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4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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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 서평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 고착화되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국제 뉴스도 다양해지는 듯하다. 전쟁을 제외하고 올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파장이 크고 어떻게 마무리될지 가늠이 안되는 사안을 꼽아보자면 단연 프랑스 연금개혁안을 둘러싼 갈등일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프랑스 시사 월간지인데, 이 사안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워낙 큰 사안이니만큼 이번 호에도 비중있게 다뤘다.

월초에 인쇄, 배송되는 이 월간지의 특성상 프랑스 원문 기사는 아마 3월 중순쯤에 마감됐을 거 같다. 4월 15일자로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 법안에 서명하고, 17일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21일 인터뷰에서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채 절차가 진행된 게 유감이라고 말했지만 더 큰 파장으로 이어질 게 확실하다.

다음 호에서 후속 기사가 궁금하지만 이번 호 기사로 정리된 게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프랑스 역시 노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구조 문제를 겪고 있다. 수십 년 전에 설계된 연금 구조로는 감당할 수 없이 적자가 불어난다. 더이상 늦기 전에 이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다만 개인 권리 행사를 몹시 중요하게 여기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랑스 국민에겐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일인듯 싶다.

한국에서도 연금개혁안은 시한폭탄 같은 문제다. 누군가는 해결해야할 문제지만 정치인이 지지율 깎아먹힐 각오를 하고 이를 쟁점화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소신있게 이를 강행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존경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마크롱은 민주주의의 핵심이 공론화 과정에 있다는 걸 간과했다. 아무리 본인이 후보자 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이고, 여기서 더 늦아지면 손도 쓸 수 없을 거란 조바심이 들었다고 해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절차와 설득을 내세우지 않았다.

사실 노란조끼 시위와 국민전선 후보였던 르펜에게 이전 선거보다 더 적은 격차로 승리했다는 점에서 마크롱은 이제 잃을 게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아무리 시위가 전국적으로 흘러갔더라도 결국 정부가 원하던 대로 관철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을 이렇게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마크롱 본인의 정치 인생은 물론, 앞으로 프랑스에 얼마나 좋게 작용할 지는 모르겠다. 다른 나라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연금 문제는 주로 연령 갈등, 즉 청년층 대 중장년층이 대립하는 걸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은 연금 문제를 계층 문제로 보는 거 같다. 은퇴 시기와 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지는 건 육체 노동자와 중산층 이하에게 더욱 치명적인 탓이다. 한국 언론은 지금 청년 세대 내에서 성별 갈등을,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전세계적으로 심해지는 추세에 우리 역시 계층 문제에서 자유롭진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인종, 종교 문제를 겪지 않으니 한 번 계층 문제가 폭발하면 수습이 안될 정도로 커질 거 같다. 프랑스 문제가 그저 남의 나라 일로 두고볼 게 아닌 거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고, 겁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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