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와 기회의 땅인 미국,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전세계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로 가득하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있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 같은 이 곳이지만 하시딕Hasidic이라 불리는 유대교 근본주의 종파는 유독 독특해 보인다. 이들은 온 유럽을 휩쓴 전란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원래 살고 있었던 고향인 헝가리와 루마니아 국경의 도시 사투마레Satu Mare 혹은 이디시어로 사트마Satma를 새로운 정착지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비록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었지만 여태껏 생활의 중심, 아니 모든 것이었던 유대교의 전통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들이 입던 의복과 언어를 고집하던 폐쇄적인 공동체 집단인 사트마에겐 다른 유대교 공동체와 구분되는 점이 있었는데, 유럽에 살던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만의 국가 건설을 반대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유대인의 정통성을 고집하면서 이방인의 지위를 고수한 대가로 현지인들에게 박해를 받는 것이었고(시오니즘),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인종과 동화되어 유대인의 가치를 조금씩 포기하는 것(동화주의)이었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유대인 대학살은 이에 대한 징벌이며 박해를 받아 줄어든 유대인 인구 회복을 위해서 이들은 출산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 공동체의 보전, 그리고 전통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보면 출생은 분명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가치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간에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라, 이것이 맹목적인 '출산'이란 가치로 치환되다 보면 출산을 전담해야 할 여성들의 삶은 몹시 비참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은 그저 출산을 위한 기계이자 도구에 불과하며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상대와 결혼을 하여 출산과 양육에 골몰해야 한다.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는 없으며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자유와 권리는 쉬이 박탈된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곳을 탈출할 생각도 하지 못했으나 책의 저자인 데버라 펠드먼은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몰래 읽었던 책들 덕분에 바깥 세상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며 훨씬 더 넓은 선택의 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사트마에 남는다면 자신의 삶은 불보듯 뻔하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자신의 딸과 손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위해선 탈출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책을 통해 생소한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군데군데서 접할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차치하고서 인습이 전통으로 위장하여 구성원들을 얼마나 옥죌 수가 있는지 아주 전형적인 예가 책에 소개된 초정통파 종교 공동체란 생각이 들었다. 전통이란 가치는 흩어져 있는 개인들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기제가 되어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이나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처럼 개인의 속박과 구속을 위한 장치로 변질되기가 쉽다. 희박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통해 아들의 양육권을 획득하고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는 작가 펠드먼의 삶은 이전과 달리 극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의 사연에서 영감과 용기를 받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옭아매던 전통이란 세계를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을 책의 말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부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사계절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