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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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대를 진단한 저서 <공산당 선언>을 통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건 1848년으로부터 139년이 지난 1987년, 미국의 러셀 저코비가 이 책 <마지막 지식인>을 내놓으며 당시 미국에 팽배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강의해온 저코비가 비판하는 건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학 캠퍼스에 머무르는 지식인들이다. 교수가 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무척 힘든 일이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도 많이 받고 끊임없이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을, 심지어 자신과 소속 집단에 대한 비판까지 무릅쓰고 날선 지적을 이어간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코비가 제기하는 문제 의식은 '지식인'이라는 계층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시대가 발전하며 교육의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고등 교육을 이수한 시민의 비율도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의 학문과 문제는 너무 복잡하다.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지식인은 단순히 자기 전공 분야를 깊게 연구하는 것을 넘어 거기에서 논의할 수 있는 핵심 담론들을 시민들과 공유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언론 기고문이나 대중 활동을 통해 전파하고, 반박과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하며, 여기에 대한 재반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지식의 선순환이 계속되어야 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저자가 주장하는 지식인의 핵심 역할은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에 앞장서야 하는 것이며, 특정 집단에 소속되기 보다는 더 큰 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공 지식인(the public intellectuals)'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학령 인구의 증가와 고등교육의 확대는 대학의 비대화로 이어졌다.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가르치는 사람도 많아져야 한다. 대중이 서로 다른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고 각종 담론을 생산하는 최전선에 있었던 대중 지식인들은 어느덧 대학이라는 공간으로 흡수되어 상아탑에 매몰되었다. 본인 스스로도 대학에 오래 있었지만 저코비는 이런 이유로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너무도 변해버린 지식인을 비판한다. 자아 비판을 감수하고서 말이다.


  지식인들은 최신의 연구 성과를 각종 학회지에 발표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통로에서 한정된 인원과 소통을 주고받는 지식인들은 점차 대중과는 유리된다. 대학에서 배웠던 이론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는 현실과는 다른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이론과 같은 지식이 현실과 단절된 채로 한쪽 측면만 기형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학계에서 평가하는 연구 실적은 얼마나 이름난 저널에 양질의 논문을 발표했느냐로 판가름나지, 지식의 보급과 전파에 이바지하는 대중 대상의 강연 활동이나 교양서 출간, 해외 서적 번역 등의 업적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1987년 무렵 미국에 팽배한 문제를 지적한 책이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에 적용해보아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대학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대학들은 시내 곳곳에 학교 건물들이 퍼져 있지만 한국이나 미국의 대학 캠퍼스는 넓은 부지를 차지하며 외부와는 단절된 채로 일상이 흘러간다. 오늘날 특정 분야의 지식이 특정 계층에만 향유되는 상황을 공간적으로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20대의 시작과 끝을 대학 캠퍼스 안에서 보내다가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할 지금의 나에게는 유독 이 문제가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저자가 제목에서 의도한 중의적 표현처럼, 부디 이런 현상이 '지난(last)' 세대의 문제이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개선되는, '마지막(the last)' 상황이길 바랄밖에...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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