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탈박물관 -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댄 힉스 지음, 정영은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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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해외 여행을 가장 부지런히 다닌 시기는 4년 전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체류할 때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독일은 물론 이웃한 여러 나라들의 주요 도시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았던 것은 박물관을 한 군데는 돌아보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유물에 흥미가 있던 나에게 박물관이라는 장소는 온갖 문화재와 거기에 간직된 시공간적 맥락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지극히 편리하고 효율적인 공간이었다. 어떻게 일정을 짜든 빠듯한 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박물관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효율, 편의, 가성비 같은 고려 사항을 한꺼번에 충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래 있던 시공간을 벗어나 역사적, 고고학적, 인류학적 맥락이 거세된 채로 유리 전시장 안에 안치되어 있는, 본래의 장소를 떠나버린 지역의 유물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불쾌하고 찝찝한 감정이 들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영국 런던에 위치한 영국박물관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박물관이 아니라 장물관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두 나라가 많은 열강 중에서도 제국주의에 가장 앞장섰으며, 영국박물관의 전시품 대다수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 제국 시절 전세계에서 모은 약탈품과 전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책의 제목 그대로 영국(British)박물관과 대약탈(Brutish)박물관은 한 끗 차이다. 이 책은 전반부에서 1897년 영국이 나이지리아 베닌시티에서 '베닌브론즈'라는 청동 문화재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원주민의 영국군에 대한 학살, 원정이란 이름의 영국군의 보복을 소상히 다루며, 후반부에서 강대국들의 문화재 거부 반환 논리를 비판, 반박하며 서구 사회에 오랫동안 내재된 위선을 폭로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옥스퍼드대학 피트 리버스 박물관의 큐레이터다. 즉 내부자의 시선으로 자국 학계와 정부에 정면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수강 중인 <세계외교사>에서 배운 배경 지식이 이 책을 읽는 데에 꽤 도움이 되었다. 온 유럽이 전쟁 상태였던 나폴레옹 전쟁 이후 다시는 전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유럽협조체제가 긴밀히 작동했고, 크림전쟁 이외에 19세기에 유럽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이후 강대국들의 상충하는 이해 관계를 적극 조정했는데, 유럽에서 지속된 평화 상태는 강대국들이 전세계에서 식민지를 두고 경쟁하는 제국주의의 서막이 되었다. 유럽이 민족주의를 넘어 제국주의란 틀 안에서 경쟁을 시작했다. 유럽과 인접했던 서아프리카는 이런 이유로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사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베닌브론즈가 우리에게 낯선 유물인데다가 한국인의 세계사 상식에서 벗어나는 세부적인 내용도 많이 등장하기에 난도가 꽤나 높았다. 베닌브론즈는 한국과는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나이지리아의 유물이다. 하지만 베닌브론즈의 반출 경위에는 제국주의라는 이름의 온갖 폭력과 타문화에 대한몰이해, 무자각은 물론 강대국의 선민 의식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제국주의에 피해자인 우리나라 역시 소중한 문화재들이 셀 수 없이 일본으로 반출된 아픔을 겪었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일이라고 모른 척할 게 아니라, 제국주의의 온상인 서구 국가의 박물관으로부터 자국의 유물을 온전히 반환받기 위해선 공감을 넘어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아니될 것이다.   



*. 서평단 활동으로 이 책을 책과함께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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