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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 문제는 불평등이다. 한국 타이완 필리핀 비교연구
유종성 지음, 김재중 옮김 / 동아시아 / 2016년 9월
평점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명제는 정치학에서 오랫동안 통용되는 일종의 절대 명제다. 저마다 다른 의사와 행동을 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라 묶어준다는 점에서 권력이란 것은 일종의 필요악(necessary evil)이지만 이 역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원칙에서 예외가 되진 못하는 법이다. 그 어느 것보다 더 공정하고 평등하게 작용해야 할 권력이 소수의 전유물로 전락해 다수를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면 온갖 문제의 근원인 절대악(absolute evil)이 된다.
권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못할 때 불평등과 부패라는 현상이 쉬이 관찰된다. 그런데 둘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결론을 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순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평등과 부패에 관한 탐구는 사회과학계의 대표적인 연구 주제이고, 그에 따라 수많은 연구들이 두 요소 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나름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통용되던 인과 관계를 뒤집고 이 책의 저자인 유종성 교수는 "부패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부패를 초래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타이완, 필리핀이라는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설명을 이어나간다.
여느 아시아 국가들처럼 이 세 나라도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 1945년 독립을 맞고 사회, 경제적인 조건이 엇비슷했다. 식민지 지배 이후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없이 산재했지만, 무엇보다도 급선무는 지주-소작농으로 이뤄진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토지 소유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다 선진적인 체제로 나아가기 위해선 불평등한 구조를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다. 한국과 타이완은 과감한 토지개혁을 단행해 종래의 계급 구조를 타파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질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소득 분배가 공평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지 독립 당시만 해도 두 나라보다 부유했던 필리핀은 소수 가문이 전횡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불평등과 부패가 심화되었다. 이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필리핀의 부패지수는 세계 평균보다 높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과 타이완은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많은 중소기업 위주로 내실을 다지며 성장한 타이완과는 달리 한국이 선택한 방식은 선별된 일부 대기업이 중심이 된 집중 성장이었다. 대기업이라는 구심점으로 한국은 타이완보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불평등과 부패 지수는 타이완보다 높다.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불평등과 부패의 심화라는 어두운 그늘이 있는 셈이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20여 개국의 사례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근로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불평등이 있으면 부패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불평등과 부패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큰 위협이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이룩하긴 했지만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벽한 체제가 아니며 현존하는 문제점과 모순을 고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더욱 완전함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라는 점이 아닌 완벽에 가까워져야 할 일종의 점근선인 셈이다. 불평등과 부패의 심화라는 전세계적인 현상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끊임없이 파도치는 바다같은 나라가 되길 바란다.
*. 동아시아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