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평소에 역사책을 좋아해서 관련 책을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그런데 역사책은 사료, 즉 문자 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시대나 주제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책의 수와 질이 달라진다. 예컨대 한국사의 경우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이 많고 시대도 가까운 조선사는 연구 분야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반면 고조선이나 발해에 관한 기록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남아 있는 기록마저도 중국 사서를 참고해야 할 정도다. 또한 역사는 결국 승자가 남긴 기록이다. 의자왕이나 궁예 같은 인물이 정말 전해지는 기록만큼이나 폭군이었는지는 더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보면 비록 예전부터 전해져내려온 기록이라 해도 우리가 그걸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라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그저 기록만 남긴 건 아니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상 속에서 온갖 활동을 했다.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하고, 제사를 지내고, 기념품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선조들이 남긴 물건과 흔적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게 고고학의 역할이다. 고고학은 이처럼 역사학이 차마 다 밝혀내지 못하는 것을 알려준다. 두 학문은 상호보완적이고, 특히나 고고학은 남겨진 유물과 우리의 상상력을 합해 더욱 적극적으로 역사의 흐롬 속에서 끊어진 빈 공간을 해석하는 학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가 고고학에 관한 신문 연재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32꼭지 글은 ‘잔치(Party)’, ‘놀이(Play)’, ‘명품(Prestige)’, ‘영원(Permanence)’이라는 네 가지의 주제로 세분화됐다. 서문에서 나오는 것처럼 고고학의 주요 연구 분야는 무덤이다. 무덤을 만드는 양식, 그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부장품과 장식물은 보존도 잘 되어 있고 해당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그렇기에 무덤과 관련된 글은 3, 4부에 집중돼 있다. 자칫 이런 주제로 시작하면 책이 딱딱해보이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음식을 다루는 1부와 놀이를 설명하는 2부로 시작하는 구성이 진입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열중하는 취미가 위스키, 꼬냑, 럼 같은 증류주를 찾아 마시는 일이다. 그래서 막걸리와 소주를 다룬 글이 특히나 재밌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돼지고기, 소고기와 관련한 글을 읽을 땐 우리나라가 정말 유목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구나 싶었다. 고고학은 과거를 다루지만 역설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더 세밀한 조사와 새로운 발견은 더 성능 좋은 도구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과거와 미래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주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느꼈다.
*. 흐름출판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