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평점 :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란건 이제 허울뿐인 이상이 된 걸까?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으로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뒤로하고 모여든 것은 그곳에 가면 더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다.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는 누구든지 '능력'만 있으면 성공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이라는 것은 다수보다는 소수에게 어울리는 말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능력'이 없다는 낙인이 찍힌 채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약육강식의 정글에 던져졌다. 아메리칸 드림이 균열의 조짐을 보인 것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 티머스 스나이더 교수는 2019년 12월 독일 뮌헨에 체류하던 중 맹장염 때문에 미국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것은 신속하고 체계적인 치료가 아니라 병원 침상에 누워 옴싹달싹 못하는 자신의 처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그는 미국의 병폐를 목도한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는 무력하고 취약점이 많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같은 공적체계가 보편화되고 일상적으로 작용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의료를 비롯한 미국의 사회 보장 제도는 민영화된 상태라 많은 이들이 혜택 범위 밖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받는 과정은 평등과는 무척이나 거리가 멀다.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는 자본이 지배하는 논리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침상에서 "외로운 분노"를 경험한 스나이더는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러 사람들의 연대를 주장한다. 비록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할 지 모르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진다면 분명 바뀔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질병 중에서도 코로나 같은 전염병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리하여 치료는 소수의 계층에만 적용되는 특혜가 아니라 누구나가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 스나이더의 이러한 주장이 한 사람 안에서의 외침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나갈 때, 우리는 분명 보다 나은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 엘리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