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평점 :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며 만물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고, 인간이 뱉은 말은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하기에 결코 불변을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구전은 지식의 보전 차원에서 큰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이후에는 보관 여부에 따라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당시의 기록을 먼 후세에 전달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제 문제는 어떻기 기록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다 확실히 기록을 보전해주느냐가 되었다.
이 책은 기원전에 존재했던 앗슈르바니팔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다. 당시 존재했던 온갖 서책과 문서, 기록물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 훗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도록 한 장소가 도서관이고, 도서관의 역사는 이처럼 오래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체계적인 도서관의 설립과 운영은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아주 힘든 일이기에 이를 관리하는 국가의 행정 수준이 몹시 중요했다.
지식의 보고라 불리는 도서관은 어느 국가 또는 사회가 큰 혼란을 겪을 때마다 위험에 처했다. 영국과 미국의 전쟁 때 불타버린 미국 의회도서관이나 1,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공격을 두 번씩이나 받은 벨기에의 루뱅대학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은 제국주의 시절 열강의 식민 통치 관련 자료를 보전하고 있기에 이를 본국으로 빼돌리는 건 과거의 범죄를 은폐, 축소하거나 심지어 아예 부인하는데에 악용되었으며, 반대로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법 행위의 증거를 다른 안전한 국가로 옮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이런과 카프카로 대표되는 작가들의 유고다. 바이런 사후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유족들은 남은 원고를 모두 불태웠으나, 카프카의 친구 브로트는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추후 작품들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날 두 사람이 각각 영문학과 독문학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유실된 바이런의 작품은 문학계의 큰 손실로 볼 수 있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오늘날 수많은 언어로 끊임없이 번역되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도서관의 파괴와 작품의 소각을 다룬 역사적 내용을 새로이 알게된 것도 충분히 흥미로웠으나, 무엇보다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하는대로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단위로 표현할 수 있는 인터넷 상의 지식 교환은 그저 ‘저장’에 불과할 뿐이다. 정보의 바다를 채우는 수많은 정보들은 전력 공급이 끊기거나 서버가 폐쇄된다면 다시 이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민간 IT 기업의 제품인데, 여기에서 기존의 도서관이 가졌던 공공성(publicity)를 어떻게 담보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책의 출판(publishment)는 사람의 머릿 속에 든 지식을 문자로 표현해 사회 전체의 지식 총량을 늘리는데 기여하는 행위인 걸 고려하면, 온갖 출판물을 집합하는 공간인 도서관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모하고 대응해야할 지 고민해보는 건 비단 사서만의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서평단 활동으로 이 책을 책과함께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