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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11월
평점 :
리처드 도킨스는 오늘날 누구나 다 아는 과학자다. 학자들 중에서는 자기 연구에 몰입해 학계에서 받는 명성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도킨스는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처럼 논쟁적인 저서를 집필했다. 유명세만큼 비판도 크게 받고 있지만 그는 단순히 자기 이론과 주장을 설파하는 걸 넘어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꿨거나, 너무도 빠른 속도로 발달해 일상과는 점점 유리되는 거 같은 과학을 일상 논쟁의 주제로 만들었다. 과학사를 공부하면서 그 흐름을 좇거나, 혹은 요즘 논쟁이 되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같은 기술 속에 숨겨진 딜레마를 마주하면 과학을 단순히 자연 현상 탐구와 이론 정립으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도킨스는 자연과학을 넘어 과학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다른 학문 분야의 주제도 다룰 수 있다는 걸, 아니 다뤄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과학자들에게 친숙한 건 자연의 언어인 수학일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처럼 대중적인 저술로 이름 높은 과학자들이 쓴 글을 보면 간결하게 핵심을 담고, 다른 사람을 일깨워주는 통찰력 있는 문장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도 좋은데 글까지 잘 쓰는 건 반칙이 아닌가 싶다. 이는 아마 과학자들에게 내재된, 그리고 평소에도 철저히 단련한 과학적 사고는 글쓰기에도 분명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어떤 책을 읽으면서 상호작용을 할까? 어떤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다시 자신의 언어, 사고, 표현으로 소화하는가?
총 6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언제나 대화로 시작한다. 과학 글쓰기를 다룬 1장에서는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 자연 찬미를 주제로 한 2장에서는 과학 해설자 겸 방송인 애덤 하트-데이비스와, 인간을 탐구하는 3장에서는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와, 회의주의를 파고드는 4장에서는 작가 겸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신앙을 심문하는 5장에서는 이론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와, 마지막 6장에서는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와 대화를 통해 진화에 관해 논한다. 과학적 사고의 기본은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하고, 의문에 대한 해답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한다. 그리고 어떤 의문에 대한 고정된 해답만을 상정하지 않고, 진정 그 해답이 타당한지, 반례는 없는지, 더 나은 해답은 없는지 끊임없이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56편이나 되는 글 속에서 그와 관련된 책을 비평하여 근본적인 의문과 연결짓는 능력은 비평적 독서의 모범사례 같다. 책을 읽을수록 그저 책을 읽는 걸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생긴다.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며 텍스트를 읽어나갈 것. 도킨스가 이 책을 통해 내게 일깨워준 신념이다.
*. 김영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