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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찍는 사진관 - 시간을 거슬러 색을 입힌 사진들
복원왕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5월
평점 :
사진이란 매체가 등장하면서 미술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게 그동안 회화의 가장 큰 목표였으나 아무리 잘 그리고 칠한 그림이라도 사진보다 더 ‘진짜’ 같을 순 없었다. 사진은 현실을 모사하는 수준을 넘어 순간을 포착했다. 결국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제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형하거나 단순화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마저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크나큰 간극을 만든 일등공신이 사진인 셈이다.
사진이 끼친 영향은 단순히 미술이란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또하나 사진이 판도를 바꿔버린 영역은 바로 기록이다. 그전까지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문자였다. 그림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 문자는 특별한 기술을 요하진 않았고, 금속 활자가 발명된 이후엔 대량으로 인쇄와 보급이 가능했다. 그러나 문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의미 전달이 힘들었고, 그림은 제작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 판화 정도를 제외하면 대량 생산이 힘들었다. 이처럼 가장 오래된 기록 전달 매체인 문자와 그림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뚜렷했다.
그런데 사진은 어떤가? 문자는 의미를 학습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진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회화나 판화와 달리 사진은 특별히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사진기 다루는 법을 배우는 건 글을 익히거나 그림을 배우는 거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다. 그리고 사진기로 포착한 순간은 필름에 남고, 그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면 사진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다. 그것도 대량으로. 물론 사진이 글과 그림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한다. 그럼에도 사진은 글과 그림이란 매체에 존재했던 한계점을 극복했고, 훨씬 더 쉽고 빠르고 ‘객관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지난 수백 년간 인간이 누리는 생활은 극적으로 변했다. 농업에서 산업으로, 산업에서 정보로 이르는 혁명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슿아갈 모습을 바꿀 것이다. 그렇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신체는 거의 바뀐 게 없다. 섭취하는 영양이 풍부해져 평균 신장과 체중이 좀 늘었을 뿐, 신체 기관이 달라진 건 아니니 말이다. 사진에 색이 들어간 건 사진의 역사보다 짧다. 그래서 옛 사진은 흑백이다. 하지만 책에서 지적하듯 지난 시절을 담은 사진이 우리가 보기에 흑백이더라도,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삶은 단조로운 흑백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가득하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흑백 사진만 보고 살다가는 간과하기 쉽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한창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을 무렵엔 컬러 사진이 막 보급될 시점이라 그나마 익숙하다. 하지만 책 앞과 중간에 실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전후와 전란기를 담은 컬러 사진은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흑백으로 보던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와중에 컬러로 복원된 사진이 내게 알려준 건 사진 속에 담긴 평범한 이들의 모습과 얼굴 표정, 그리고 그들의 삶 그자체였다. 흑백 사진 한 장을 컬러로 복원하는 건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이나 걸리는 일이라고 한다. 지난하고 고된 과정임에도 저자가 복원왕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 건 단순히 사진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의 인생을 복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 초록비책공방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