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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유목민 이야기
킨초이 람 지음, 김미선 옮김 / 책과함께어린이 / 2022년 12월
평점 :
산업화와 세계화를 거치면서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던 생활 방식은 엇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문명은 19세기 중후반에 개혁이란 명목으로 서구화를 단행했다. 시기가 달랐지만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변화가 너무 급격히 일어난 게 문제였다. 지구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같은 동물 종이라도 사는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한 것처럼, 인류도 주어진 환경에 최적화된 문명을 발전시켰다. 지역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저마다 다른 건 크게 보면 진화로 인한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서구화, 아니 '문명화'라는 바람은 산업화와 세계화라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지역마다 특성을 없애버리고 있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우리 모두는 한때 유목민이었다!"는 글귀가 강조되어 있다. 인류 문명은 농업 혁명을 바탕으로 한 신석시 시대 이후로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비록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는 농업 혁명을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이라 말하며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면을 강조하지만, 인류가 정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변화 속도를 끌어올렸다는 전제 자체를 부정하기든 힘들다. 인간이 특정 장소에 정착하기 전에는 떠돌면서 사는 게 보통이었다. 책은 7개 부족을 통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양식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몽골 유목민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교차가 80도나 되는 초원 지대에 살던 이들은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사하라 이북 아프리카의 투아레그, 시베리아의 변방 야말 반도에 사는 네네츠는 대비되는 극한 환경 속에서도 전통을 고수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유랑 집단인 롬은 사실 '집시'나 '보헤미안' 같은 멸칭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 지대에 사는 마사이는 관광업과 수공업을 통해 점차 세상과 접하는 문을 넓히고 있다. 동남아시아 해안가에 흩어져 사는 사마바자우는 바다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존에 사는 마지막 부족인 야노마미는 정착과 이동을 번갈아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을 이유로 산림 파괴를 겪고 있는 곳이다.
유목 생활은 우리가 이룩한 정주 문명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정착이 곧 '문명'으로 이어진 것에 비해, 유목은 아직 '원시'와 '야생'에 가깝다. 과거에 제국주의가 한창 유행할 때엔 인간이 이룩한 눈부신 문명을 통해 지구에 남아있는 원시와 야생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성행했다. 생태계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걸 쉽게 인정하면서도, 정작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에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모순이다. 아니, 차라리 이게 모순인 걸 인지하지 않는 게 요즘 통용되는 상식인 듯싶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식물은 여러 종으로 분화가 되었다. 그런데 현생 인류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의 후손이다. 인간의 종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일까? 우리는 은연 중에 가장 인간 다운 삶을 규정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일탈과 문제로 취급한다. 환경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우리가 지금 이대로 계속 살면 안된다는 믿음과 문제 의식이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더군다나 환경을 파괴하는 건 우리 정주민이지만, 정작 가장 큰 피해는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하는 유목민에게 돌아간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를 위해서는 지금과는 삶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급진적인 변화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자연의 순환과 주어진 환경 안에서 개성 있는 삶을 유지하는 유목민을 통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 책과함께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