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의 비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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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책에서나 본 그림이 해외 경매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낙찰됐다는 소식을 이따금씩 듣곤 한다. 재화와 용역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식이다. 더군다나 이런 고미술품 같은 경우에는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 수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값이 뛰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이런 그림들이 정말로 수백, 수천 억원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만한 가치를 부여하고, 실제로도 가치가 상당해야 벌어지는 일이지만 뭔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다. 


  평소에 궁금한 게 생기면 곧잘 의문을 해결해줄 책을 찾는 편이다. 그런데 미술을 주제로 한 책이면 태반이 미술사, 특정 사조, 아니면 미술가의 생애를 다룬다. 미술작품이 왜 비싼지, 그림값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미술 투자의 전망이 어떤지, 어떤 작가 작품에 투자할 만한지 터놓고 알려주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양정무 교수를 처음 접한 것은 <난처한(난생 처음 한 번 접하는) 미술 이야기>라는 미술사책을 읽으면서였다. 미술사 혹은 미학을 소개하는 책은 보통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처럼 두껍다.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도 분량만 보면 두꺼우나, 정말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편안한 구어체 서술이 눈에 띄었다. 그 후에 차이나는 클라스, 어쩌다 어른, 예썰의 전당 등 대중 매체에서 양정무 교수를 접할 기회가 늘었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쉽고 편안한 설명이 참 눈에 띄었다.


  이 책도 미술에 대한 의문점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의문과 저자의 대답을 직접 정리한 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인 10장이다. 그 이전 차례는 이해를 돕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할 수 있다. 1장부터 3장은 예술과 자본 간 상관관계를 논한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작품을 만든다. 이를 도와주는 게 딜러다. 훌륭한 예술품은 훌륭한 예술가와 훌륭한 딜러 모두를 필요로 한다. 대중들이 쉬이 간과하기 쉬운 딜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4장부터 7장은 미술과 상업이 어떻게 결합하면서 미술 시장을 형성했는지 궤적을 추적한다. 흔히 르네상스를 인본주의로 해석한다. 종교만이 아닌 좀 더 세속적인 주제를 미술이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을 넘어 화가 개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인본주의는 단순히 그림 안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8장과 9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들이 등장한다. 뒤러,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루벤스, 모네, 고흐의 간략한 생애를 통해 돈이 그들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읽었던 예술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대중 친화적인 책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쉽고 잘 읽혔고, 분량도 부담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책이라면 도판이 얼마나 실려있는 가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도판이 풍부해 책에서 설명하는 그림을 따로 더 찾을 필요가 없다. 대중들이 비싼 그림에 가질 의문들을 마지막 장에 모아서 서술한 구성도 맘에 들었다. 나중에 내용을 다시 찾아보기가 수월할 거 같다. 오랫동안 미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연구한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대목이 많았다. 유럽에 있을 때 이탈리아를 가지 않았던 게 못내 아쉬워진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그림 원본, 피렌체 같은 도시를 언젠가는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마음 한 켠에 담아본다.



*. 창비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에게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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