 강력 범죄를 수사하고 이를 해결하는 주인공의 모습만이 아니라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 군상과 고뇌를 보여준다. 예컨대 피해자 가족에게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갈등하는 경찰, 절망에 빠진 유가족을 배려하는 장면 등이 눈에 띈다. 사건이 해결되더라도 결국 남은 이들은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가야 한다. 끔찍한 일도 이겨냐내야 한다. 작가 부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건 어떻게 이런 끔찍한 범죄가 해결될 수 있는지 과정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 후에도 또다른 하루를 감내하며 살아나가야 할 남은 이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어쨌든 일제 검거는 예정되어 있었고,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11시쯤 작전이 개시되자 범죄자들의 은신처와 마약 소굴로 소문이 들불처럼 번졌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도둑, 장물아비, 포주, 창녀는 다들 납작 숨었고, 중독자들마저 대부분 그랬다. 불시 단속은 시간이 흘러도 처음의 기세를 잃지 않고 줄곧 강경하게 진행되었다. 경찰은 도둑 하나를 현장에서 검거했고, 자기 보존 본능이 부족했던지 지하로 숨지 않은 장물아비 하나를 잡았다. 경찰은 사회의 찌꺼기 구성원들을 휘저어놓는 데 성공한 것뿐이었다. 노숙자, 알코올의존자, 마약중독자, 모든 희망을 다 잃은 사람들, 자기들의 복지국가가 돌멩이를 일일이 들추듯 뒤지는데도 기어서 도망칠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