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 - 영혼의 손길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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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힘이 드는 일이다. 아니, 애초에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서양 회화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도입된 원근법이란 개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입체 공간과 화폭의 평면 공간 사이의 괴리를 해결해줬기에 그만큼 혁명적이었지만 역으로 말해서 그것은 현실과 회화의 공간 차이에서 오는 왜곡을 최소화하려는 일종의 눈속임에 불과했다. 그래서 원근법은 점점 무너지고 화가들은 어떤 대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버리고 자신이 받은 인상과 감정을 묘사하는 길을 택했다. 세부적인 분야는 다르지만 회화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한 범주인 조각 역시 마찬가지다. 400년 전인 미켈란젤로는 고사하고 불과 50년 전인 로댕의 작품과 비교해봐도 그의 작품은 분명 조각이지만 너무도 다른 느낌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경우다.


    그가 조각한 인간은 얼핏 기괴해 보인다. 일반적인 신체 비례를 깨고 키는 지나치게 크고 비율도 왜곡됐으며, 팔, 다리, 몸통은 모두 미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앙상하고 가느다랗다.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아예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생물학적이든 해부학적이든 이렇게 생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겠으나 그는 인간의 겉모습이 아닌 본모습을 조각하려 했다. 다만 이상적인 신체의 아름다움이나 인간의 원초적인 희로애락의 감정을 조각에 그대로 담은 미켈란젤로나 로댕과는 다른 방법으로 본연을 조각했기에 우리 눈에 몹시나 낯설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지나간 과거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현재는 찰나의 순간이라 금세 흘러가버린다.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며 이를 잡으려 하지만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다. 아무리 앙상한 존재지만 당장이라도 움직일 거 같은 그의 조각들이 무언가를 '가리키고'(<가리키는 사람. L'Homme au doigt. 1947>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는'(<걷는 사람, L'Homme qui marche, 1961)> 까닭은 우리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부피와 입체감을 최소화한 조각에서 인간의 본질과 바람직한 이상을 담았다는 점에서 왠지 모르게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올랐다.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파블로 피카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던 것은 퍽 사교적인 그의 성격을 떠나 분야의 장벽을 뛰어넘어 사물과 대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를 대표하는 것은 조각이었고 조각은 그 어느 미술 분야보다 입체적이니 말이다. 그러나 미국인 작가이자 초상화 모델,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로드와의 친분은 그에게, 아니 우리에게 무엇보다 큰 축복이었다. 자코메티 사후 부인의 권한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는 몹시나 제한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었지만 1긴 세월동안 자코메티를 곁에서 관찰한 로드 덕분에 우리는 자코메티란 예술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자코메티란 예술가를 알지 못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왜 피카소라는 위대한 화가가 그를 질투하기까지 했다는 건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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