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 일상을 파고든 마약의 모든 것
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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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분명 마약 관련 범죄에서 자유로운 이른바 '마약 청정국'이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안전한 치안을 자랑하는 건 총기는 물론 마약이 시중에 거의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연예계를 중심으로 마약 소식이 계속 보도됐다. 일부 연예인 뿐만 아니라 특정 클럽 같은 장소를 중심으로 일반인도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단 보도가 이어졌다. 미국은 원래 마약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문제인 국가고, 네덜란드는 타 국가에 비해 마약에 관대해 의료용으로 지정된 마약이 많고, 중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특유의 엄벌주의, 그중에서도 특히 마약 관련 범죄에는 조금도 자비를 보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국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원래 마약이 일상적이지 않은 나라였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 궁금해졌다.


  이 책은 마약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마약을 하며 왜 끊지 못하는 걸까?"란 질문에는 1부 '마약 하는 사람'을 읽어보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양성관 선생님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를 진료했다. 전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1부에는 마약에 중독된 온갖 환자 유형이 등장한다. 별다른 마취제가 없었을 때 외과 수술은 환자에게 질병보다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20세기부터 등장한 온갖 약물 덕분에 환자들은 편안한 상태로 수술 받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이런 약이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단 점이다. 천국 같은 경험으로 시작된 마약 투여는 이내 중독이 되고 지옥이란 결말에서 끝이 나는 법이다. 마약을 시작, 중독,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스피린, 타이레놀 같은 일상 약물부터 코데인, 트라마돌, 그리고 모르핀, 펜타닐 같은 여러 약물의 특징과 작용 메커니즘 같은 정보를 알 수 있다.


  2부 '마약 파는 사회'는 "국내에 그리고 전 세계에 왜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걸까"에 대한 답이다. 1부는 개인 차원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했다면 2부에서는 이를 사회, 국가 차원으로 확대한다. 마약은 고부가가치 사업 중 최고다. 커피와 코카인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와 마약왕 에스코바르에 관한 정보, 북한에서 국가적으로 벌이는 마약 재배, 그리고 옥시콘틴, 헤로인, 펜타닐을 중심으로 떼돈을 번 미국 제약 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장에서는 한국의 상황이 이어진다. 온 도시가 마약에 찌들어버린 미국 렉싱턴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한국도 점점 마약에 중독되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모를 일이다.


  국내외 뉴스를 통해 마약에 관한 보도는 이따금씩 접했지만 이 책은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집필해서 마약 그 자체에 대한 정보가 풍성했다. 뉴스로만 접하면 그저 '마약'으로 불리는 약물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마약으로 인한 범죄와 사회에 미치는 여파만 알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약학에 대한 정보는 물론 의사가 환자를 상대하며 개인이 왜 마약에 빠지는지, 마약에 빠지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같은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너머 사회나 국가, 그리고 세계 같은 더 큰 공동체 단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마약에 관해서라면 예외가 있어선 안되겠다. 마약으로 인한 쾌락은 한순간이지만 고통은 영원하니 말이다.



*. 히포크라테스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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