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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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는 ‘인생’을 “B(태어남)와 D(죽음) 사이의 C(선택)”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했지만 토베 디틀레우센에게 주어진 가짓수는 거의 없었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지만 이제 사회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막 학교를 벗어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기껏해야 가정부, 하숙집 청소, 간호용품 재고 관리 같은 게 전부였다. 이런 불안정한 일자리에 가족들이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토베는어린 나이에 가장의 책임을 조금씩 느낀다. 


  다른 선택지는 결혼을 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이란 건 좋아하는지도 확신이 채 들지 않는 상대방을 만나고, 온갖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론 덴마크라는 나라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지만 당시는 100년 전이다. 토베 디틀라우센이라는 인간은 한 사람의 여성이기 이전에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거다.


  인간은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려고 하는 것조차 결국 운명이란 플롯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게 확고히 정해져 있다는 법이 어디에 있나. 인생이라는 공고한 틀에 균열을 내야 한다. 토베의 인생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시인의 삶이다. 시인은 올곧고, 강직하며, 타협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로 간절히, 진짜 시를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갖고 싶다. 네 개의 벽이 있고 문이 닫힌 방 안에 있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것처럼 여성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공간, 그러니까 ‘자기만의 방’이다. 한 켠짜리 방이라도 작가는 작품과, 다른 작가와, 세계와 통할 수 있는 통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한결같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토베는 어려서부터 시를 쓰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 청소년이 되어서도 그 꿈은 아직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환경은 예전 같지 않다. 부모는 점점 딸에게 의존하고, 토베 역시 남들처럼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뤄야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내가 아무리 변하고 싶지 않더라도, 정작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뀐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청춘이란 건 기실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어중간함 속에서 시간은 그저 흐르기만 할 뿐.



*.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서포터즈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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