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도시 - 기업과 공장이 사라진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방준호 지음 / 부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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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항구 도시다. 군산이라는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이다. 예로부터 전라도는 비옥한 곡창 지대였고 여기에서 나온 수확물을 전국 곳곳으로 운반하기 위해서 주변에 큰 항구가 필요했다. 조선을 식민 지배했던 일제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군산을 식량 수탈의 거점으로 삼았다. 지금도 적산 가옥을 비롯한 근대 일본식 건축물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군산은 일제강점기부터 크게 발전했다. 전라북도의 거의 유일한 항구라는 입지는 광복 후에도 군산을 계속 성장시킬 원동력이었다.   


  항구가 인접해 있는 곳에는 으레 공업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라는 대규모 인력을 요하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군산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 지형이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에서 첨단 산업을 지향하는 쪽으로 변하고, 외부 불경기 같은 복잡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2017년에는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이듬해에는 한국GM 자동차 제조 공장이 문을 닫았다. 군산의 산업, 경제, 인구를 뒷받침하던 두 기둥이 거의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 책은 언론인인 저자가 산업 붕괴의 여파가 한창 진행 중인 2019년에 직접 군산을 방문하여 6주 동안 3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쓴 기록의 결과물이다. 조선소와 공장이 도시를 떠났어도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살아있기만 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존재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한때 제조업 노동자들이었던 이들은 다른 직종에 자리를 얻거나 자영업자로 변했다. 당연히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비록 이들은 익명으로 자신의 사연을 전했지만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다.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제조업이 쇠퇴하고,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다른 지역은 '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방이라는 단어에는 이제 차별, 멸시, 낙후 같은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10년 전에 있었던 쌍용차 사태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는 것처럼 군산의 경우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흘러가지 말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지역 균형 발전이 절실하지만 이는 선거철에만 잠깐 등장하는 정치가들의 가망없는 공약처럼 보인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구, 이태원, 영암을 언급한다. 이 지역들은 군산이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모집단이라면 군산은 표본이다. 군산의 문제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기업이 떠나면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살던 도시를 떠난다.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더 많다. 부산에 살고 있는 내게는 군산의 목소리가 도저히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 부키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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